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통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내세울만한 특기도 없었다. 누군가를 알려거든 그의 취향을 보라는 말도 있는데 나는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이도저도 아닌 무맛이었다. 독서와 영화보기를 취미로 소개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기 시작했을 즈음, 삶의 권태도 함께 찾아왔다. 벌써부터 무슨 권태를 이야기 하냐고 하겠지만 26살 11개월에 입사하고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다. 직장 내에서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발령 때가 되면 일이 많은 부서로 불려다녔다. 하지만 마음처럼 안 되는 날들이 더 많았고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부단히 채찍질하며 조직에 충성하고 있었다. 회사생활이 재미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같은 팀 선배가 내게 물었다.
“넌 인생에 낙이 뭐냐?”
선배 눈에 자기보다 더 새파래야 할 입사 N년차가 많이 시들해 보였나보다. 이 말에 그날 밤 침대위에서 서럽게 울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게 제일 컸겠지만 마땅히 그 질문에 반박할 만한 나만의 서사가 없었다는 것이 더 쪽팔렸다. 입사 후 내 삶은 일로 인해 생기는 갈등과 스트레스만이 전부였다. 잠자기 전에도 회사 일을 걱정하거나 다른 대안을 생각하다 아침에 잠드는 일도 허다했다. 이런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체력이 달리고, 불면증이 생기고, 삶에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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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깨달았을 때 생긴 내 모토가 있다. 나만의 서사를 만들자.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일로 남들의 인정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자. 이런 대단한 결심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20대 중반 내 인생, 아직까지 취향이 없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관심 가는 일을 덜컥 시작하고 빨리 손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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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지만 끝을 맺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하는 선에서, 시간에 상관없이 나열해 본다. 요가, 댄스, 전화 일본어, 새벽반 일본어회화, 일본어 개인교습, 줌바댄스, PT, 수영, 캘리그라피, 화분 기르기, 기타학원, 모닝루틴도 했다. 당연히 완강할 거라는 근자감으로 호기롭게 6개월치 수강료를 기부한 학원도 있고, 나 자신을 알게 되었을 즈음 학원에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셀프 학습을 시도했던 것도 있다. 정말 작심 3일이었던 적도 있고 길면 3개월 정도였던 것도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면서 나는 정말 근성이 없구나 싶다가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야 했던 간절함도 보여서 혼내려다가도 애썼다고 토닥이고 싶다.
덧붙여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마다 새 사람처럼 부풀어 오르는 내 심장에게 찬사를 보낸다. 무수한 작심삼일을 잊게 만들고 또 다른 것에 도전하게 한 힘찬 펌프질이 없었다면 저런 취미에 발이라도 담가 봤을까. 이렇게 자조하면서 내 실패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려고 한다. 기억들을 복기하다 보면 그 때의 내가 더 잘 보일 것 같다. 그 때의 상황, 그 속의 나. 성취감은 없지만 미완성 속의 나를 바라보면 느껴지는 바도 있을 거다. 여러 가지 작심삼일을 겪은 나는 입사 10년차,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는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 보는 일은 내게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작심삼일 리포트를 써내려가자면 그것을 그만둬야 했던 이유나 변명들이 주를 이룰 거고, 그 이유가 아주 터무니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창피하다 할지라도 미화하지 않고 그 때의 나를 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에 이르렀을 때 조금은 끈기가 생긴 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독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