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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과 관련된 단어가 바로 떠오른다. 촉감, 촉수 등이다. 무언가에 닿거나 보게 되면 몸에 전해지는 느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십이연기와 관련하여 촉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접촉으로 인해 분별심(分別 心)을 일으키게 하고 결국은 집착과 고(苦)로 연결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촉이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긍정과 부정의 양 면이 공존한다. 촉이 좋다는 건 다양한 상황에 대한 직, 간접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감이란 말은 대부분 촉과 통한다. 예로 들면 노련한 형사는 일정분야에서 일반인은 읽어 낼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세월만 보낸다고 촉이 생기는 건 아니다. 관심, 호기심, 궁금증 등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발현된다. 눈치가 빠른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상황을 재빨리 읽어 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눈치는 주로 자신의 신변 문제를 기점으로 출발한다. 눈치 보는 삶은 애처롭다. 당당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는 온몸이 촉수인 동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나 시인, 작가 등은 그런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사양한다. 지금도 예민한 성격이라 고생 중이다. 그러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다. 어떻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촉에서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촉이 엉뚱한 쪽으로 뻗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애먼 배우자를 의심하거나, 타인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촉수를 뻗치면 곤란하다. 불행의 근본 원인인 집착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촉은 정말 무섭다"는데 혹시 한눈파는 남자들이 있다면 정신 차릴 필요가 있다.
촉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다.
AI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다. 많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만 한다. 인공지능이 어지간한 건 사람보다 우월하다는데 그중에서 딱 하나, 인류가 특화할 수 있는 게 촉이 아닐까 한다. 감각이나 통찰력은 논리적, 과학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본다.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부여된 능력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경쟁 일변도 사회에서 살고 있다. 조기 영재교육이 열풍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초등생 때부터 의과대학반이 있다 한다. 안타깝다. 머지않아 AI 때문에 지금까지 쏟아부은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게 현명한 길인지도 모른다.
통섭에 기반한 능력 보유 여부가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촉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후의 생존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