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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Feb 29. 2024

전주 이색적인 안주

(진미집)

  선을 벗어나고 넘는다는 것이 내게는 불안감을 준다. 그래서 정해진 틀을 따라가는 것에 수긍하였다. 삶이 무미건조하면서 예상이 되는 것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때로는 주변에서 가끔은 일탈이 주는 쾌감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종국에는 나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도 하나정도를 끼워 맞추어 꼽자면 술인 것 같다.


 사실 음주 또한 스무 살 이전까지는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본 술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애주가였던 아버지는 항상 잔을 넘치는 정도로 술을 즐겼다. 그로 인해 어머니와의 충돌이 꽤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도대체 저 투명한 물 같은 것이 뭔 매력이 있길래 다툼까지 감내하면서 마시는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내게는 술은 부정적인 이미지였고 접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제의 문을 열었다. 처음은 쓰다는 감정만에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자리를 피하기가 힘들었고 이런저런 핑계가 먹히지 않았다. 결국 한잔이 두 잔이 되었고 차곡차곡 쌓였다. 그사이 나는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상처받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항상 변화는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오듯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술이 달게 느껴졌고 고단함을 위로해 주는 기분을 느꼈다.


  거창하지도  않으면서 큰 비용이 드는 것 또한 아니기에 나는 이 희열을 종종 즐겼다. 하지만 도파민에 지지 않으려 나름의 절제의 끈으로서의 철칙을 만들었다. 음주는 항상 맛난 안주를 먹으며 즐기자였다. 그렇게 하면 뭔가 술이 주는 즐거움이 희석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름 이것을 유지하고 지키다 보니 안주에 대한 기준도 생겼다. 오늘도 그렇게 새로운 음주의 선을 지키기 위해 동분 서주한다.



안주


 한국인의 술에 대한 사랑은 전 세계 어느 나라랑 비교하여도 뒤처지지 않는다.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고 심지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제조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술자리 문화를 체험해 보면 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공간에는 유대도 있고 소통도 있고 유희도 있다. 더불어 맛난 안주도 있어서 공교롭게 한국의 음식 문화를 일부분 이해하는 계기도 제공한다.


 안주 누를 안(按) 자에 술 주 ()가 합쳐진 말이다. 술의 기운을 누른다는 의미인데 그 수단으로 음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안주를 대하는 동서양의 차이를 보면 꽤나 흥미롭다. 음주가무의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구권 국가로 여행을 가면 곤란한 상황을 겪는다. 바로 이곳에서는 통상적으로 안주라고 정의 내리는 음식들이 술집에서 판매하지 않는 경우를 마주한다.


 이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양의 문화는 조상에게 자손들의 안녕을 비는 제사 행위가 예부터 이어졌다. 이러한 의식의 절차에는 술과 음식이 올라가고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나눠주는 것이 풍습이었다. 이로 인해 술은 음식과 곁들여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쌓이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런 술자리를 통해 공동체 유대와 관계 발전의 계기를 제공한다.


 서구권의 유럽의 국가들은 물에는 석회질이 많다. 이러한 수분을 섭취하면 복통이 일어나기에 대안이 필요했고 그들은 와인이랑 맥주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술은 음료수이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음료수를 마시는데 굳이 음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또한 근대로 들어와서는 증류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생기면서는 술 자체 본연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안주가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지리적인 환경이 안주의 유무를 좌우한다는 것이 신기하며 재미있는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고기사랑과 양념 구이

 

 술의 달큼함을 즐기는 나라인 한국에 안주는 정말 다양하다. 대중적인 부분을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신선함이 있다. 가끔 보면 술에 진심을 쏟는 만큼 안주도 그에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나 또한 넓은 선택의 폭 사이에서 유영을 하다 나름의 선호 리스트를 만들어 냈다. 그 속에서는 고기가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쓴맛이 기분 좋은 달큼함으로 변모시키기에  충분히 적합한  음식이다.  적당한 기름기와 식감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짐에 좋은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고기 사랑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 가공식품을 포함해서 가장 생산액이 많았던 것은 쌀이 압도적 1위였다. 그래서 나라별 주식으로 분류하게 된다면 쌀이 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빅뱅에 지디가 그러지 않았는가 영원한 것은 절대가 없다고 말이다. 2016년 돈육 생산이 쌀을 뛰어넘었다. 우리나라의 고기의 선호가 어마 어마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고기사랑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재미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과거에는 고기의 범주를 소로 한정하여 생각하였다.  농경 사회에서 소는 경작에 큰 비중을 차지한 동물이었다. 그러기에 개체수를 늘리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고 식용의 목적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늘어난 소의 숫자에 따라 인식의 변화는 조금씩 변모하였다.


  나라에서도 도축을 한정적인 조건하에서 허용하였고 그렇게 맛본 고기의 맛에 사람들은 매료되었다. 그것을 반증하는 역사적 고증 하나가 있다. 조선 후기까지 소를 마음대로 도축하여 잡아먹는 것은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엄중한 처벌에도 사람들은 몰래 잡아먹었다는 것을 소고기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느껴지게 한다.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허용된 도축에는 소가 다리를 다치거나 경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했다. 이에 편법을 활용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유독 명절에는 소들이 많이 다쳤다는 일화들도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만큼 즐기는 방식도 다양했다. 대체적으로 굽는 것들이 많았다. 이를 통칭하여 소육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불사를 소(燒)에 고기 육(肉) 자를 붙인 구운 고기를 명칭 한 단어이다. 수육에 장르를 세분화하면 다양했다.  물에 삶았다가 굽는 것부터 생고기에 소금만 구워서 굽는 것까지 매우 형태가 다채로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고급진 것은 양념구이였다.


 농경사회에서 경작의 수단으로 활용된 소들은 육질이 질기고 먹기에는 냄새가 거슬렸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양념을 활용하였다. 간장, 소금, 참기름, 마늘 같은 향이 강한 재료들을 통해 고기를 재웠고 이를 통해 육질을 부드럽고 냄새를 맛나게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고급형태의 요리 해당되었다. 우리가 즐기고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인 불고기도 이런 과정에서 파생되었다.


김밥

 

 소풍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음식 하면 김밥이 자연스레 나올 것이다. 설렘임과 추억이 가미된 이 음식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감이 크다. 나 또한 다수의 틀에 벗어나지 않고 김밥을 선호한다. 특히 편의점에 가면 거의 필수로 구매하는 편이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에 간편하게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요리는 드물다. 이런 면에서는 김밥은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음식 중 하나이다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빨리빨리에 특화된 한국 사회에서 분위기와는 코드가 잘 맞는다. 이러한 김밥의 선호도는 단일가게로는 치킨집 커피전문점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21년도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는 18,841 곳이나 되는 김밥집이 있었고 이는 피자나 햄버거 가게를 상위하는 숫자였다. 더불어 이곳의 연간 매출액은 4조 2천억 원이며 종사자수만 51,304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 수치를 보면 한국은 김밥 공화국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음식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알려진 걸까 궁금하였다. 김밥의 유래에 대한 부분은 2가지 분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한국에서 자생한 고유음식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는 것이 갈린다. 일단 전자로 이야기하면 19세기 조선시대 풍속지인 동국세시기와 조선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부터 거론되기 시작되었다.


 정월대보름 복이나 풍년을 기원하면서 김이나 배춧잎 곰취잎 등을 밥에 싸 먹는 복쌈이라는 형태의 음식이  있었다. 이중 김으로 싸 먹는 형태를 김 쌈이라고 불렀는데 김밥을 기원이 여기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반면 후자는 일본의 후토마키라는 요리가  일제강점기에 전파되어 파생된 것이 김밥이라는 주장을 한다. 후토마키는 식초와 설탕으로 간을 한 밥에 회와 계란이나 맛살들을 넣고 김으로 돌돌 만 음식이다. 19세기 후반  도쿄의 도박꾼들이 도박을 할 때 간편하기 먹기 위한 곳으로 만들어진 요리라고 한다.



 2가지 기원에 대한 설들이 모두 각각의 설득성이 있다. 뭐 하지만 크게 그것이 원류가 중요한가 지금 이처럼 김밥을 애정하고 즐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나는 편의점에서 구매한 야채김밥을 먹으며 타이핑을 치고 있다. 그만큼 이 음식은 우리 삶과 가까이 있고 친숙하다고 생각된다. 김밥 한 줄이 주는 즐거움과 포만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진미집


 가끔은 나의 삶에 일반적인 형태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마주하면 호기심이 생긴다.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생각만으로 그치는 날들이 많다. 왜냐면 앞서도 말했듯 나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을 즐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예측이 되고 평안하다 뭐 그것이 썩 나쁘지는 않다. 어찌 보면 모르는 것에 도박을 하는 것보다는 확률이 일정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내가 나이를 먹고는 약간의 틈이 생기고 그 속에서 조금씩 변화도 하였다. 그로 인해 가끔은 생각과 상상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그 익숙함을 벗어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여행이라는 도박판에서 나름의 베팅을 하며 어느 식당 한편에 앉아 있다. 노포 맛집의 외관에서 느낀 호감이 꽤나 만족스럽다. 내부에는 왁자지껄한 소음들 사이에 뭔가 정겨움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곳이 내게 끌리고 틀을 벗어난 일탈의 범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안주에서 시작되었다. 보통 내가 술과 즐겨 먹던 음식은 삼겹살, 소고기, 치킨 등 고기 종류들이거나 국밥, 감자탕, 김치찌개 같은 국물 요리들이었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는 놀랍게도 안주로 김밥과 돼지불고기 조합을 권하고 있다. 너무나 상상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 합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너무 궁금하였다.


  여행이라는 마취제로 둔감화된 두려움에 탈선을 해보았다. 테이블 위에 새빨간 양념의 돼지 불고기와 김밥이 놓였다. 거기에 상추와 마늘 쌈 재료들 가락국수 국물이 추가로 세팅되어 나왔다. 일단 김밥은 보통 우리가 편의점이나 전문점의 사이즈보다는 작고 꼬마김밥이라 불리는 크기보다는 컸다. 속재료는 계란, 단무지, 시금치, 당근 등 단출한 형태이다. 일단 김밥 하나 집어서 먹어보았다. 뭔가 간이 심심하지만 익숙한 맛이었다.



 그리고 돼지불고기도 한점 집어 먹어보았다. 입안에 들어가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에 나도 모르게 진실의 미간이 나왔다. 너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느껴지는 연탈 불고기의 불향과 쫄깃함이 정말 술 안주로 적격이었다. 그래서 바로 소주를 한병 주문하였다. 소주잔에 한가득 채운 뒤 다시 한점 집어 먹어보았다. 기름기가 덜하고 씹으면서 느껴지는 고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여운을 더 자극시키기 위해 채워둔 잔을 들이키며 비워냈다. 와 라는 감탄과 오래간만에 술이 달게 느껴졌다.


 각각의 맛을 음미해 보았으니 오늘의 목적에 맞는 일탈의 도전을 해보려 준비를 하였다. 테이블 위에 제공된 상추에 돼지불고기 한점 김밥 한 개 마늘 하나를 올려 쌈을 싸서 먹었다. 피식 웃음이 나오며 드는 생각은 이게 왜 맛있지였다. 고깃집에 사서 고기와 밥을 쌈 싸 먹어 보기도 하였지만 그것 과는 또 다른 매력이 이 있다. 김밥 속 재료의 아삭함과  단무지의 산뜻함이 기름진 맛을 잡아주고 상추가 머금고 있는 수분과 마늘향이 알싸하게 올라오며 깔끔한 맛을 선사한다. 거기다 고기의 쫄깃함 식감이 방점을 찍어주면서 즐거움을 준다.



 돼지 불고기의 양념은 색에 비해 그리 맵지 않고 단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 질리지 않았다. 이곳의 고기의 맛 중 하나는 화로라고 한다. 3개의 화덕을 약불 중불 강불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고추장 양념이 베이스가 된 고기들은 불에 타기가 싶기에 먼저 약불에서 익히고 중불에서 초벌 된 상태에서 기름기를 빼고 강불에서 강한 불맛을 입힌다.  이러한 과정 때부터 주문하고 고기가 나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러나 뭐 시간이 문제겠냐 이렇게 맛이 좋으면 기다림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어느새 비워져 가는 고기들과 김밥 그리고 술잔이 아쉬웠다. 미지의 호기심이 오늘은 나에게는 또 다른 추억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것 같아 괜스레 이 일탈을 선택한 내가 뿌듯했다. 왠지 이 전주를 생각하면 내게는 이젠 콩나물국밥 전주비빔밥이 아닌 김밥 쌈이 먼저 떠올라질 것 같다. 48년이라는 세월을 버티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매력을 준 저력에 나도 함께 매료되었다.  내 욕심이지만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허영만 화백은 맛있는 식탁을 만나면 발길이 떨어지지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곳이 내 발을 잡아두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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