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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

<4>

by 디딤돌
다운로드 (1).jpg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 네이버)


나는 *낙수효과 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혜택을 받는다는 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무엇에 기생하여 겨우 근근이 연명하는 모습이 떠올라서이고, 비둘기나 잉어에게 먹이를 던 지 듯,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떨어뜨려 준다는 사람들의 거만하고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보기 싫기도 해서이다.


선택과 집중이란 과거의 사례를 보자. 국력이 신장되고 기업이 성장하면 온기가 퍼져 전 국민에게 미칠 것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현실을 보노라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부는 소수의 집단이 독식하였고 양질의 일자리는 특별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대다수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신세에 머물러 있다.


형제자매 많은 집도 특정 자녀에게 능력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집중 지원을 했지만 개인의 성공에 그칠 뿐 파급효과가 나머지 가족에게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가족들만 늘었고 우애 대신 오히려 갈등요인으로만 작용하는 걸 흔하게 보았다.


결론적으로 최소한의 자기 몫을 챙길 줄 아는 사람(과욕을 부리거나 너무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이 되어야 한다. 위 사례들처럼 상대의 의지에 따라 대단히 유동적인 베풂을 기대하다가는 볼 품 없는 세상을 살게 된다. 자신의 잠재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내가 반듯하게 서야 세상에서 요청하는 도리를 할 여지가 생긴다. 목표를 이루어야 할 시기에 누군가가 당신의 발목을 잡고 물귀신처럼 늘어지는 사람이 있거든 미련 없이 떼어내라. 오직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기 바란다. 정신이 바른 사람이라면 노력하는 이를 응원은 못 할망정 방해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근본이 썩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깨끗한 물을 쏟아부어봐야 오염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날짐승 어미가 싹이 없어 보이는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뜨리는 것처럼 조용히 손을 놓으라. 어릴 적 동심에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팔렸던 병아리는 건강하지 못한 개체였고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살면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예외적으로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는 영상은 보았는데 참으로 신기하다. 자연현상 말고 실생활에선 유일하게 아래서 위로 흐르는 게 있는데 바로 돈이다. 돈은 가난한 자의 호주머니로부터 뛰쳐나와 부자에게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 가 듯 사라져 버린다.


가진 게 적으면 모든 게임에서 지게 된다. 도박이나 게임, 주식도 유감스럽지만 결국은 큰손의 팔을 들어준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한 종잣돈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섣불리 세상이 유혹하는 게임에 뛰어들었다간 시간 많고 돈 많은 집단에게 푼돈마저 자진 상납하는 결과만 낳게 된다.


어떻게 종잣돈을 마련하느냐고? 금수저가 아니라면 적게 자고 적게 소비하고 더 많이 뛰어야 한다. 남들과 똑 같이 하면 평균이하에 머무른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냉소나 던지지 말고 열심히 모아야 버티고 일어설 언덕을 마련하게 된다. 혹시 부모님이? 기대하지 마라! 부모도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동시에 실생활과 밀접한 공부(특히 경제, 법률)를 열심히 해야 한다. 못 먹고 안 입고 모아봤자 한입에 전세금, 투자금을 날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밀림을 헤치기도 버거운데 거기에다 맹수까지 득실거리는 곳이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 잃은 후 다음 생을 도모하겠다는 말은 주위를 슬프게 한다.


높은 산 앞에 당신이 서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도망가거나 주위만 멤 돌거나 오르기 위해 첫발을 디디거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인가 아니면 파도 위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며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는 귀하가 선택할 일이다. 인생은 남이 대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낙수효과 : <감세정책처럼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혜택이 가는 경제정책을 펴면 소비와 투자가 확대돼 경기가 활성화되고 그 혜택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에도 돌아간다고 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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