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것보다 협력이 아름답다 / 픽사베이)
위 제목의 말을 엘리트들이 들으면 "당연한 소리지" 할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거나 조금 뒤처진 이들에겐 맞는 말 인듯하면서 왠지 뒤가 개운치 않은 말로 들릴 수 있겠다. 사람이나 물건은 각각 쓰임새가 따로 있다는 것일진대...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라고 위로하지만 속이 보이는 뻔한 말 같아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창조주의 의도 여부까지는 모르겠지만 우열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열의 차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더욱 복잡하다. 모든 것에 가격 매기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은 정규분포 형태가 아닌 극단을 선호한다. 예로서 특정 스포츠 선수 한 명 몸값을 소속구단 타선수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비싸게 책정하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되는 곳으로 몰아주자는 심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아홉을 가진 자는 나머지를 탐하고 적게 가진 자는 한 개마저 쉽게 포기하는 하는 것 같다.
복권도 그렇다. 다수가 받을 수 있는 적당한 당첨금은 싫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한방을 선호한다. 당첨 확률은 애써 나 몰라라 하면서 “왜 나에게 희망의 파랑새가 날아오르지 않지?” 하면서 투덜거린다. 이러한 경향이 일관성이 있으면 좋은데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성과 배분을 할 때는 "사람이 백지 한 장 차인데 이렇게 차등 대우하나?"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무임승차도 시도한다.
나는 엘리트도, 우월주의자도 아니지만 다음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
애당초 질이 낮은 대상에 아무리 관심을 갖고 투자해 봐야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같은 종이 한 장을 주어도 누구는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누구는 만지작거리다가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한다.” 슬프지만 좋은 쇠는 타고난다는 뜻이다.
소수의 좋은 쇠는 혼자가 아닌 다수의 일반 쇠와도 함께 간다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한다.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소수정예가 다수를 위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긍지를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어느 시인의 바람처럼 "소수의 풍요보다 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란 구절을 떠올렸으면 한다.
한편, 그저 그런 쇠라고 자포자기할 건 없다. 자기만의 장점을 찾아 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을 통해 자질을 극복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당신이 전쟁 지휘자라면 하찮은 전투에 최정예 병력을 투입하겠는가? 덜한 쇠를 투입할 것이고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당신은 명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다만 순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