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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K의 수감록

보편적인 것들 사이에 낯섬을 찾아보려했다.

by 김군

살다 보면 그런 때 있지 않는가 삶이 구질 구질하고 비참함이 온 마음을 감싸는 순간... 참 기분이 더럽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피해 가려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꼬이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게 바로 날카롭게 카운터 펀치로 날아왔다. 바로 근 7년이라는 시간을 몸담았던 조직을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그에 해당된다.


자꾸 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피해자가 되어 나의 등에 칼을 꽂은 용의자들에 원망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새삼 세상의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게 되었다.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그들의 영악함과 나의 안일함이 기가 막히게 트리거가 되어 과녁을 향해 조준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이미 사고는 일어났고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러기에 의미 없는 한탄만을 한다. 나의 이별에는 필요치 않았는데 부록으로 따라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간이 그에 해당되었다. 일할 때는 항상 쪼들리다가 갑작스럽게 늘어다니 졸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어찌 소비해야하 합리적인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나의 인생을 망가뜨린 범인을 찾고자 시간을 써보기로 하였다. 차곡차곡 자가 복기의 시간을 돌이키다 보니 참 내 인생은 보편 그 자체였다. 무난하고 무색무취의 삶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편적인 것들 사이의 낯섦을 마주하게 되어 상처가 더 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일부의 낯섦이 있지 않을까 싶음 마음에 흐릿한 기억들을 더듬어본다.


나는 그리 부유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엄청 풍족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뭐 필요한 것들을 못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뭐 여느 집처럼 적당히 투닥거리는 부모님과 적당히 사람 냄새나는 가족들이 구성원이었다. 굳이 유년시절로 돌아가 낯섦을 마주한 순간을 꼽자면 하나가 상기된다.


어릴 적 한참 지적인 호기심보다 성에대한 궁금증을 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나와 우리라 부를 수 있는 구성원들은 보물 찾기에 심취해 있었다. 여느 집 장롱 구석에 짱 박혀있던 이름 없는 테이프들이 그 대상이었다. 야릇하면서 남녀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이 주는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와 이 보물 찾기의 선호하는 친구들은 빈집을 너무 좋아했다.


한날 여지없이 우리는 나름의 수위가 있는 애정이 가득한 비디오를 보고 품평회를 하나 문득 하나의 화제가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학창 시절 등하교 길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절대 가지 말라는 골목이 있었다. 학교에서 도보로 인근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낮에는 문이 닫혀있고 밤에 빨간 조명이 강렬하게 주변을 포위시키는 곳이었다.


보물찾기 멤버들에게는 속칭 빨간 집이라 불린 길이었다. 어른들의 경고에 위축되어 우리는 그곳을 쳐다도 보지 않았고 지나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왠지 그곳에 발을 내딛게 된다면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응징을 받을 것 같았다. 근데 이날은 무슨 배짱이 들었는지 이 터부를 깨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섰다. 그래서 모여 지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가려보자는 남자들의 치기 어린 내기를 계획하게 되었다.


각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정확히 8시에 골목 초입에 모여서 한 명씩 지나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내심 자신이 있었다. 뭐 저 빨간 집들이 즐비한 골목을 횡단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 이번 기회의 나의 커다란 담을 보여주자 마음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핑계를 되어 약속장소로 나왔다. 그런데 정작 나온 이는 나를 포함한 1명이었다.


단체로 있을 때 호기로웠던 자신감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괜히 나왔나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앞장섰다. 일단 골목의 초입까지는 호기롭게 걸어갔다. 스멀스멀 빨간 조명의 빛의 발끝에 다 아지는 순가이 찾아왔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긴장감에 땀이 삐질거려진다. 사실 나는 이 빨간 집의 형태를 아는 것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었고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내 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친구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면 한발 한발 내디뎌보았다. 투명한 창 사이로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앞을 바라보면 지나가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시선을 누군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움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동공을 굴리다가 붉은 조명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단 아무렇지 않게 길을 가는 행인으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한 블록 지나치고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자 다행이다라는 안도와 함께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선은 바닥으로 향하고 걷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 어린놈의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있냐. 어서 집에 안 들어가"

돌아보니 흥건히 술에 취한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 상황의 민망함과 죄를 진 것 같은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였다. 뒤이어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에이, 오빠 그러지 마 저 나이에 애들이 한참 꼴릴때자나. 야 애기야 너 오늘만 봐주는 거다. 일로 다시 지나가면 맴매 맞는다. 빨리 집에 가"


이 벌거벗겨진 수치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서 붉은 조명의 터널을 지나왔다. 뒤에 있은 친구의 존재는 이미 잊은 지 한참을 지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교회 앞을 지나쳤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괜스레 십자가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이 일탈을 고해를 하는 감정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보편적임에 낯선 에피소드를 찾자니 문득 이 순간이 떠올랐다. 그날의 나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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