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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 정책에 앞서 의식전환이 선행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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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다운로드 (5).jpg (출처 네이버)


필자가 젊은 시절에는 산아제한 정책이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구호도 넘쳐났는데 그중 압권은 이렇다. “무턱대고 낳다간 거지 꼴 면치 못한다.” 당시 총각 신분이었음에도 정관시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준다는 유혹에 잠시 솔깃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출산율이 재앙 수준이라니...


고교시절에는 <맬더스의 인구론>이 시험에 출제되곤 했다. 당시처럼 높은 출산율이 지속되면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는 엄포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지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옛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너무 오래 사니께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산다.” 지금의 내 심정이 그렇다.


청년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다. 그런데 왜 출산을 망설이는가?


먼저 혼인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식을 낳고 살아갈만한 서식환경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라도 살아남아야 유전자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던 할 것이다. 수렵채집을 하던 고대 조상들도 천적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식을 최소로 그리고 출산 간격도 최대로 늘렸다고 한다. 신속한 이동을 담보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도 마찬가지다. 환경이 적절하고 출산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있어야 아이를 낳을 것이다. 질병으로 인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건, 노동력 확보에 도움이 되어서건, 자식을 키우는 보람(이건 먹고사는 문제를 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본다)을 느끼고 싶어서든 낳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애를 낳는다면 그게 오히려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재앙을 초래했다. 한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할 직장 등이 특정 지역에 쏠려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높은 주거비, 교육비, 생활비, 양육비를 웬만한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다가 부의 극단적 쏠림(승자독식), 숨 막히는 경쟁 일변도의 환경도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저간에 퍼진 의식의 문제를 짚어본다. 금수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세상에서, 자녀에게 모든 걸 쏟아부어 보았자 나중에 홀로서기나 가능할까라는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엘사, 빌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회다. 일부는 홀로 사는 게 좋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꿈과 커리어를 위해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각 가정의 자녀를 우리 모두의 소중하고 귀한 보물(공동자산)로 인식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육 및 교육비와 출산부부에 대한 배려는 인색하면서 인구감소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 생산(소비) 감소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 등만을 운운하고 있다. 환경 보전에는 티끌만 한 관심도 없으면서 기후 이상으로 인해 좋은 과일 먹기 힘들어졌다고 불평만 하는 것 과 같다.


지금까지 저출산의 원인은 청년들만의 책임이 아닌 복합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건 덜 챙기고 세금은 더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민 모두 양육과 교육비 부담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불요불급한 예산을 틀어쥐고 자기들 살 궁리만 짜고 있는 관료들은 더 이상 없는가? 기업은 정치헌금 대신 미래세대 양육을 위한 기여를 고려하고 있는가?


재원(세금)은 한정적이다. 따라서 배분이 중요하다. 예로서, 사회복지. 교육 예산을 집행할 때 고려대상에 노인, 어린이, 사회적 약자가 있다 치자. 누구에게 더 비중을 둘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사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승선 인원이 한정된 보트에서 정원초과로 좌초 일보직전이다. 같이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노인이 알아서 먼저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까? 애를 버려야 할까? 약자를 버려야 할까?


애가 던져지는 걸 나 몰라라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사린다면 인구감소는 아주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것만 챙기면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묘책은 없다고 본다.


고정관념을 바꿀 준비는 되었는가?


지금 상황은 낳지 않겠다는 이유에 대해 자초지종은 모르겠고 그냥 애만 낳으면 되지 않느냐는 태도나 다름없다. 그들은 청춘들에게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한다고 비난도 한다. 결혼하고 애는 낳으라 하면서 왜 산모와 남편에 대한 배려는 그렇게 소극적인가? 영혼 없는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뭣이 중헌디" 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지원을 제대로 할 때다.


1. 출산부부가 부담하여 왔던 주거, 공교육, 의료, 양육비 부문에 걸쳐 획기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선별조건을 까다롭게 하지 말고 희망자 전부를 선정해서 지원을 해야 한다. 주택은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영구임대도 가능)하게 하고 최소한 전용면적 50평방미터는 넘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


2. 영유아를 보살피는 종사자에게도 높은 보수와 고용안정을 보장하면 수준 높은 지원자가 지원할 것이고 부모보다 훨씬 뛰어난 양질의 서비스로 육아와 교육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수준미달자의 고용 남발로 영유아 학대사건등이 빈발한 점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3. 정치인은 근본적으로 표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 배분 왜곡의 원인이다. 표가 없는 "미생"들보다는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 든다. 이들이 내릴 정책의 우선순위는 불을 보듯 빤하다. 그러므로 신생아 수 증가가 없는 정권은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4. 기업은 영유아 위탁시설을 확보하고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실적에 대해서는 해당기업 제품 우선구매, 법인세 공제 등 혜택을 적극 부여한다. 친환경 기업이 있듯이 출산친화 기업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 매년말이면 해당기업의 노력정도를 평가하여 국민에게 보고하는 시스템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5. 기득권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야 한다. 병역, 납세, 기부 등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조세회피처나 찾는 부자를 존경할 순 없다. 국민은 현명하다. 막연히 애국심에 호소하는 일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의롭지 않은 지도자의 호소는 가볍게 들릴 수밖에 없다.


6. 기본적으로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육아행위는 고도의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전업주부에 대한 지원도 검토해야 하며 직장인이 육아휴직기간(유, 무급 따지지 말고)인 경우에는 국가에서 급여를 전액 보장하고 국민연금 등의 납부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7. 내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집이 있으면 적극 배려해야 한다. 얼굴을 트고 지내면 옆집 아이가 아무리 뛰어대도 음악소리로 들린다. ‘그 녀석 몸 풀 시간이 되었나 보다.’ 부수적으로 층간 소음 갈등이 해소되고 비상시 노크를 서로 간에 해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덤이다. 단, 아이들 부모는 공공예절, 뛰노는 시간 등을 정하여 엄격히 지도하여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얘기하지만, 토착인을 비롯하여 북방에서 남방에서 일본열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섞여서 한반도라는 틀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주민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해야 한다. 물론 합리적인 이민기준은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서유럽의 무법천지처럼 비치는 치안불안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이민자 2세들의 사회부적응에 따른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운 겨울에 동남아 출신의 근로자들에게 변변한 난방조치 하나 해 줄 아량이 없는 자세라면 이민 정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편견도 없애야 한다. 대체적으로 서구나 백인 계열에게는 덜하지만 우리보다 어려운 동남아 출신이나 흑인들은 업신여기는 생각이 저간에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됐든 내 옆에 있고 나와 소통하는 사람이 바로 형제나 다름없는 이웃이다. 다양하게 섞여야 유전자도 건강하다고 했다.


필자의 솔직한 생각


전문가들은 장기간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인구감소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총인구가 75억 명 정도인데 지구의 적정 수용가능 인원은 25억 명이라고 한다) 자본과 물질의 무한 팽창 시대는 종언을 고할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 자연감소를 전제로 한 대응 계획이 필요하다. 이미 물밑에서는 진행되고 있지만 세계경제는 지역별로 블록화 되고 자국이기주의(보호무역)는 극성을 부릴 것이다.


첨단 금융기법으로 세계경제를 주무르던 미국도 코로나 시국 때 마스크 한 장 생산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경험을 했다. 자동차, 반도체 공장을 자국에 지으라고 우리를 닦달하고 있는 이유다. 앞으로는 생산단가가 비싸도 자국 이해여부에 따라 전략적으로 가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도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내수시장 중심으로 상당 부분이 쏠릴 텐데 구매를 해 줄 사람이 없다면 경제가 버틸 수 없다.


몸살 하는 지구를 보더라도 인구는 점진적 감소 추세가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사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가 있었는데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진행하면서 잉여농산물이 급증한 시기라고 한다. 여건이 마련되면(혁명적으로 변화하여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앞으로 받을 혜택(연금 등)이 지속가능 할지 여부는 걱정하면서 나라 존속의 근간인 허리를 튼튼히 하는 일에 무관심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


* 조선 세종실록에도 출산한 가정의 남편 휴가, 다둥이지원 등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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