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었고, 바닥은 맨발로.

그때의 우리들은 세상 죽을죄를 지은 줄로만 알았지

by 딛우

절대,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좋은 기억이었다면 더욱 자주 떠올릴 테지만, 애써 묻어두었다가

불현듯 모난 마음 어딘 가 손끝에 비쭉 솟아오른 게 만져지는 날.

그 일이 수면 위로 오른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한 선생님이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고,

늘 모자를 눌러쓰고 눈은 잘 보이지 않던, 체육복 차림으로 자기 몸길이만 한 커다란 매를 들고 다니는 그는 저 멀리 교문 앞에 서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돌아가면서 선생님들의 휴게실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난다.

테이블을 걸레로 닦고, 바닥을 쓸고, 재떨이를 비웠던 것도 같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어느 날은 걸레질, 빗자루질, 쓰레기를 비우는 것이 순서가 좀 뒤바뀌어 재떨이를 가장 늦게 비웠던 날이었다. 당번이었던 친구와 나는 둘이서 닫힌 문을 등진 채 바닥에 빗자루로 쓰레받기에 먼지를 모아 담는데 열중했던 때, 순간 우리 머리 위로 정말 빠른 속도로 슬리퍼 한 짝이 날아와 문 위로 쿵! 소리를 내며 부딪힌 뒤떨어졌다.


놀란 눈으로 고갤 들자 저 앞엔 그 선생님이 있었다.

까만 얼굴을 모자로 가린 채 말이다.


"이거 왜 안 치웠어?"


그가 슬리퍼를 던진 이유는 제 앞에 놓인 재떨이가 말끔히 비워져 있지 않아서다.

나와 함께 당번이었던 친구는 문 앞에 서서 몇 분간 그의 꾸지람을 듣고서야 휴게실을 나설 수 있었다.



photo-1650526777282-d05d2779dda5.jpg © jhudsongraves, 출처 Unsplash



체육시간.

원래 체육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시간표 변동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뜀틀을 끌어다 놓고.

반 아이들이 열 맞춰 서있는 중 듬성듬성 비어있는 자리는.

그가 지목한 몇몇의 아이들이었다.


그중엔 나도 있었는데, 이유는 운동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난 엄마가 사준 워커를 신고 있었는데.

우리를 쭉 일자로 줄 세워둔 그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커다란 매를 들어 아이들의 신발을 한 번씩 콕콕 찌르며 지나갔다.


"운동하는 시간인데 운동화가 아니면 돼? 다 신발 벗어."


그의 말 한마디에 꼼지락대던 우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만 신은 채 운동장의 흙바닥 위에 서선 정말 죽을죄를 진 양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짜리 애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야, 너희들 빨래는 누가 해?"

"........."

"누가 해?"

"부모님이요...."

"양말도 벗어."


쥐 죽은 듯 대답하는 우리의 대답에 그는 신이라도 났을까.

아니, 분명 즐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발에 이어 양말도 벗은 채 운동장 위에 섰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바닥은 맨발로 딛고 참고 서있기엔 그 어린 나이의 우리에겐 조금 버거웠지만 그에게 이미 자비란 없다.


"똑바로 서."


나머지 정상적으로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이 뜀틀을 한 명씩 뛰어넘는 걸 다 지켜보게 한 뒤, 그는 우리에게도 맨발로 뜀틀을 넘게끔 했다.


그날의 발바닥 아래로 느껴지던 후끈하고 쓰라린 느낌, 오돌토돌한 돌가루가 박히던 느낌, 사박사박하게 발가락 사이로 침범하던 모래알의 찜찜한 기분이 생생하다.


그는 선생으로서 뭘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날, 맨발로 운동장을 뛰었던 아이들 중 창피하고 속상한 마음 말고 다른 걸 얻어 간 아이들이 있긴 할까.


그때의 우리들은 세상 죽을죄를 지은 줄로만 알았지.

그의 그 말들이 옳기에 그저 뉘우쳐야 하는 줄로만 알았지.


그는 여전히 선생님일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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