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은 기쁨의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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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먹는 것에 조금 덜 열정적인 나는 붕어빵 하면 먼저 서로 닮은 부모와 자녀를 연상한다. 당사자들은 모를 수 있지만 타인은 관계를 한눈에 알아본다. 유전자의 힘은 경이롭다. 얘들이 어렸을 때 간혹 유치원에 가게 되면 부모와 어린 자녀와의 관계를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다.


책을 반납하면서 다른 책 대여를 받기 위해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머리가 하얗게 센 방문객은 아마 내가 유일한 듯하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나이에 걸맞게 어디에 서있어야 할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내가 클럽에 간다면 이상한 노인으로 치부할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도 고민이다. 경로석에 부담 없이 앉기는 뭐 하고 그렇다고 일반석 앞에서 빈자리 나기를 고대하는 짓도 내키지 않는다. 대다수가 노인에게 무관심 하지만, 간혹 보이는 착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배려는 일반석에 앉았다가 젊은이들이 입장하면 경로석의 빈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휴대폰만 쳐다보느라 교통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인지조차 모른다. 서운하긴 하지만 그들도 앉아서 가야 할 이유는 넘칠 것이다. 나는 지금 세대와 뇌구조가 확연하게 다르다. 나보다 연장자 거나 약자가 앞에 있다면 기꺼이 양보할 것이다. 홀로 설 수 있는 한 가급적 앉아가는 걸 지양할 생각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재래시장을 지나쳐야 한다. 간혹 왕래를 하지만 젊은이 둘이서 붕어빵을 굽는 걸 처음 목격했다. 아주 열심이다. 이제는 분가했지만 추운 겨울날 장남이 간혹 이걸 사가지고 와서 가족에게 내놓는 걸 보았다. 간식거리 앞에서 옆지기는 미소를 띠며 흡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도 이 녀석들을 사가지고 가면 자식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기뻐할 것이라 상상하면서 여섯 마리를 사들였다. 동생인 듯한 젊은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도 예쁘게 한다. “아저씨 종이봉투 끝부분을 밀봉하지 마세요!”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져요!” '고마워요 젊은이' 나도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예상대로였다. 아내는 뱃속에 팥이 든 걸 좋아하고 크림이 찬 붕어는 싫다고 했다.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는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찬밥신세로 분류된 녀석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배고프던 시절의 최고 간식거리가 아니던가!


나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경작할 땅이 없었던 이유로 간식을 즐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시절 시골에선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등이 간식 대용이었는데, 옆 짚 친구네 집은 창고에 보관해 두면서 먹을 정도로 충분히 먹거리를 보유한 집이었지만 나에게 고구마 한 조각 먹어 보라고 권한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아무리 꼴깍하고 침이 넘어가더라도 ‘한 개만 달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기에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상대를 보듬을 힘이 없다.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꼭 지키는 게 있다. '나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말자이다.' 타고난 성정이나 나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에게 공공질서 운운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세상은 점점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가설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붕어빵이 추억을 소환시켰다. 아름다운 과거는 여러 번 되새김 질 해도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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