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열등생이 되어야 했다

by sozero

일주일 만에 그만 둔 수영이야기를 할까 한다. 물에 뜨기 위해서는 온 몸에 힘을 빼야 한단다. 물에 나를 맡겨야 하는 것이다. 수영 수업에서의 나를 생각해보니 일찍 포기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 안의 무엇이 날 무거운 돌덩이로 만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회사와 집 중간 동네에 위치한 구민체육센터의 수영 초급반을 다녔다. 퇴근 후 갈 수 있는 저녁 8시 수업이었다. 게다가 주 3회 수업이라 그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편하게 인터넷 등록을 하고 늘 그렇듯 기대에 차서 첫 수업에 들어갔다. 초등학생 이후로 수영장에 발을 넣어본 적도 없는 나는 수경의 끈도 조절할 줄 몰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이것이 당시 나의 수준이었다.

photo-1591285713698-598d587de63e.jpg?type=w1

© youbeyo, 출처 Unsplash


첫 수업은 물에서 숨을 쉬는 연습이었다. 정식 풀장이 아니라 허리께쯤 오는 작은 규모의 풀장에서 첫 수업을 듣는 사람들만 따로 연습했다. 초보자 풀장 맞은편의 일반 풀장에는 연속 수강을 듣고 있는 사람들만 따로 모여 있었다. 수영강사는 나 이외에 두어 명의 초짜 수강생에게 호흡법을 가르쳐주고 몇 번 연습하는 것을 코치하고는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그 뒤로는 다시 강사가 건너올 때까지 풀장 난간을 잡고 호흡법을 연습해야 했다. 물에 몸을 가볍게 띄우고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담그고 내쉬며 다시 들었다. 호흡의 원리는 생각보다 쉽게 체득되었고 수없이 반복했는데 강사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15명은 되어 보이는 수강생들을 1명이 코치했다. ‘이쯤하면 된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습을 멈추고 건너편 수업장면을 보거나 잠깐 난간에 앉아 쉬었다. 그러기 몇 번 반복하니 강사가 다시 건너와 발차기를 가르쳐 주었다.


“몸을 일자로 만드시고요. 엉덩이가 물 밖으로 쑥 올라오면 안돼요. 너무 꺼져도 안 되고요. 발로 차는 게 아니라 다리를 위아래로 차는 겁니다. 발만 파닥파닥 해서는 앞으로 절대 안가요.”


강사의 말대로 난간을 손으로 잡고 몸을 쭉 펴서 띄운다. 엉덩이가 물위로 쑥 올라와서도 안 되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어도 안 되니 배에 힘이 꽤 들어간다. 근력이 없는지라 다리 전체를 굽히지 않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어설프게나마 자세를 따라잡는 내 발차기를 몇 번 보더니 강사는 다시금 건너편으로 갔다. 다시 혼자만의 연습이었다. 건너편 사람들도 그다지 대단한 걸 하고 있지는 않았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로 레인 반 바퀴를 찍고 돌아오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는 그 모습도 많이 부러웠다.

첫날은 이렇게 락스물의 맛을 보는 정도로 끝났지만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운동 후 느끼는 개운함과 샤워실 특유의 물 냄새도 좋았고 체육센터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밤바다가 있었던 것도 하루의 멋진 마무리였다. 당시 체육센터는 해수욕장을 낀 도로에 있었고,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낭만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밤바다를 일주일 후에는 보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두 번째 수업에는 일반 풀장에 입성했다. ‘이쪽’과 ‘저쪽’ 간에 사실 뭐 그리 대단한 벽이 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20명 안팎의 수강생들이 수영장 난간을 잡고 간단히 발차기 연습을 했다. 그러고는 첫날 수업에서 봤던 킥판 발차기로 레인 반 바퀴 돌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레 늘 하던 사람이 앞서서 갔고 익숙한 순으로 꼬리를 물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gfb56be77b8fe49d289bff3e45bb2364e2e9b848014af9f5802e90d68436c7a75beab213dc11.jpg?type=w1

© Pexels, 출처 Pixabay


거의 마지막 그룹에서 출발한 나는 시작은 남들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몸이 출발선을 떠나 중간쯤 지났을 때 앞 사람과의 간격이 꽤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뒤에서 나를 뒤따르던 사람의 킥판이 내 발에 닿는 순간 뒷사람의 속도도 맞춰주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레인 옆에 죽 늘어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압박감과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날은 수업 내내 '다른 사람에게 민폐주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만으로 고군분투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그 클래스의 열등생이었다. 살면서 나는 뭘 해도 중간은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잘 안 되는 걸 만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몰랐고, 다만 그만 둘 좋은 핑곗거리로 소비했다.


생각해보면 이제 갓 두 번째 수업을 들었던 내가 클래스에서 제일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초등생 이후로 제발로 수영장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것을 인정했다면 그렇게 실망이 크지 않았을 텐데, 그 땐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내가 끝내 물속에 꼬르륵 가라앉았던 이유는 내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나는 뒤쳐져서는 안돼.’라는 자의식의 무게 때문이었다. 쪽팔릴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다 쳐도 빨리 훌훌 털면 될 일이었는데 다른 수강생들 의식하느라 혹은 배려하느라 내가 빠져주는 결론을 택해버렸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난 잘 할 거야라는 기대보다는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중요하다. 자기 평가 후에 형편없는 나를 발견했더라도 기죽지 말자. 남들이 내 앞에 가면 어떻고 내 뒤에 누가 없으면 어떤가. 20대의 나는 그것이 또 하나의 패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바라보는 30대의 나는 오히려 실소가 나온다. 뭐 그런 사소한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얼굴에 철판 하나 깔지 못했던 것인지.

내가 쪽팔려야 했던 대상은 나를 앞서갔던 사람들의 무표정이 아니라 언젠가 그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수도 있던 가상의 나였다. 나는 여전히 물에 뜨지 못하지만 기꺼이 열등생이 되고나니 머릿속은 한결 가벼워 졌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띄우기보다 그냥 꾸준히 다녀볼 걸 그랬다. 어쩌면 지금의 나 물속에 몸을 띄워 자유롭게 레인 한 바퀴는 거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프롤로그) 직업이 전부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