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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맞춰 살아야 하는 이유

<4>

by 디딤돌


다운로드.jpg (너무 앞서 출발하거나 너무 처지면 우승할 가능성이 낮다. 출처 네이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가 유행하고 "배움에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을 한다. 상업성이 다분하지만, 그래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을 위로해 준 공로가 지대하다. 하지만 나는 나이에 걸맞게 맞춰 사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나이대별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단계를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득이 기회를 갖지 못해 나이 들어서라도 자기 계발에 열심인 경우는 언제나 응원한다.


묻고 싶다. 노인이 다 된 후에 열정이 불타오르면 정상인가? 봄추위와 노인의 건강은 길게 가지 않는다고 했다. 심장을 진정시키는 일이 우선이다. 순리를 거스르면 순간적으로는 반짝할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근육을 키우고 강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젊은이와 어울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꿈속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어렵다.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혹 모를까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이 항상 부담스럽다. 자꾸 끼어 들려하면 주책없다는 말을 들을 가능성도 있다.


영재들의 조기 교육(예체능 영역은 현재 시스템에 찬성한다)을 살펴보자. 먼저 우수한 두뇌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개인의 삶측면에서 바라보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몸은 어린이인데 정신세계는 어른이라? 균형이란 말이 왜 중요한지 알 것이다. 천재들이 지식적인 면에서는 성인을 능가할 수 있지만 다른 부분, 즉 인간관계나, 사회통념, 공감, 신체능력은 그럴 수가 없다. 월반을 했다 치자. 동료들은 농구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애어른"은 계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끊임없이 두뇌회전을 시키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 보라.


보통, 부모는 자식이 무엇이든 조기에 마치기를 원하고, 빨리 성과를 내고, 명성과 부를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있다. 자녀가 특별한 걸 굉장한 자부심으로 생각도 한다. 그러나 자식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어두운 면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성인이 될 때까지는 결여될 수 있는 부분을 세심히 살펴 보완해 주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어야 하고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신체능력은 떨어지고 머리만 명석하면 나라의 귀한 재산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작 본인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급적이면 때를 맞추어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 때를 적절히 타지 못한 예를 들어본다. 다분히 개인적인 관찰이고 사견임을 미리 밝힌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들이 일정기간 경과 후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개인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욕심과 주변의 과도한 관심이 한 인격체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했다는 생각이다. 정서적 안정과 관계역량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 부문에는 모두 관심이 덜하다. 유소년기에 어른의 정서를 따라서야 되겠는가? 명석한 사람은 건강한 신체를 가꾸고 더불어 지내는 것을 배운 후 공부를 시작해도 금방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시골에 있는 원두막에서 수박을 먹다가 씨를 멀리 뱉어내면, 그중 밭 귀퉁이 부근에 떨어진 개체는 싹을 틔우면서 자라나는 경우가 있다. 한여름이기 때문에 나름 줄기도 뻗고 잘 자란다. 손자 뻘 수박도 앙증맞게 맺힌다. 하지만 자연은 냉정한 법! 조석으로 시원해지면서 가을의 서막을 알리면 수많은 풀벌레들이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처럼 이들도 시들해진다. 서리라도 내리면 높은 열기가 덮치고 지나간 듯 사정없이 오므라든다. 이처럼 늦게 핀 꽃은 열매를 완전하게 키워내지 못한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얘기하겠다. '빠르면 혼란스럽고 늦으면 고달프다.' 자기만의 페이스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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