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엄마를 부를 때

by sozero

© Endho, 출처 Pixabay


딸아이가 이제 '엄마, 아빠'라는 말을 똑 부러지게 한다. 처음 엄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우리 아이가 이제 말이 트이는구나 하고 안도했고, 마냥 귀여웠다. '어마, 어마, 압파, 압파' 하며 입을 귀엽게 벌리고 오므리는 아이를 보자면 사랑스러움의 현생이 이 아이인가 싶을 정도다.

14개월 차가 된 지금은 '엄마야, 아빠야' 하며 발음까지 정확해지고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말하는데 진짜로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고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있는 느낌이다. 표현은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단어가 2개밖에 없어서 안쓰럽다.

간혹 진짜로 호칭으로써 부모를 찾을 때는 자기 나름의 소통 법칙이 있다.
아빠는 좋을 때, 엄마는 필요할 때 부르는 것.
좋을 때는 그저 좋을 때다. 놀다가 기분이 좋으면 '아빠, 아빠',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아빠?', 도어록 소리가 들려도 '아빠?'.
감탄형과 의문형, 어떤 때는 '아빠 빠빠' 따발 총형으로 아주 좋단다.

필요할 때는 좀 더 다양한 상황이 있다.
숟가락질이 안될 때, 사운드북소리가 안 켜질 때, 소파에 엉덩이가 꼈을 때,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섭섭할 때, 책 읽어 달라는데 엄마가 모른 척할 때, 국민 문짝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힘들 때 등등 수없이 어려운 순간들에.
때로는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눈을 똥그랗게 뜨기도 하며 엄마라는 한 단어에 자기의 희로 애를 담아낸다.

그렇게 동네북 두드리듯 엄마, 엄마 해대는 딸을 보면서 누군가가 떠올랐다. 바로 중학교 시절 나이다. 과묵한 나의 앙다문 입술이 벌어질 때는 '엄마, 그거는?'이라는 말을 할 때였던 것 같다. 때로는 '안 빨았어?' 혹은 '왜 버렸어?'라는 항의성 멘트가 더해지기도 했고, '미리 말을 하던지.' '네가 단디 챙겨야지.' 같은 당연한 핀잔을 되받기도 했던 그때의 내 모습.

이 시절의 내가 지금 내 딸과 오버랩된 것은 한 살짜리의 '엄마, 엄마'가 초, 중, 고 어쩌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질 것이라는 직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빠보다 자주, 쉽게 불리고 늘 해답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엄마를 목적 없이 불러 본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장조림은 어떻게 하는지, 이 날 아이를 잠깐 돌봐 줄 수 있는지, 같은 의문형의 문장들만 떠오른다. 나는 아직도 어릴 때의 인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쳇말로 시다바리가 될 나의 미래가 암울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엄마, 엄마' 하며 내게 의지하는 딸에게서 여전히 그때의 모습을 간직한 나로 이어지는 잔상을 보며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를 느낀다. 엄마는 자식의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나는 이제 겪기 시작했고 이젠 내 엄마를 어떤 존재로 불러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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