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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Nov 15. 2019

뒷걸음

길 위로 올라가다


2. 출발 그리고 도착


아침이 밝았다. 왜 이리 나는 정직하게 눈이 떠지는지 일어나서 멍하니 있으니 버스 알람이 2시간 후 출발이라 울리고 있었다. 그래 나는 윤경이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저 책 그녀가 남긴 흔적을 처리를 하는 것이다. 가보자 춘천으로. 백팩에 양말 속옷, 세면도구 아이패드 그리고 책을 쓸어 넣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10분의 여유가 있었다. 4시간가량을 버스에 있어야 하니 생수 하나와 아침으로 간단히 먹을 빵을 샀다. 버스에 타보니 만석이었다. 예매할 때는 여유가 있었는데 군복을 입은 군인들 면회를 갈 것 같은 가족 단위의 승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27번 통로 쪽 나의 자리를 찾아가니 옆에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먼저 앉아있었다. 빵빵하게 나오는 음악 소리 때문에 노랑 탈색의 머리까지 유난히 거슬려 보였다. 느낌이 아마 남자 친구 면회를 하러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윤경이와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예매를 늦게 하여 붙은 좌석을 구하지 못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도 공석인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내 옆자리에 불렀다. 마냥 바라만 보고 손만 잡아도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잠도 오지 않았는데...

 

눈을 붙여야겠다. 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저 음악 소리 한 소리를 할까. 아니다 장거리의 여정인데 괜히 얼굴 붉히지 말자. 휴대폰을 열어 넷플릭스를 켰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 정답이 이렇게 많은 것도 고통이구나. 그냥 메인에 있는 드라마 한 편을 재생하였다.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멍할 뿐이었다. 집중력이 약한 나, 부석 부석 가방에서 그 책을 꺼내어 펼쳐보았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기억은 뚜렷해진다. 그녀와의 행복했던 시간이 귓가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도대체 왜 윤경이를 그렇게 잃어버린 걸까. 속절없이 달리는 버스에서 이 빌어먹을 잔상들에 속이 메스꺼워진다. 내리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왜 나는 괴로운 여정을 시작한 걸까. 후회가 된다.


두통과 멀미의 괴로움이 절정에 가까워질 때쯤 안동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10분의 시간이 명시가 되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버스 안 승객들은 의무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들 사이에서 이 괴로운 공간을 탈출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도 5분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손에 쥔 휴대폰 속에서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윤경이와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여행을 통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는 춘천으로 가야 된다. 머릿속 두통은 꽤 진정되었고  불안과 걱정의 시간들이 초연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휴식을 한 버스는 쉴 틈 없이 달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춘천 고속 터미널 도착하였다.


 버스에 내려 백팩을 메고 터미널을 나왔다. 하늘은 너무 푸르렀고 구름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터미널 입구 삼삼오오 모여 연인과 가족을 맞이하는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나를 반겨주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래 나는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꽤나 서글펐다.


숙소를 찾아보자. 휴대폰을 켜 위치를 확인해보니 약 3Km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스스럼없이 택시를 잡았을 것이다. 근데 나에게는 반기는 이는 없지만, 시간은 있었다. 그냥 걸었다. 뚜벅뚜벅 가는 걸음이 분에 넘치는 시간을 갈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에 뉴월드 나이트가 보였다. 아 저기 윤경이를 만나러 처음 춘천에서 보았던 곳이다.


 "오 뭐야, 춘천에 나이트도 있어. 촌 동네 아닌데."


"그래 여기 나이트 커, 나도 예전 직장동료들이랑. 아 아니 가보지는 않았고 크다고만 들었어."


"뭐야, 부킹 한 거 아니야. 윤경 잘 나간다."


."아니라니까. 안 가봤어. 부킹이 뭔지도 몰라".


" 그래그래 알았어. 우리 윤경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녀입니다."


 새침하게 삐쳐있던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멍하니 나이트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교차로에서 자동차가 충돌하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뒤차의 범퍼가 찌그러질 정도로 꽤 심하게 부딪쳤다.


다행히도 내린 운전자들은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충돌의 충격이 아닌 잘잘못을 가르며 숙덕숙덕 되었다. 앞차가 급정지를 해서다 뒤 차가 무리하게 신호를 건너서다는 등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정의했다.


 나의 이별 또한 그러했었다. 타인으로부터 나온 나의 이별은 누구의 과실의 지분이 큰가 였고 그 속에서 헤어짐의 아픔은 고려되지 않았다. 응급차 두대가 오고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각자의 발길을 떼었고 나도 그곳을 벗어났다. 생각이 많은 발걸음은 시간과 거리를 무뎌지게 한다. 숙소로 도착했다. 휴대폰에 비친 오후 4시의 시간은 체크인의 1시간의 가량 여유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오면 남는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춘천 오면 닭갈비이지. 주변의 식당을 두리번두리번 찾아보며 걸었다. 해장국, 설렁탕 , 김밥천국, 맘스터치 닭갈비 집이 보이지 않는다. 아 거기로 가면 되겠다. 명동 닭갈비 골목. 그곳은 닭갈비 집이 여러 곳이 붙어 골목 단위의 정의가 내려질 정도로 많았다. 윤경이 와도 그곳을 몇 번 갔었다. 명동....   춘천을  처음 온 나에게 그녀는 이곳으로 가자고 했었다.


"명동. 서울 명동 아니야?"


" 춘천에도 명동이 있어. 서울처럼 사람들이  이고 놀 수 있는 공간이야. 대신 서울의 명동의 밤거리의 불빛은 볼 수 없다 "


 택시에 올라타 명동으로 향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녔다. 3,300원 기본요금이 나왔다. 닭갈비 골목 사이에서 역시나 나는 오지선다를 넘어선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였다. 갈팡질팡 발걸음이 혼란스러울 때 익숙한 가게가 눈에 보였다. 아 여기 그녀와 갔던 곳이다.  


"앞 가게가 사람들 많이 오고 맛집으로 소문난 집인데 웨이팅 길고 생각보다 별로야 대신 앞집은 사람이 적고 된장찌개가 맛나다. 여기 가자."


 "뭐야, 닭갈비 집에 닭이 중요하지. 된장찌개 맛나다고 여기를 가자니. 야 이상한 논리다. 하지만 현지인의 말을 들어야지 이방이니 나는."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나는 닭갈비 2인분과 된장찌개 참이슬 한 병을 시켰다. 먼저 나온 소주를 따서 한잔을 따라 마셨다. 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알코올 향은 쓰렸다. 황급히 뒤이어 나온 닭갈비를  불판에 올려 한 점을 먹었다. 빈 잔을 홀로 다시 채웠다. 역시나 이 알코올   향은 오늘따라 유난히 쓰다.


 두 잔을 비우고서야 된장찌개가 나왔다. 구수한 맛이 속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만남에서 그녀는 든든한 존재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경이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배려를 저버린 것 같다. 쓰디쓴 맛이었겠지 우리의 마지막에 이런 나의 모습은.....


한 병을 마시고 나니 꽤 취기가 돌았다. 시간도 체크인 하기에 충분한 6시였다. 계산하고 나와 카카오 택시를 불러 숙소로 갔다. 프런트에서 맡겨 둔 짐과 카드 키를 받았다. 10층 전망이 좋았다. 싱글 침대가 없어 트윈 침대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나란히 있는 두 침대 사이 짐을 던져두었다. 취기에 피곤함이 겹쳐 눕고 싶었다. 하지만 닭고기 냄새와 알코올 향은 코끝을 거슬리게 했다. 샤워하였다. 상쾌했다. 씻겨져 나간 거북스러운 냄새들이 사라지니 다시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씻고 나오니 밖은 꽤 어둑해져 있었다. 침대 옆 놓인 원형 테이블은 춘천의 밤거리를 관망하기 좋은 소품이 되었다. 멍하니 바라보니 저 밤거리를 걷고 싶어 졌다. 하지만 아직도 씻겨지지 않은 취기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두 개의 침대 중 창가 쪽에 누웠다. 비어있는 옆자리 때문인지 허전함이 가슴속으로 직통하여 쿡쿡 찔러 되었다.


처음 그녀가 나란히 누웠던 침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라보았 던 그 사랑스러운 눈빛. 뜨겁게 포개진 그녀와 나의 입술의 기억. 새근새근 코를 골던 그녀의 소리. 그 어느 하나도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물이 왈칵 흘러나왔다. 나는 어느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다. 이 모지리 그때 그렇게 내게서 멀어지는 것도 모르고 이기적으로 핑계만 대고 이해만을 강요한 이 바보 멍청이.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내게 매번 하였다. 윤경이와 마지까지 나는 눈치 없는  멍충이었다. 그녀와의 2박 3일간의 군산 여행 그것은 우리의 끝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었다. 다만 요 며칠 업무적으로 윤경이를 괴롭히는 김사원과 조 대리 때문에 스트레스로 예민해 있었고 그로 인해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었다. 군산은 아름다운 도시였고 우리가 이것저것 잊어버리고 즐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요즈음 쭉 예민했었던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보였을 때 이 여행 정말 잘 왔다 라고 생각하였다. 마지막 날 그녀를 품에 안고 있을 때 나의 세계가 파괴되는 말을 들었다.


“우리 그만하자. 나는 준서 네가 더는 기대되지가 않아. 그래서 헤어지고 싶어.”


 “뭐야.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말해주면 내가 고칠게.”


“아니야. 너도 알잖아. 나 주워 담을 말 하지 않는 거. 그냥 여기까지만 하자.”       


눈앞이 멍해지며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러냐며 따지고 싶은 나의 머릿속에 흘러넘치는 말들은 맴돌기 만하고 분출되지 않았다.


“내일 이야기하자.”


 나는 상황을 회피하고 강제 종료하였다. 싸늘하게 돌아선 그녀의 등에서 겁이 났다. 뜬눈으로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냉랭해진 윤경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어제의 말은 없는 말이다.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사시나무 떨리듯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나는 회피하였고 그녀는 완고하였다. 술을 먹고 매달려 보고 장문의 카톡 들도 보내 보고 점점 찌질해지는 나를 느낄 때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더는 멀어지는 윤경이를 잡지 못했고 잡지 않았다.


밤이 서글프게 아름답다. 취기는 또 다른 취기를 불렀다. 숙소 아래 편의점에 내려가 소주 한병의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 왔다. 한잔 한잔에 거북한 속 쓰림은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반가웠다. 기억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맞추어져 깨져버린 세계를 불러일으키는 나를 중단시켜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멈추지 않고 들이부었다. 어질어질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이렇게 이 밤을 끝내버리고 말자는 계획이 맞아떨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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