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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K의 수감록

사랑은 여전히 낯설다

by 김군

시간은 대체로 웬만한 것들을 해결해 준다. 이 흐름의 물결에 올라타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도 해결되곤 한다. 나도 이 시간의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뭐 대부분의 남성들에 결에 맞지 않는 국방의무도 꾸역꾸역 무사히 보내고 버티게 만들고 사회로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시간의 힘을 꽤나 맹신하는 편이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결국 앞으로 나갈 것이다. 자연의 순리들처럼 말이다.


이런 확신의 생각에도 가끔 예외는 발생하게 된다. 그럴 때면 마치 바이러스에 걸려 버벅거리는 컴퓨터처럼 멈춰버리게 된다. 내겐 이 변수의 오발탄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이다. 알고리즘과 논리의 체계를 파악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맞춰졌던 퍼즐을 깨뜨려버린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색하고 두렵다.


태엽을 돌려 이런 막힘의 순간의 첫 만남을 돌이켜본다. 정규 교육의 출반선 전까지는 우리 집은 연립 빌라에 살았다. 새 출발을 반기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공교롭게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파트로 이사가게되었다. 여러동으로 나눠져 있고 놀이터가 코앞에 있다는 게 너무 반갑고 좋았다. 모든 처음에서 오는 이 설렘으로 나는 세상이 상당히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이웃이라는 개념으로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나와 동년배였고 같은 나이의 동생도 있었으며 학교까지 같았다. 접점이 겹치면서 공간과 시간은 공유가 되면서 관심이 갔다. 하나 둘 지켜다 보니 감정적 공감이 생겨나고 호감이 뒤따라 왔다. 꽤나 의젓했고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당당했다. 뭔가 리더십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보이기도 했었다. 컵 안에 채워지는 물을 조절해 가면서 넘치지 않게 조절하였지만 좋아함의 이끌림의 감정은 주체가 되지 못했다.


결국 넘쳐흘렀고 이 마음의 무게를 표현해야 했다. 굳은 의지의 마음을 가지고 고백을 하고자 계획을 하였다. 저만치 시야에 들어오는 그녀에게 고사리 손으로 삐둘빼둘 적어둔 편지를 주려 달려갔다. 그런데 나는 전해주지 못했다. 가족이 직장을 옮기게 되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겐 서울이라는 공간의 거리적의 체감은 마치 영영 마주하기 힘든 정도로 느껴졌다.


왜 내게 오늘의 나를 괴롭히는 시련을 세상은 던지는 걸까 이대로면 끝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 한편은 갈등하였다. 후련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아플 것을 시작하지 않고 닫는 것이 나을지 어느 한쪽을 선택의 강요를 자가적으로 하였다. 시시때때로 무게의 추가 오며 가며 속절없는 시간은 흘렀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대상과의 기억이다. 바보 같은 나를 후회하며 다음 사람에게는 오답을 수정할 것이라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중학교 시절 곧 잘 성적이 나오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의 자신의 아이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나의 어머니도 그러했다. 준수한 성적표에 내 공부머리가 좋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그것을 더 향상시키 위해 이런저런 학원들을 등록하여 보냈다.


공백이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일상의 여유가 사라지면서 불만과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반감이 적립되면서 노력이라는 의지도 사라지면서 성적도 조금씩 떨어졌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학원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아름아름 정보로 알아 온 좋은 학원이라면서 새로운 곳으로 나를 들이밀었다. 몇 차례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세 번째쯤에 되어서야 반항한다고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했다.


여전히 나는 학원이라는 공간의 숨 막힘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버티고 이겨내 보자 일단은 마음을 먹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만의 숨구멍 하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같은 학교 출신의 학우와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성과를 내는 곳을 찾아가다 보니 학원은 자연스레 동내보다는 더 멀어졌고 접점이 있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그나마 몇 있는 이들 중 하나가 속칭 하마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였다. 얼굴도 크고 덩치도 우람하며 하마를 닮은 외형이라 그리 불려졌다. 학급에서 성적도 나와 비슷하였고 한 다리 건너 건너 보니 친구의 친구기도하였다. 그래서 같이 많이 붙어 다녔다. 숙제도 함께 도서관에서 하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때론 몰래 땡떙이를 까고 오락실에서 일탈을 즐기기도 하였다.


하마는 나와 달리 친구가 많았다. 그 범주에는 남녀의 비율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새로 학원에 우리 반에 들어왔고 하마는 그녀를 반겼다. 초등학교 동창이며 동내친구기에 가깝다고 하였다. 항상 관심은 접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왠지 같은 일부가 공유가 되고 있음에 친분의 감정이 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꽤나 시크하였다. 무리의 고독한 존재처럼 같이 희석되지 않고 자신의 색을 강하게 발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묘한 이질감 그리고 접점이라는 일부가 나는 끌림이라는 감정이 쌓이게 되었다. 관찰의 시간을 보면 야무지며 강단이 있는 인상이었다. 아련한 처음의 실패의 순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잘해보리라 조금 더 신중함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나의 변화의 감정은 생각보다 티가 잘났고 하마는 그것을 알아채고 말았다. 끝없는 추궁에 실토를 하였고 훈수꾼이 추가되었다.


고백에는 의미가 더해지면 힘이 생겨난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렇지 않냐며 하마는 나에게 D-DAY를 설정해 주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날 손수 준비한 선물로 멋지게 건네면 백퍼 넘어간다고 하였다. 냉철하게 상황파악을 하고 도전하려 했던 도전자는 훈수꾼의 속사임에 너무 쉽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의미 있는 선물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집에서 취미로 뜨개질을 배우는 동생과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 직접 내가 뜬 목도리를 선물해 감아준다면 로맨틱한 순간이 될 것 같았다.


옆에서 곁눈질로 따라 하며 시작하면서 틈틈이 나의 공백은 뜨개질로 채워졌다. 그녈 위해 줄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니 재미가 있었다. 시간을 갈아서 넣다 보니 시한 안에 하얀 목도리 하나가 완성되었다. 크리스마스날이 다가왔고 나는 하마에게 전달받은 그녀의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할 말이 있으니 12시에 시계탑에서 보자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비장하게 남겼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백에 직접 짠 목도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약속장소로 가기 전 장미 몇 송이를 꽃집에서 샀다. 시계탑에 미리 도착해서 고백의 순간에 대한 멘트를 마음속으로 연습해 보았다. 재깍재깍 시계의 추는 흘러 약속의 시간이 왔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눈이라는 것을 마주하지 못했던 이 도시가 하얀색 진눈깨비를 하늘에 흩날리게 만들었다.


여러 조건들이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옆자리는 아무도 없었다. 처량하게 눈을 맞으면서 약 5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였고 나와는 달리 좋은 결실을 맺은 이들을 조우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녀는 나오지 않았었다. 핑눈물이 돌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에 아픔을 또 혼자 삭이며 돌아갔다.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한발 나아가자는 마음이 들어 하마에게 연락하여 준비된 선물과 장미를 그녀에게 전달해 달라 하였다. 의미는 사라졌지만 의도대로 방향은 향해지기 바랐다. 낙담하며 비련의 주인공으로 우울해있을 때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동생이 전화를 받았고 어떤 여자라면서 나를 찾는다고 하였다. 누구지 내게 연락할 이성은 아마 없을 것인데 하며 받았다.


그녀였고 잠시 만날 수 없냐며 밖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뭔가 반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 같기도 하고 기적을 이루 보자 무너진 마음을 다짐해 보았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나간 장소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부담스럽다면서 건넨 선물을 다시 건네준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실패의 쓰라림과 밀려오는 창피함에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나의 상황을 대충 알았는지 별말 없이 그러라 했다. 물론 아예 학원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아타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후에도 나에게 사랑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을 선사했다. 대게는 축척된 시간에 답을 내어주면서 확률 놓여주지만 나는 매번 상처에 쓰라리게 된다. 요즘은 사랑 참 어렵다며 생각하며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불쑥불쑥 감춰지지 않고 끌림은 조절하기가 힘들다. 사랑은 해야겠지 언젠가는....


나의 추천 플레이스트

알레프 - Fall in Love Again


난 증명하려 했던 거야


사랑하면 되돌려 받을 수 있단 걸


난 달아날 수 없던 거야


얼마나 힘들어질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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