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 봐야지, 귀찮아하지 말아야지, 피하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 집 거실엔 수십 년 된 화장대가 있다.
그 위엔 정말 족히 20년은 되었을 쓰지도 않은 화장품이 올려져 있는데. 언젠가 왜 쓰지도 않고 두었냐는 내 물음에, '통이 예쁘다, 쓰기 아깝다.'라며 할머니는 답했다.
하도 오래되어 패키지에 있는 제품명은 다 긁혀 보이지도 않는 화장품들은 쓰이지도 못한 채 십수 년을 그 자리에 주욱 나열'만' 되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를 지나 서른이 훌쩍 넘은 성인이 되었어도 말이다.
어쩌면 나도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변해갈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 요즘.
나이가 들었다 해도 변해가는 현실에 맞서 시행착오를 겪고서라도 적당히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자신이 젊었던 시절의 그때 그대로 멈춰있는 사람이 있다. 가끔 그런 모습이 안타깝다가도, 스스로 몸까지 상해가며 고루한 것들을 고집할 때면 답답하기도 한.
할머니는 여태 손빨래를 한다.
좋은 세탁기가 있지만 중간 헹굼 과정이 오면 세탁기를 열어 빨랫감을 다 꺼내 손으로 직접 물을 틀어 헹굼 작업을 한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물에 젖은 무거운 빨랫감을 일일이 다 꺼내어 두세 번씩 헹구고 그걸 곱게 반듯이 접어 탈수를 한다. 체력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방이 자그마치 세 개에 거실, 부엌까지 딸린 집안 바닥을 할머니는 무조건적으로 손걸레질을 한다.
물론 더 깨끗하게 손을 움직여 꼼꼼하게 하는 게 좋다지만, 로봇청소기며, 청소도구를 모셔만 두고서 손걸레질을 굳이 하는 건 오랜 고집이고, 자신 말고는 어떤 것도 미덥지 않음으로 인해 오는 것일까.
그런 할머닌 긴 세월 스스로 나서서 한 어쩌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불필요한 가사 노동에 팔이며 무릎이며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늘 힘들어하곤 했다.
손빨래, 손걸레질 같은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만해도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다분하니까.
또 할머니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된 거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세대에서는 그렇게 해온 방식이 있을 테고. 지금의 변화가 너무 빠를 뿐이니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알려주고 해 보지만 할머니 스스로가 발을 들일 시점을 놓친 것일 뿐일 테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느낀 것은 왜 저걸 안 해, 못해 같은 생각이 아니었다.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때로 그런 모습을 보던 나 또한 이 생각들을 잊지 않길 바라며 적는다.
어느 순간엔 그동안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뒤집혀야만 할 순간이나 경험들이 오면
용기 내 봐야지,
귀찮아하지 말아야지,
피하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그 사이에서 정확하지 않은 내 불신 하나만으로 새로운 것을 배척해 버리는 것은 먼 나중의 내게 아쉬운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고.
내가 하던 대로가 아닌, 누군가가 하던 대로 여도.
누군가 해보지 않은 채로라도.
조금씩 내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버전으로도 찍어 먹어봐야.
밀려나지 않고, 속상하지 않으며, 어쩌면 미래에는 나름의 뿌듯함마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