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 소국밥
겨울의 끝자락을 눈앞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입김으로 체감한다. 나는 이 계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뭐 딱히 선호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는 없다. 굳이 하나를 만들어 내자면 순진한 낭만을 믿던 어린 시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아주 대차게 바람을 맞은 기억정도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계절이 낯설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뭔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움츠려든다는 것이 평소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고 목구멍으로 나의 생각을 토해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짠해 보인다. 예전에는 동절기의 곰처럼 겨울잠을 자듯 봄을 기다렸다. 하지만 동면의 시간은 더 애잔했고 고독했다. 그래서 나가보기로 시작하였다. 찬 바람을 마주하며 역시나 나는 의연하지 못하였다. 몸도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던 인생 소울푸드를 다시 마주하였다. 따뜻한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빠르게 얼어붙은 것들을 녹아 버리게 만든다. 왠지 이것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의 식탁 위에는 바늘과 실처럼 밥과 국은 필연적으로 올려진다. 그래서 가끔 둘 중 하나라도 부재가 되면 뭔가 낯설고 불안함이 든다. 또 누군가는 이 필연이 전제조건이 되어 밥과 국이 없다면 식사가 어렵다고도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국을 정말 사랑하는 민족이다. 정말 다양한 형태로 식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유독 돋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국밥이다. 국과 밥을 말아먹는 방식의 요리는 남녀노소를 가르지 않고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토착화되어 소비되고 있다.
나도 국밥을 매우 좋아한다. 학창 시절 급식과 도시락을 팽개치고 산 험한 교문을 요리조리 피해서 나가서 먹은 음식이 바로 돼지국밥이었다. 뜨끈하면서 국물 사이에 쫄깃한 고기가 한참 배고픔이 채워지지 않는 나에게 행복한 포만감을 주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다음날 해장 선호 음식으로 국밥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아마 나의 핏줄에는 국밥이 흐를 것이라는 말을 농으로 던질 수도 있다.
국밥이 문헌상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국에 밥을 만 음식이라는 의미로 탕반(湯飯)이 라고 불렀다. 국밥이 조선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후기 때부터이다. 병자호란 이후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보부상들이 전국팔도로 활동범위가 커졌다. 이런 상인들이 움직이는데 쉼터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주막이었다. 이 공간에서 보부상들은 여독도 풀고 요기도 해야 했다.
주막은 많은 이들이 오며 가며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해 갔다.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그 시대의 트렌드를 주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보부상들이 소히 우리말로 컴플레인을 걸어 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식은 밥이었다. 국물이야 데워서 따뜻하게 내워 놓을 수 있지만 밥은 그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바로 고안한 것이 밥을 수차례 국물에 담그기를 반복해서 밥알을 부드럽게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토렴이라고 하며 일부 국밥집에서는 이런 방식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국밥의 인기는 컸다. 당시에는 소고기나 개고기를 푹고와서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한 장국밥이 메인이었다. 시간이 지나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백정들이 정육점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들은 살코기를 판매하고 남은 부위들을 활용하여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설렁탕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전투식량으로 소고기 통조림 제조를 하였는데 그로 인한 소고기 생산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안 쓰는 부위 둘이 발생되었고 설렁탕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당시 서울에 인구 집중되었기에 이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설렁탕 하면 한양이고 명물 중 하나이다라는 말까지 구전되었다. 이런 소고기의 수요가 크니 어느 순간 공급이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한 대체재로 떠올른 것이 바로 돼지이다. 이런 돼지국밥에 프라이드를 가진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이 지역에 가면 안 먹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동네마다 정말 많은 돼지국밥 집들이 있고 꽤나 맛들도 상향평준화 되어 있는 편이다.
부산에 돼지국밥은 썩어 먹는 것이 국롤이다. 부추도 넣고 깍두기국물도 넣고 새우젓도 널고 마구 믹서 된 이 국물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앞다리살과 삼겹살 목살을 국에 넣는데 이는 기름기가 있는 부위로 수육으로서 맛이 여간 좋다. 부산은 특히나 예전 토렴 방식을 하는 가게들도 많이 있어 국밥의 도시로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따뜻한 국물에 쫄깃한 고기의 수육도 그리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은 참 매력적인 음식으로서의 요소를 갖추었다. 뜨끈한 열기를 호호 불고 들이킨 뜨거움에 입압이 온기가 가득 차진다. 그 순간 입가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다시 방문한 대전은 과학과 꿈돌이 도시의 어릴 적 이미지가 성심당을 방문하여 빵의 도시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이 지역에 대한 나의 정의가 너무 편협적이고 맞지 않다고 말을 하였다. 나이를 먹고 점점 좁아지는 배포와 이해심은 반감이 들었다.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왜 그래 하는 마인드였는데 유튜브를 보다 나의 뿌리가 되는 고향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근데 그것을 재생하며 아 저건 아니다 아 저건 과장이다 에이 저 사람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국 입장이 바뀌니 스탠스가 달라졌다. 그래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KTX 어플을 켜고 차편을 예약하였다. 이번에는 이 도시에 대한 다른 매력 포인트를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른 아침 출발로 인해 기차 안에서 살짝 눈을 붙였다.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축복받은 것 같다. 나는 한번 마음먹고 눈을 감으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잠을 잘 잔다. 그래서 장거리로 이동을 교통수단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최적화되어 있다.
살짝 잠을 청했다 생각했다 했는데 어느새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부랴 부랴 짐을 챙겨 하차를 하였다. 다시 방문한 대전의 풍경은 낯섦이 덜했다. 일을 하면서 아침을 잘 안 챙겨 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왠지 여행이라는 프레임이 생겨지면 허기짐이 자연스레 발길을 식당으로 나를 이끈다. 겨울의 끝자락에 찬 바람이 얼굴을 지나치며 피부를 자극하였다. 따뜻한 것이 당겼다. 떨어진 이 몸의 체온을 데워줄 무언가를 채워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머릿속을 스친 메뉴는 국밥이다. 경상도인의 소울푸드이자 나의 학창 시절을 든든함을 주었던 음식이 본능적으로 떠올라진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서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는데 유독 거론이 많이 되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근데 살짝 마음이 머뭇거렸다. 왜냐면 국밥 하면 내게는 돼지인데 소국밥이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지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테마는 다른 것들을 찾아 확장시키자였기에 가보기로 하였다.
가게 상호면은 태평 소국밥이라는 곳이었다. 방문에서 먹을 당시까지는 태평소 국밥이라 인식하여 왜 이름에 태평소를 붙이지 의아했다. 그냥 여기 음식을 먹으면 태평소 악기의 소리처럼 경쾌한 기분이 생겨서 그렇게 지었나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태평 소국밥이었다. 한참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한 나 자신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유명한 곳답게 외부에 대기 시간 동안 추위를 피할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왠지 기대가 되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었는데 초급자용에는 적합한 대중성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빈 테이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소국밥 주문을 하고 촬영을 할 카메라를 좋은 구도에 맞게 삼각대로 세팅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색다른 음식이 접시에 놓여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시 메뉴판을 보니 육사시미였다.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용기를 부추겼다. 직원분을 다시 불러 추가로 주문하였다.
테이블 위에 주문한 소국밥과 육사시미가 세팅되었다. 일단 소국밥은 비주얼은 군산의 한일옥에서 먹었던 소고기 뭇국과 유사해 보였다. 다만 국물은 상대적으로 조금 탁함이 느껴졌다. 수저를 집고 내용물을 확인하여 보았다. 푸짐하게 가득 차 있는 고기들이 일단 눈에 들어왔다. 왠지 득을 본 것 같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국물을 한술 퍼서 먹어 보았다. 와 정말 진짜 맛있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적당한 기름과 감칠맛이 입안을 즐겁게 만들었다.
고기는 먹기 좋은 사이즈로 손을 찢은 것 같다. 양지 부위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식감도 좋고 적당히 잘 삶아진 느낌이 들었다. 괜스레 이 음식에 술이 빠지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가 딱이었지만 아침부터 뭔가 달리는 건 아닌가 싶어 타협으로 맥주 한 병을 주문하였다. 묘한 매력이 있는 맛이다. 소고기 뭇국과 갈비탕. 그리고 육개장의 매력포인트들이 조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익숙한 맛인데 아는 맛인데 하면서도 진실의 미간이 자연스레 나오며 입가는 미소가 지어진다.
정신없이 소국밥에 몰두하다 잠시 잊고 있던 존재인 육사시미로 눈을 돌려보았다. 선분홍 빛을 내는 생고기들이 먹음직스러운 때깔이었다. 한점 집어 기름장에 살짝 찍어 먹어보았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고소한 기름장이 입안에서 맛난 연주를 펼친다. 비어 있던 잔을 맥주의 새하얀 거품으로 채워 주었다. 그리고 다시 육사시미 한 점을 먹고 맥주를 마셔보았다. 이게 삶의 소소한 맛의 재미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 공간에 있는 내가 뿌듯했다.
육사시미는 100g당 만천원이라는 매우 가성비가 좋은 가격이었다. 엄청나게 스펙타클한 맛이라면 거짓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가격에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이상의 퀄리티였다. 그래서 육사시미를 추가주문한 것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메인으로 돌아가 소국밥에 국물에 감탄하고 또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하였다. 대전을 추억 할 거리가 하나가 추가 된 것 같다. 다음에도 다시 오리라 마음먹으면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앞으로 추가 될 이 도시 키워드들이 무엇이 될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