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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만 가라는 말과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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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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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군대에 가기 전 보통 이런 말을 들었다. “ 중간만 가거라!” 평범하게 살아온 남성 선배들이 인생경험에 의해 느낀 바를 후배에게 전해주는 명언(?)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뜻도 있고 어차피 의무 복무 기간 채우러 가는 것이니 눈치껏 처신해서 몸 상하지 말라는 얘기다. 군대는 특성상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다. “이슬처럼 사라진 들 한이 있으랴”처럼 말이다. 어떻든 이 말이 일리가 있긴 하다.


선행학습을 받은 후배들이 충고를 너무 잘 이행했을 때 드러나는 문제점이 있다. 위급한 일이 생겨도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수 없는 회색분자들임과 동시에 기회주의자만 보인다. 그래서 명령이 떨어지고 계급순으로 마지못해 움직인다. "엄호를 부탁한다. 내가 사선을 뚫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간부(직업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외 극소수다.


이 원리는 조직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어떠한 노력 또는 희생에 보상이 확실하다면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한다. 가령 승진, 추가 급여 등을 예상한다면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반면 특별한 혜택이 가시적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중간만 가려 애쓴다. 책임자만 사방팔방 뛰다가 제풀에 쓰러져 보따리를 싸게 된다. 현역시절 요령꾼들에게 온정적인 근무평정을 한 게 후회된다. "진짜배기"에게 모든 걸 밀어주었어야 했다.


보통사람은 적당히 행동해도 크게 비난을 받지 않는다. 시정잡배의 불량스러운 행동은 그와 같은 부류가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요령 잘 피우는 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이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많을수록 그가 속한 조직의 미래가 건강할 리 만무하다. 이와 같은 행동은 순탄한 시기에는 그럭저럭 묻혀가지만 비상시기는 어림없다. 정리대상 명단 상단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중용의 참 의미를 새겨보자.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 이 말은 특정 상황에서 유, 불리를 판단하라는 뜻이 아니다. 옳거나 그른 일을 대할 때 중도의 입장에서 살펴보라는 의미다. 극단과 편견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과유불급’도 언급된다. 중도를 취하는 게 어렵다면 넘침보다는 모자람이 오히려 사리에 어울린다는 뜻이다.


젊을 때는 ‘중간만 가거라!’는 뜻이 중용의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한 지혜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었다. 부끄럽다.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조용할 날이 없다. 정치판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만 들끓고 정작 중용의 정신에 입각한 군자는 없는 모양이다.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는 등의 그럴싸한 말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계속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소신(所信)과 신독(愼獨)에 기반 한 “ 중도의 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성숙한 지도자를 보고 싶은 건 나만의 부질없는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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