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슈퍼파워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시간 속에서 싸움이라는 단어는 찾기가 힘들다. 뭐 유별난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투닥거리는 행위를 통해 복잡해지는 후속 여파가 싫다. 이러한 이유로 보기 드문 기억의 파편들 사이로 숨겨진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그리고 인형 뽑기 집게에 걸린 하나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거슬러 올라간 시간 들 사이에 그 사건에 대해 기록을 해본다.
학년이 바뀌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것이 있다. 무언의 탐색전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미지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를 높게 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단번에 서열을 상승시키는 수단은 힘의 과시였다. 개연성이 없는 시비와 폭력들 사이에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외부인으로 속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내게 싸움은 더러워서 피하는 똥 같은 느낌이었다. 고비는 항상 있었지만 나름의 행운과 요령들로 잘 피해 다녔다. 그럼에도 한계가 왔었고 폭력이라는 원에 발이 걸쳐지게 되었다. 책갈피에 잡힌 페이지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년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친분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약 3분의 2는 서먹하거나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관계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아는 이들이 나 먼저 다가온 이들 정도의 범주에서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부질없는 서열싸움이 불똥이 내게 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종이 올리며 점심시간이 당도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무료한 흐름 속에서 가장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매점으로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무언가 부딪치는 충돌이 있었다. 상황에 대한 인지와 함께 시선이 향해진 것은 한 아이의 어깨였다. 잘 모르는 친구였고 그리 교집합을 가질만한 인사는 아니었다. 일단 나의 전방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기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었다.
사과의 대사의 전달로 사건의 마무리가 되고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묘하게 이상한 쪽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얼굴과 표정에 적대적인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이게 이렇게 흥분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가해자의 입장이기에 재차 미안함의 표현을 하였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온 행위는 내 실내화를 발로 밞아 버렸다.
황당함과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머리가 곤두서면서 어떤 후속조치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멍하니 찰나의 순간 갑작스럽게 또 상대방으로부터 주먹이 날아왔다. 피한다고 움직였지만 나의 안경이 날아가 땅바닥에 구르기 시작했다. 화가 났고 이 더러운 똥을 피할 수 없을 직감하고 나는 케이지에 들어갔다. 몇 번의 잽과 카운터가 오가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라운드 종료시점 나의 주먹이 상대방의 안면에 보기 좋게 적중하였다. 그러면서 그 얼굴에 쌍코피가 흘러내린 것이다. 새빨간 피를 보니 괜히 두려움이 생겼다. 이 뒤에 정리할 복잡한 과정이 말이다. 싸움은 피가 나자 레퍼리가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것처럼 주변인들이 말리기 시작하였다. 손등 사이에 묻은 옅게 묻은 핏자국을 보면서 심장은 더 뛰었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자리를 뜨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뜻하지 않은 싸움으로 서열 경쟁에 끼게 되었고 랭크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끼고 싶지 않아 모르고 있었던 내 안에 잠재된 파이터의 DNA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있어 보였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공수부대에서 중사까지 달고 제대하였고 어머니도 무거운 짐을 들거나 집안일에서 힘을 쓰는 것에 보통이상의 수준의 괴력을 보이기도 했었다.
갑작스럽게 붙어져 버린 이유들로 나의 파워는 증명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는 뭔가 모를 우월감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이런 감정 때문에 서열싸움이 반복되는 구나라는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쌍코피를 터뜨린 사건 이후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친분을 쌓기 위해 친구들이 늘어났다. 무료했던 학교에서의 시간이 그로 인해 더 즐거워졌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평이한 길에서 방지턱이 툭 앞을 가로막았다. 내 키에 비해 약 5센티는 더 크고 누가 봐도 덩치가 좋은 도전자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쉬는 시간 아무 이유 없이 어깨빵을 하고 한번 뜨자라는 속칭 싸움을 거는 멘트를 날렸다. 세상 싸움구경이 즐거운 이들은 책상을 옮겨주며 케이지를 만들었다. 묘한 흥분과 긴장감 도파민이 오르는 것 같았다.
약간의 탐색과 나는 믿었던 나의 파이터적인 잠재력을 믿고 달려들었다. 호기로운 행동에 비해 결과는 처참했다. 체급이 깡패라고 나는 짓눌려지고 많은 주먹들을 맞았고 대응의 손짓은 별타격이 없었다. 누가 봐도 나의 패배였지만 운 좋게 다음 수업 알리는 종소리에 살게 되었다. 완벽하게 TKO 당해버렸고 내가 믿고 있던 파워의 착각은 깨져버렸다.
재도전을 할 의사를 물으며 시비를 걸어왔지만 분수를 알게 됨에 포기 의사를 전달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열에 우위를 과시하기 괴롭힘은 없었다. 나의 빠른 수긍에 그는 더 위를 올라가는 것에 집중을 한 것이다. 역시 다시 싸움이 싫어졌고 그동안 유지했던 스탠스가 정답이라는 것을 확신이 생겼다. 이후 나의 생에서 주먹다짐은 한 번도 없었다.
근래 괜찮게 보였던 배우들의 학폭으로 날아가는 뉴스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일부는 수년간의 무명시절을 깨고 동아줄을 제대로 잡았는데 일순간 무너짐을 보고 역시 이 복잡해지는 판에는 발목을 잡히지 않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안의 파이터로서 슈퍼파워는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자각이 이르게 생겼기에 삶을 끌어내리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역시 싸움은 여전히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