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면옥
나이의 시간을 지나쳐다 가다 보니 변하가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그 속에서 때로는 새로 얻는 것도 있고 때로는 잊히고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나름의 욕심이라면 그래도 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합계가 최소한의 0 이상이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역시 꿈을 꾸는 것이 현실로 구현되기에는 여전히 아쉬움의 한숨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가끔은 가계부를 쓰는 마음으로 기록을 해본다. 어떤 것이 추가되었는지 나열된 것을 지켜보면 재미난 감정들이 조금은 아쉬움을 희석시킨다.
내가 변해진 것들 사이에서 꽤나 흥미롭게 보는 것들 중 하나는 음식이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입맛이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들이 있다. 어릴 때는 뚜렷하게 자기 색을 띠는 것들이 끌렸었다. 마치 내가 나인 데를 뿜어 내는 것에 대한 아우라에 취해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면서 왠지 과하다는 것이 약간의 반감을 준다. 그래서 그동안 외면한 것들에 눈을 돌려본다. 흙속에 던져버린 진주가 없는지 찾아본다.
그렇게 발견한 것들은 매우 흥미롭다. 더 집중하고 더 음미하는 시간을 할애한다. 아마 이런 변화는 삶의 가치의 순위의 변동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으로 일을 하게 되고 소비를 할 수 있는 재화를 벌게 되면서 우리에게 시간은 중요도는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림을 돈으로 사려한다. 더 적게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막고자 하기에 할 수 있다면 후순위 것들을 활용한다.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패는 한정적이고 어떻게 하여야 유용하게 소비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래서 그런지 변화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국만큼 면을 좋아하는 민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면을 베이스로 한 요리들이 참 다양하다. 짜장면, 짬뽕, 가락국수, 라면, 국수 등등 정말 많아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그중 꽤나 나에게 흥미로운 음식은 평양냉면이다. 스물을 넘어서기 전까지 이것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가끔은 저 생소한 메뉴를 왜 시키는 걸까 어떤 매력이 있을까 궁금하였다. 하지만 호기심보다 낯선 것들에 대한 망설임이 컸기에 시도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어떤 계기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나는 평양냉면을 먹게 되었다. 이 맛은 뭐지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면 차가운 육수에 삶은 면을 각종 고명과 양념을 얹은 요리가 이 음식의 사전적 정의이다. 정확한 시작의 순간은 뚜렷하지 않다고 한다. 조선 헌종시기 [동국세시기]라는 시대 풍속과 연중행사를 기록한 서적에서 이 음식에 대한 설명이 언급되었다.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관서지방의 냉면,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의 맛이 가히 일품이다.”라고 적혀있다. 대체로 면은 감자와 메밀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냉면이 전국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쌓이게 된 시점은 6.25 전쟁을 전후로 하여서이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밀집되어 모여 생활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변화가 생겼다. 그중 음식문화는 각자가 자기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들이 쌓이다 보니 더 발전하게 되었다. 평양냉면 또한 이 시기에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 이 요리는 평안도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평양냉면은 처음에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적셔먹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는 바로 메밀이다. 생각보다 이 재료는 다루기가 쉽지가 않다. 메밀 반죽은 빨리 굳기에 이 것을 활 요하기 위한 방법은 까다롭다. 면자체의 탄력이 적기 때문에 수분에 대한 조절을 신경 쓴다. 물의 온도와 심지어 그날 날씨까지 고려하여 삶는다. 완전히 대치되는 비유는 아니지만 밥을 뜸 들이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면이 익혀지는 적당한 타이밍을 파악해서 탄력을 잃지 않기 위해 차가운 물에 식힌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메밀의 향이 보존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면은 점점 온도가 올라가면서 입안으로 들어갈 때쯤이면 메밀 향이 은은하게 퍼져가진다. 먹을 때는 잘 모르겠고 희미한데 뒤돌아 보면 갑자기 문득 생각이 나게 된다. 그게 이 메밀면의 맛이다라고 할 수 있다.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게 되면 대체적으로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음식이라고 혹평을 한다. 거기서 강한 어조로 말하는 이들은 행주 빨은 국물에 면이 있는 것이라고도 표현하였다. 어떤 음식 평론가는 평양요리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무미(無味)의 미(味) 맛이 라고 평했다. 짜고 달고 감칠맛이 있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아무것도 없는 맛에서 맛을 내는 것은 신비롭다.
평양냉면은 어려운 음식이지만 근데 참 묘하게 생각이 난다. 다시 먹게 되면 처음에는 느끼지 못한 미각을 마주한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또 새로운 것을 느끼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이 음식에 빠지게 된다. 확실히 진입장벽이 높지만 넘어서면 그 매력의 깊이는 꽤나 깊다. 개인적으로 딱 5번만 속는 셈 치고 먹는다면 어느새 머릿속으로 평양냉면이 아른거릴 것이다.
계절의 변곡점에서 가끔 변덕스러운 날씨를 마주한다. 비가 내리고 꽤나 쌀쌀함에 움츠려 있었는데 아침 운동을 하러 가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따사로움이 피부에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대구라는 도시는 여타 도시들보다 더 선이 찐한 날씨를 보여준다. 점심때쯤 되니 그리 두껍지 않은 바람막이를 걸쳤는데 덥다는 생각과 땀이 살짝 났다. 그래서 괜스레 시원한 것이 당겼다. 목욕탕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와서 먹는 바나나 우유가 꿀맛이듯 지금 이 온도는 차가움이 주는 유희를 배가 시킬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냉기가 결합할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정도가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바로 밀면과 평양냉면이었다. 일단 전자는 내가 이 도시에 정착하기 전인 살던 곳인 부산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그곳은 돼지국밥만큼 밀면가게들도 많고 일반적으로 맛도 상향 평준화가 되어있어 아무 곳이나 가도 실패 확률이 적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추억도 되새김질할 겸 나의 선택은 전자에 무게의 추가 쏠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보로 갈만한 거리에는 음식점이 안보였다.
결국 나는 후자인 평양냉면을 점심 메뉴로 선택하였다. 사실 이 음식을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호기심에 접해본 첫인상은 눈살을 찌뿌뜨리게 만들었다. 이런 뭔 맛인지도 모르고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돈을 주고 먹는다니 나와의 평양냉면의 인연은 첫 만남과 동시에 이별도 같이 하였다. 하지만 그 뒤로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더 억지로 만나게 되었다. 근데 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나쁘지 않네 어 먹을만한 데에서 괜찮은데로 나의 평이 만남의 시간과 함께 변해갔다.
그 뒤로 종종 평양냉면 집을 자의로 가기도 하였다. 오늘은 나름 대구에서 3대 평양냉면 집 중 하나인 대동면옥이라는 가게에 가보았다. 사실 처음 이곳을 가게 된 것은 주변에 지인이 추천해 주었는데 이곳이 유명한 매장인 줄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1951년도에 오픈한 이곳은 대구에서 꽤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가게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현재는 깔끔한 한옥 건물로 리모델링되어 영업 중이다. 사실 예전 골목사이의 노포 감성을 선호하는 나에게 지금의 외관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매장 앞에 들어가 문을 열고 한 편에 자리를 차지하였다. 조금은 늦은 점심시간 대였고 브레이크타임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꽤 많아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러웠다. 당연히 평양냉면을 먹으러 왔으니 목적에 맞게 주문을 하였다. 이곳은 평양냉면 외에도 함흥식 비빔냉면이 면요리로 존재한다. 메밀전분을 쓰는 물냉면과 달리 고구마전분을 쓰는 것이 차이점이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육수주전자와 컵을 먼저 종업원이 가져와 주었다. 쭈르르 소리와 함께 빈 잔을 채워 고기육수를 먼저 마셨다. 목구멍을 넘어서 전해진 따뜻함이 가슴까지 단번에 전이된다. 후추통이 옆에 있는데 뿌려서 먹어보니 또 맛이 좋았다. 마치 소개팅 전에 초조한 마음에 물을 들이켜 마시듯 평양냉면을 기다리며 육수를 연신 부어서 먹었다. 이러다 이것이 허기를 채워버리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평양냉면이 테이블에 놓이고 나서 정갈하게 세팅된 비주얼이 눈에 들어왔다. 면 위에는 배와 오이채 그리고 고기 수육 2점 계란이 가지런히 올라가 있었다. 먼저 국물을 한번 들이켜 먹어보았다. 고기육수의 진한 맛과 은은하게 새콤함도 같이 전달되었다. 이곳 국물은 평양냉면의 심심함보다는 간이 상대적으로 센 편이다. 그래서 입문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육향이 강함이 확실히 매력이 있다고 매번 방문할 때마다 생각했다.
면발은 메밀면답게 쫄깃하며 탱탱한 식감이다. 탄력이 있어 입으로 뚝 뚝 끊어지지는 않고 이빨로 절단을 하여야 한다. 메밀향과 고소함이 잔잔하게 입안에서 느껴진다. 토핑 된 오이는 식초와 소금에 갓절여진 맛으로 신선하다는 인상을 준다. 간이 센 부분도 면과 희석되니 잘 어울려졌다. 계란은 면발을 먹기 전 먼저 먹어 주었다. 메밀과 차가운 육수가 빈속에 들어가 위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으니 보호장치로 앞서서 입안으로 넣어주었다.
면발을 신명 나게 면치기도 하고 시원한 육수도 마셔주고 번갈아 먹으니 입가에 미소가 퍼져 나온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평양냉면의 초급자이지만 이 매력을 온전히 느껴보았다. 어떤 이들은 이 음식을 마치 생얼의 요리라고 비유하는데 나는 이 말이 공감이 된다. 포장되어 있지 않고 감춰지지 않은 그 자체의 맛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음미하게 되고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삶이 가끔은 내가 아닌 감추고 화장을 해야 하고 들키지 않는 것이 득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을 나조차 잊어버린다. 내가 진정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서글프고 눈물 난다. 그래서 나는 평양냉면을 보면 나 같지 않아서 좋고 반갑다. 맛나게 그릇을 비우고 온육수 한잔을 들이켰다. 소소하지만 반갑고 그리움을 가슴 한편에 채워 놓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