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이 꾸는 꿈이다—lucid dream
삶과 생존을 사유하는 날들이 늘었다. '나는 살고 싶은가?' 단순한 물음 앞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기에, 조건을 붙여본다. '생존과 맞바꾸어야 할 신체적 고통이 수반된다 해도, 나는 살고 싶은가? 그래야만 할 이유가 지금 내 존재 어딘가에 숨 쉬고 있는가?'
답은 명징하다. 아니다. 온전했던 지난날들조차 내일로 향하는 터럭 한 올을 쉬이 이어내지 못했다. 강요된 숨결을 붙잡기에 이미 충분히 잗다란 의지의 파편을, 나는 손끝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진지하게 치료 거부를 고민했다. 그러자 죽음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해졌다. 선택할 수 있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므로.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라도, 준비해야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지 모른다.
'삶의 유한함'이 관념적 이해를 건넌다. 그것은 이제 숙명적 진실로 내 앞에 선다. 그것이 빚어낸 정반(正反)의 경계가 하도 선연하여, 외계(外界)의 자극—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허락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발자국을 죽이고 준비된 방으로 향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포근한 침실로. 그리곤 깊은 잠을 청한다. 꿈을 꾸는 동안 내내 깨어있기를 바라면서.
2024.08.28 생각노트 발췌
다행히 전이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한 것 치고는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았고, 암세포의 뿌리도 그리 깊지 않다고 했다. 운 좋게도 빠른 시일 내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물론 수술 후 전체 조직검사에서 상황이 좋지 않아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지만.
문제는 이후의 삶이었다. 죽음을 들여다본 자는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에 어떻게 시간을 쓰며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이 모든 질문들이 새로운 무게로 다가왔다.
아직도 모든 질문에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주 선명하게 남은 사실이 하나 있다.
삶은 죽음이 꾸는 꿈이다.
언제 깨어날지 모를 이 꿈속에서,
낭비해도 되는 순간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려본다. 꿈에서 깨기 전, 완성하고 싶은 101가지 장면들을. 이 시리즈는 순간을 더 깊이 살아내기 위한 약속, 그 여정의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