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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검진 차 두 달에 한 번씩 피를 뽑는다. 십년 이상 반복하고 있는데도 채혈 실 앞에만 서면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채혈 후 두어 시간 지나야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게 되어있어 이른 아침부터 시장처럼 붐빈다. 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린다. “띵 동” 울릴 때마다 대기자 모두 고개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지만 간혹 어린이도 보이고 젊은이도 있다. 팔을 내밀고 임상병리사의 처분을 기다리는데 거의가 정면을 주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아마 어둠의 자식이라도 그럴 것이다. 같은 행위라도 채혈하는 사람에 따라 따끔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피곤해 보이거나 얼굴이 굳어있는 사람이 내 번호를 호출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철부지는 앙앙 울어대기도 하고 혈관을 찾지 못해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피 뽑을 일이 없다면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노신사는 부인에게 어린아이 혼나듯 쩔쩔매고 있다. 지혈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하얀 옷에 피가 묻은 것이다. 왜 지시대로 이행하지 않았느냐는 마나님의 핀잔이다. '남자의 운명은 평생에 걸쳐 여자에게 혼나도록 설계되어 있는 모양이다.' 아무 말 못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아저씨 모습이 애처롭다.
직장 생활을 할 때 가장 싫은 게 건강검진이었다. 이로운 줄 알지만 꺼려졌다. 혹시 모르고 있는 병이라도 나타날까 걱정이었고 피를 뽑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의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 모를까 누구나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바로 채혈이다. 지금은 ‘혈액 검사 결과 당신의 염증은 정상상태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듣는 게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의사와 면담할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대단한 행운이다. 의료 종사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곳과 친해지면 많은 걸 잃었다는 뜻이다. 투석이 필요한 환자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생긴다. 주사기와 한 몸이 되어야만 살 수 있는 분들이다. 간혹 짜증스럽다가도 음지에서 아픔을 녹여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는 엄살 수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육십 중반을 지나다 보니 주사기는 더욱 자주 나를 보자고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셀프주사를 중단했다. 증상이 호전되어 천만다행이었지만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고통을 줄이면서 세상을 마칠 수 있다는 꿈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고 까진 말하지 않겠다. 불가피하면 모르되 애초부터 ‘피 보러 갈 일’을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 평소 건강관리에 힘쓰면 주사기는 힘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