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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죄가 없다

<3>

by 디딤돌


다운로드 (18).jpg (네이버)


태풍은 우리가 사는 이곳저곳에 많은 생체기를 내지만 지구란 행성차원에서 보면 자연정화작용일 뿐이라고 한다. 오염된 대기를 걷어내고 바닷물도 위아래로 뒤엎어 흐트러진 생태계를 정돈한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작물이나 과일 재배 농가에게는 불청객이지만 필요악인 셈이다.


살면서 누구나 바람을 맞으며 산다. 앞길을 막으면 맞바람(역풍), 등에 바람이 부딪쳐 떠밀리 듯 쉽게 가게 해주면 뒷바람(순풍)이다. 살면서 맞바람을 맞는 경험은 흔히 하게 된다. 예로서 지독한 감기에 몸은 부슬부슬 떨리고 걸어갈 길은 먼데 정면으로 불어오는 칼바람은 발걸음조차 떼기 힘들게 한다.


하체 근육도 키우고 멋진 풍광을 보며 유유자적하겠노라고 자전거에 올랐는데 바람 때문에 전진이 힘들다. 운동이 더 될지는 모르지만 라이딩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뺏어간다. 큰맘 먹고 러닝화를 신고 강변을 달리려고 나왔는데 바람이 안면을 강타한다.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 서서 뛰고 있다.


모처럼 시간과 돈을 들여 골프를 한다. 동행인과 보조원 앞에서 멋진 샷을 날리고 싶다. 들은 건 있어서 클럽을 어느 것으로 해야 하느니 하면서 방정을 떤다. 힘이 들어가니 제대로 맞을 리 없다. 거기다가 공까지 하늘로 솟는다. 설상가상인건 어김없이 맞바람이란 놈이 불어와 비거리 욕심을 무참히 확인사살 한다.


우리는 맞바람에 유난히 민감하다. 자신의 문제를 떠넘기기 쉬운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항상 감사보다는 탓, 원망에 익숙해져 살아온 게 아닌가 한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고 책임을 항상 주위에 돌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


가령 이런 경우다. 형제자매가 많아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학력 평준화 때문에 좋은 교육 기회를 놓쳤다. 한자 사용 금지 시절에 학교를 다녀 어휘실력이 낮다. 힘든 데서 군대 생활하느라 머리를 쓰지 못했다. 학연, 지연 때문에 기회를 놓쳤고 기타 어떠어떠한 사유로 내가 이렇게 되었다.라는 식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한다. 어떤 경우 출연자의 사연을 들으면 그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맞바람 탓을 한다. 사기, 배신, 불경기 등등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듯 말이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온 듯 착각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뒷바람 때문에 순항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항상 내편인 가족이 그러하며 좋은 친구, 스승, 사회적 분위기, 경제 상황, 소소한 행운 등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요인들이 어우러져 오늘의 자신이 있는 것이다.


바람은 죄가 없다! 태풍도 역풍도 순풍도 자연의 요청에 의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되 각종 바람에 대해 어떤 자세로 지혜롭게 대처하느냐를 고민하면 된다. 이상한 바람도 있다. 남녀 간 애정전선에 균열이 생겨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소위 맞바람 피우기인데 이건 오늘의 글과 상관없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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