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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이후 남자가 살아남는 법

< 3>

by 디딤돌
다운로드 (1).jpg (져주면 편하다 / 네이버 )



<세상에 불쌍한 인생이 조선 여편네다. 여편네가 사내보다 조금도 낮은 인생이 아닌데 사내들이 천대하는 까닭은 사내들이 개화되지 않은데 있다> 128년 전 서재필 선생께서 독립신문에 실은 논설 중 일부 내용이다. 선생께서 현재 한국의 모습을 보고 계신다면 "이 친구들이 제대로 변했군" 하고 기뻐하실까?


동네 체육센터에 갔다. 당구나 탁구등 배울만한 종목이 있나 하고 궁금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수영, 헬스 외에는 마땅한 게 없다. 이곳저곳 시설물을 둘러보았는데 헬스장 안에 남성 노인 서너 분 빼고는 온통 아주머니 일색이다. 몸매도 관리하고 화성인과는 통하지 않는 대화도 필요해서 일 것이다.


구립 도서관을 목표로 걸었다. 길가에 있는 건물 중 내부가 비치는 커피숍이나 식당에는 남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근교 야외 식당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음식과 커피는 여성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도서관 내부도 어린 학생을 제외하면 거의 여성이다. 남자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모양이다.


드디어 여성의 전성시대가 눈앞에 도래했다. 실상을 모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즈음에서 최후의 승자는 여성이다. 작고하신 어머니도 이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경험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걸 자식을 위해 쏟아붓고 희생만 하다 떠나신 '오마이'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남녀가 평등해야 함은 당연하다. 앞으로 무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남성들 자신도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 본능은 어쩔 수 없다지만 습관이나 관습에 의한 제약이라면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왕조시대나 어울릴 법한 말이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마나님께나 잘하시도록.


수직 문화에서 수평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이, 기수, 지위 등의 의식은 장애물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에게 한두 살 더 먹었다고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누가 양로원에 발을 디디려 하겠는가? 남자 열명에게 일렬로 서라 하면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할지를 아는 게 남성이라고 한다. 서열의식이 이토록 무섭다.


그렇다면 이런 의식은 왜 생겨났는가? 세상을 조금 알 때가 된 이후로는 촌수, 형, 나이, 선배, 선임, 상사, 능력, 재산의 크기 등 여러 영역에서 따지다 보니 지긋지긋한 서열의식에 시달리며 살아온 주체가 바로 50대 이상의 한국 남자다. 어쩔 수 없이 집단에 속해 있지만 항상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위로가 필요하다.


내재됐던 부작용이 분출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현역 은퇴 후다. 으스대는 사람 꼴 보기 싫고 허리 굽힐 일 없도록 사람 만나는 일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부인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출현 때문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제2의 인생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마른하늘에 이런 청천벽력이...


남성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남편이 은퇴할 무렵이 되면 여성들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최종 청산하고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 갖기를 희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눈치 없이 동행하고 싶다고? 물론 부인도 남편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독립적이지 못하고 협조하지 않는 자세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대단히 내키지 않겠지만 현명한 마나님들이 어린양을 거두는 심정으로 은전을 베풀어야 한다. 거친 곳에서 겨우 살아남아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신세지만 살겠다고 아우성인데 그동안 쌓인 시시콜콜한 감정 때문에 내치지 마시라! 어릴 때는 어머니가 은퇴 후에는 부인이 그들의 보호막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좋겠다.


남성들이여 부인에게 무모하게 대들지 말라! 언쟁이 벌어지면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 생활에서도 여성의 판단이 합리적이다. 은퇴를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입은 다물고 귀를 활짝 여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 요구사항과 말이 많으면 졸지에 꼰대라는 딱지가 날아와 이마 중앙에 달라붙는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강한 수컷 혼자 독식하는 세상이 아니다. 강자가 약자를 포용하고 나이 든 자가 스스로 모범을 보일 때 관계도 부드러워진다. 안하무인격으로 군림하던 수컷 우두머리 사자가 어떻게 최후를 맞는지에 대해선 이미 알 것이다. 나이가 들면 변화와 새로운 환경에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는 컴컴한 동굴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시라!


님들도 동굴에 처박혀 '하구한날' 담배와 술이나 '푸지' 말고 자발적으로 운동 좀 하고 어깨를 펴자! 과거에 사로잡혀 안갯속을 헤매면 곤란하다. 비교하지 않으면 모든 게 편해진다. 쓸데없는 헛기침과 거드름 피우지 말고 주변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친절 하라! 모두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노후가 아름다운 부부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아~ 다 좋은데 그럴싸하게 말하는 당신은 잘하고 있냐고? 아니다! 매일 참 교육을 받으면서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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