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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하면, 나에게 漢江. 아리수(阿利水). Han River 등을 떠오르게 한다.
보는 이의 시각, 생각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곳이 <한강>이 아닐까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직접 한강을 바라볼 수 없으나 조금만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서달 山>이라 불리는 곳의 정상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종전과는 달리 인근에 신축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바람에 듬성듬성 생기는 공간을 비집고 나서야 눈길이 닿을 수 있다. 눈을 치켜올리면 정면으로 남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계절별로 독특한 장관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고 그늘은 감추어진다.
지금부터 하산을 시작하여 한강변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자 한다. 저마다 한강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한강의 일부만 안다. 부끄럽지만 위도가 낮은 남한강 물줄기가 어떻게 수도권에 있는 양수리(두물머리)로 흐를 수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 국토지리 시간에 우리나라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거나, 동고서저란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면서,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와 관련지어 상상을 해보면 흥미로움과 숙연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강동구 암사동 일대는 강가를 따라 선사 유적지가 있다. 우리의 먼 조상이 이곳에 터를 잡고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았다. 또한 고대 국가들의 치열한 전투지였다. 군사적 요충지 이면서 비옥한 한강 유역은 세력 상호 간 쟁탈전이 불가피했고 수많은 병사들이 이곳에서 하늘의 별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도읍을 정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임진왜란 중에는 행주대교 인근에서 권율 장군 휘하의 조선 병사와 왜군들의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 한강변의 행주산성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인근 산들의 고도가 낮아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하기에는 아주 불리한 지형으로 보인다. 당시 병사와 민초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다.
한국전쟁 중에는 북한군의 남하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하여 한강철교 폭파가 있었고, 심하게 훼손된 철로를 따라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한강을 도하하는 피란민들의 모습이 실린 한 장의 사진은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강 하류 임진강과 교차하는 장단지구에서는 한국전쟁 중 수많은 해병대원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동작동 현충원에는 동 전투 지구에서 전사한 많은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다.
용산과 흑석동 사이에 있는 노들 섬은 첨단 문화공간으로 변신 중에 있다. 공원 입구에는 고공 낙하훈련 중 사고가 발생한 동료의 낙하산을 펴주려다 순직한 <이원등 상사> 동상이 있다. 그는, 후배들이 부르는 군가가 있는데 가사 중에 있는 표현대로 "하늘에 핀 한송이의 꽃"으로 추앙받고 있다. 나 역시 군복무 기간 중 강 상류지역 미사리 백사장에서 낙하 훈련을 받은 곳이고, 무사히 훈련을 마친 기념으로 철모 가득 탁주를 하사 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 순간 들이킨 생명수는 모진 훈련에 따른 고통을 한꺼번에 눈 녹듯 씻어냈다.
한강에 대한 생각을 우리네 삶과 관련지어 적어 본다.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에 빠져 있는데 한강변 아파트는 그중 단연 으뜸일 것이다. 복부인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며 누구든 이곳으로 이주하면 '진보주의자도 보수로 바뀌는 마법을 부리는 지역'이다. 가격 상승은 기대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세금 등의 의무는 철저하게 배격하고자 하는 이중성의 대표 지역이다. 이런 말도 있다. " 성공하면 한강 조망(view), 실패하면 한강 입수"
성공한 사람들은 마천루처럼 높은 곳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기울일 때, 어느 한강다리 위에서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친절한 안내 문구를 뒤로하고 삼천궁녀처럼 초개처럼 몸을 던지는 이가 한 둘이 아니고, 비상대기 보트는 급한 사이렌을 울리며 물 위를 날듯이 달리는 곳이기도 하다. 떠나려고 마음먹은 이는 그렇다 쳐도 이들을 구조하려다 안전요원이 순직하는 비극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밝은 면을 바라보자. 이곳의 풍경은 문학, 시, 수필, 사진, 생태 연구등을 주특기로 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동기를 부여했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어업에 종사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오래된 이발소의 나이 든 주인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상류지역 <덕소> 인근에는 조그만 배를 띄어 향락과 풍악을 제공하는 업이 성행했었다고 들려주었다.
여인들 꽁무니를 쫒으려 단정하게 이발하고 포마드를 발랐을 바람둥이들의 모습이 연상되는데, 이들 마나님의 억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화내는 모습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좋아하는 옛 가요 중 “마포종점”은 언제 들어도 향수를 자극한다. 가사 중에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 영등포 등이 등장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 하나"를 음미해 보면 지독한 사랑에 빠진 여인의 고뇌가, 마치 모든 연인들이 겪어야만 하는 숙명적인 의례처럼 들린다.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두물머리> 하류 근처의 수초 주변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산란을 위해 얕은 강가로 몰려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대를 이으려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미물이나 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게으른 철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텃새로 변신 후 가마우지들과 물고기 잡이 경쟁을 하고, 봄철에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짝을 찾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내 눈앞의 한강은 마법사다. 평소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다가도 홍수가 발생하는 우기에는 모든 것을 삼킬 태세로 돌변하는 존재이다. 동시에 어느 때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 신선함을 선사하다가 어느 순간 비릿하고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한강은 어떤 때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반대로 이질감 또한 마음속 깊게 새겨지게 하는 이상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