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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눈보라가 날리면서 꽤 추운 날이었는데 장남이 내 방에 와서 조그만 백 팩을 찾길래 건넸더니 어딘가를 다녀왔다. 내 앞에서 두꺼운 책 네 권( 윌 듀런트가 쓴 <문명이야기> 4-1,4-2,5-1,5-2)을 꺼내 놓더니 "아버지 먼저 읽으세요."라고 했다. 어디서 가져왔느냐 했더니 여자 친구가 교양을 넓히라고 선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흘끗 쳐다보니 두껍기도 할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에 관한 책이라 하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지나 읽을 것이지...'
나는 젊은 시절 시력이 너무 좋았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 왠지 지적으로 보여 부러웠다. 나도 써보겠다고 일부러 태양을 쳐다볼 정도로 한심한 친구였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오십 근처가 되자 가까운 물체를 보기 어려워졌다. 돋보기와의 동행이 시작된 것이다. 처는 나와 정반대 상황이다. 그녀는 근시였는데 지금은 안경을 벗어야 보인다나? 그러려니 하면서도 씁쓸함이 찾아온다. 눈 좋을 때 많이 읽어 둘 걸...
며칠간 바라만 보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편부터 뒤적거려 보았다. 목차를 보고 책에 실린 사진을 음미하기 시작하다 어렵게 첫술을 떴다. 학창 시절이나 젊을 때 체계적으로 독서를 한 적이 없다 보니 인문지식이 깊지 못한 게 나의 현주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적 호기심은 여전히 내 주위를 멤 돌고 있다는 점이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했다. 완독 후의 기쁨이 미리 눈앞에 아른거렸다.
서양사와 기독교 역사에는 문외한에 가깝다 보니 책을 이해하는데 도구가 필요했다. 네이버 검색과 구글 세계지도, 그리고 질문이었다. 너무나 다양한 인물이 소개되고 세계사 시간에 들었던 주요 지역 명칭이 종종 나오므로 중간중간 검색을 하지 않고선 전체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맥이 잡히지 않거나 검색결과를 읽고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차남이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었다. 자연스럽게 자식과의 대화시간도 늘었다.
어찌어찌 읽다 보니 제법 습관처럼 굳어졌고 매일 책상에 앉은 덕택에 어렵사리 네 권을 독파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던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슬렁슬렁 요령을 피우며 마쳤지만 나에게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중세시대의 신앙, 전쟁, 문화, 예술 등에 관한 얘기를 한다면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다는 유혹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도 차남이 나에게 일독을 권유한 책이 있었는데 <총. 균. 쇠>와 <사피엔스>였다. 이 두 책도 분량이 만만치 않았지만 읽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전부 읽은 후 많은 지식이 머릿속에 쌓인 기분이 들었었다. 비교적 최근에 독서의 기쁨이 나에게 자리 잡기 시작한듯하여 스스로도 뿌듯한 마음이다. 시력이 좋고 두뇌가 활발한 젊은 시기에 더 많이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이가 들면 단순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롯이 하고 싶은 일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지금이 나의 제2의 전성기가 아닐까 한다. 만성질환이 있지만 병 하나쯤 있어야 더 건강관리에 조심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좋은 약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그래! 수고했어! 계속해서 많이 읽었으면 해 친구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