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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행운. 길조. 오작교를 연상한다면 어느 정도 세월이 지긋하신 분이다. 하지만 까마귀와 더불어 지능이 매우 높은 조류이며, 무리를 이루는 힘과 민첩함으로 대부분의 새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의 조폭”이라고 불리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가 사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서달산은 도심 한복판임에도 자연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보고다.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다양한 식물과 새 및 작은 동물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봄에 부화된 새끼까치는 몸 덩어리만 가지고 봐서는 어미와 거의 대등하다. 털색만 약간 연하다는 느낌정도다. 어미는 먹이를 물어와 새끼 입에 넣어주기 바쁘다. 본능이겠지만 항상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이다.
평화롭던 까치들의 영역 내에 갑자기 덩치가 배로 큰 무뢰배들이 몰려온다. 다름 아닌 까마귀다. 먹거리가 풍부 할리 없으므로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삽시간에 수많은 투사들이 양쪽에서 모여든다. 까마귀가 체구는 크지만 수적으론 열세다. 시끄럽게 울어대고 위협비행을 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된다. 다툼 결과는 어떨 것 같은가?
내가 관찰한 경험에 의하면 항상 까마귀가 패퇴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육체 조건이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상호 낯선 개체간이라 하더라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선 일시적으로 보다 큰 집단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라는 가설이다. 까치가 바로 이런 힘을 아는 듯하다.
까치를 인간으로 치자면 군중의 힘을 아는 녀석들인 셈이다. 각 개체로서의 영리함은 오히려 까마귀가 제일이라 한다. 그럼에도 항상 다툼에서 밀리는 이유는 뭘까? 오합지졸(烏合之卒)을 알 것이다. 여기서 ‘오’는 까마귀다. 선조들의 눈은 날카로웠다. 그들 세계는 개별적으론 뛰어나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없이 세력이 흩어지는 현상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비슷하다. 권력과 부는 근면 성실한 자보다는 집단을 이루고 다수의 힘을 조종할 수 있는 자가 차지한다. 정도껏 가져가면 좋은데 함께 획득한 전리물(戰利物)을 독차지하려 든다. 물론 처음에는 신선하다. 하지만 집단이기주의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곧 부패하고 만다. 선출직의 배신, 노동운동 지도부의 타락, 한 곳으로 몰아준 힘을 이용하여 성장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엔 등한시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까치가 번성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강력한 천적이 없어졌다. 약간의 위협이 되었던 맹금류쯤은 우습게 몰아낸다. 아파트 옥상에서 서식하던 일단의 황조롱이들이 어느 날 사라지고 까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덩치는 크지만 전투력이 모자란 까마귀 정도는 이제 경쟁자 축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개체 수가 많아져 농작물에도 해를 끼친다. 허수아비쯤은 장난감으로 알 정도로 교활해졌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도 느긋하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고 말한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손해나 불편함을 느끼면 용서하지 않는다. 역시나 그들을 비둘기처럼 유해조수로 지정했다. 한전 직원은, 전신주를 망치는 그들을 불구대천의 원수 보듯 한다. 둥지를 트느라 변압기를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축술까지 뛰어나 제거도 어렵다고 한다. 더 귀찮아지면 멧돼지나 가마우지처럼 현상금이 붙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의 행태는 까치를 닮아 보인다. 소위 선을 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힘을 교묘히 이용하는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 처음엔 신선해 보일지라도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그들은 함께 한 구성원을 배신했다. 사람이 초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