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멀지 않음에도 마른 잎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나무가 많다)
요즘 글을 쓰는 이들의 표현력은 재치가 넘친다. 지금까지는 낙엽이 ‘떨어진다’라고 했는데 ‘내려온다’로 말하고 쓰는 이들이 있다. 두 표현에서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느끼는데 후자가 조금은 더 자주적이고 철학적으로 들린다. 어떻든 낙엽은 밟아도 태워도 기분 좋은 향기를 선물하는 고마운 존재다.
마지막 잎새라는 말은 앞으로 쓰일 일이 없어 보인다. 나목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 겨울에도 마른 나뭇잎이 여전히 가지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연히 잎이 무성한 나무 앞을 지나다가 스쳐가듯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 보고자 한다.
기후 변화에 따른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 활엽수 중에는 마른 잎을 땅에 내려놓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수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엽수는 한 계절을 풍미한 후 이파리를 깨끗이 떨어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낙엽발생 지연 현상>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적응하기 위한 것 즉 죽은 잎을 간직하여 곤충이나 새로부터 싹을 보호하고 이른 봄에 떨어져 생육에 필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과 특별한 생태적 기능 없이 그냥 진화적 산물이라는 견해다.
특히 단풍나무, 참나무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작년가을은 노란 은행잎을 보기 어려웠다. 푸른 잎 상태로 말라가더니 그대로 떨어지는 걸 관찰했다. 이제는 곱게 물든 단풍잎과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는 낭만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특이한 현상이 인간에 의한 이상기후 때문이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필자는 한겨울에 시원하게 벗어버리는 나무를 좋아한다. 한여름엔 우거진 나뭇잎으로 그늘을 선사해 주다가 가을이 오면 비바람에 아낌없이 잎을 날리는 모습은 매듭을 제대로 짓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무 스스로 선택했다면 존중하겠지만 계속 매달려 있는 건 인간의 집착과 비교되어 씁쓸하다.
인간의 삶에 대입해 보았을 때 우리는 한번 쥐게 되면 끝까지 땅에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요즘 낙엽과 비슷하고 더욱 문제인 점은 다음 세대의 몫마저 차지하려 호시탐탐 노린다는 점이다. 봄이 온다 한들 가지에 붙어있는 마른 잎들 때문에 새싹의 입지가 좁게 되어 얼마나 힘들게 싹을 틔울 것인가!
유난히 습설이 많은 올겨울엔 여기저기서 뚝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소임을 다한 잎 위에 쌓인 눈의 하중이 증가해서 그럴 것이다. 세대교체를 원활히 하지 않다간 공멸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나무는 언제 다시 모든 낙엽을 예전처럼 날려버리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진화의 방향을 틀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순환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