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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Jun 03. 2024

오사카 여행 1부

선택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떠난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 그 끌림이 감정은 내게는 유독 크게 전달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삶에서 그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변이었다. 그로 인해 따라온 자기판단은 꽤나 객관적이었다. 이미 내가 영롱하게 빛을 낼 수 있는 재능도 그렇다고 특별한 매력도 없는 것을 알고있었다. 이런 나를 알기에 자연스레 삶에서 움츠려 들며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져갔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 속에 응축된 응어리는 커켜가기는 하였다. 근데 이것이 나도 사람인지라 한계가 있었고 절로 새어 나오는 경우가 종국에는 발생되게 되였다. 그럴 때면 왠지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스며들어가고 싶다는 바램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속에서 이 불쾌함을 환기 시키려는 열망이 끊임없이 피어올라 나를 자극 시켰다.


 내가 나인 것을 인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확실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 같다. 그곳에 있으면 괜시리 작은 목소리도 확성기가 켜진 듯 증폭되어져 나가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그렇게 재잘 재잘 수다스럽게 자유를 향해 떠들다 보면 마음의 짐 주머니는 서서히 비어진다. 나는 그 쾌감이 주는 여운은 짜릿하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함은 항상 아쉽게 느껴진다. 나의 자유의지로 떠난 여행의 시작은 삶의 길이에 비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떠난다는 것에는 환경적인 제약이 있었다.


 여행에는 이동수단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인간의 육체만으로 떠난다는 건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러기에 기동성이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그 수단으로 차가 없었다.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술을 너무 좋아하는 아버지였기에 운전을 하게 되면 필시 사고를 일으킨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만류에 차가 우리 집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여행을 가게 된 시점은 미성년자를 벗어나서였다. 그 시절 내게는 가보고 싶었던 공간이 존재하였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이 컸다.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좋아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와 에반게리온은 신선함을 주었고 엑스재팬의 음악은 소년의 감성을 자극시켰다. 하지만 내가 이를 즐기던 시기에는 일본 대중문화가 통제당했다.


  국가 수교는 되었지만 국민정서상 문화적인 부분은 금지당하고 검열당했다. 그래서 만화책들은 해적판으로 나오는 형태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98년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문화개방을 통해 봇물처럼 국내로 들어와 음지가 아닌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금지에 대한 반작용은 반작용으로 호기심을 내게 키웠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일본을 가서 그곳의 공기를 느껴보리라는 꿈이라는 표현이라 기는 거창하지만 작은 목표로 설정하였다.



 미성년자를 벗어나 노동을 통해 경제적인 수입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돼서야 생각은 현실로 발현되었다. 방학기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쌈짓돈을 통해 지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당시 내가 여행의 수단으로 선택한 이동 방법은 배였다. 물론 비행기가 빠르고 편의성이 큰 교통편이었지만 비싸다는 것이 모든 이점을 깍아내렸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단이 차선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무려 16시간을 타서 도착한 내 첫 해외여행의 도시는 오사카였다. 그렇게 2박 3일 정도의 일정 간 이런저런 추억을 쌓았었다. 아련한 첫 경험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큰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내게 일본이라는 나라 더 들어가 오사카라는 도시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이곳저곳 여행을 가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대체적으로는 국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는 가지고 있던 시간적인 제약이 사라졌기에 해외여행도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일정한 수익이 사라진 나의 입장에서는 해외여행은 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필터를 걸어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다양한 국내에 여러 도시들을 돌면서 잠겨져 있던 나의 여행의 열망은 서서히 커져갔다. 자연스레 더 멀리 멀 리를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의 제약을 벗어나 후순위에 있던 곳도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고려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묘하게 나에게 여행의 제안을 하는 이들이 하나 둘 다가왔다.


 동남아시아 유럽의 나라들을 떠나는 계획에 일원으로 포함시키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하였다. 대부분은 내가 가지 못한 곳들이었기에 솔깃하였다. 하지만 뭔가 막 끌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솔깃은 했으나 결국 고민 끝에 고사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일을 하였던 옛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좋지 못한 이별에는 항상 앙금과 불행을 원한다. 이런저런 나를 퇴사까지 몰아세웠던 이들에 대한 험담을 하다 뜻하지 않은 제안을 들었다.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이제껏 일이라는 관계에서 얽매여 있던 사람들과는 사적인 관계에서 한계점을 정했었다. 그래서 딱 퇴근 후 소주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대의 범위였다. 딱히 그 이외에는 쉬는 동안 연락과 만남을 하지는 않았었다. 근데 이젠 일이라는 사슬은 끊겼다. 살짝 뭔가 망설 졌지만 여행의 공간으로 제안한 곳이 나의 아련한 추억이 있는 일본이라는 것을 듣고 고민이 되었다.



  막연히 거절을 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가자 말자를 반복하다 시간을 보내보니 선택의 유통기한이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결국 결심을 하고 그렇게 가보자라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제안된 도시는 도쿄와 오사카의 두 도시가 거론되었다. 다음단계의 고민이 되었다. 해외여행의 첫 경험을 한 이후로 일본을 드문 드문 갔었다.


 하지만 도쿄는 가본 적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가까운 오사카와 근방의 도시들을 선택하여 떠났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점에서 끌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빈도로는 많은 오사카는 추억이 미화시킨 시간들이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다시 한번 그 순간의 즐거움을 꺼내서 느껴보고 싶었다. 저울의 추가 팽팽하다 보니 결단력이 나약한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새로움이냐 추억이냐를 이리저리 손에 지어보다 돌고 돌아 선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시 돈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값싼 오사카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정해진 목표에 남은 시간 동안 계획을 하였다. 추억의 회귀도 하고 코로나라는 재앙의 시대를 탈피한 후 첫 해외여행이기에 의미 있게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계획형 J의 일정이 짜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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