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이사 그리고 결혼

세연이의 이야기

by 김군

이야기가 길을 새어버리면 안 된다. 한번 엇나간 길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이 정신없이 새어 나온다. 서로가 서로를 세세하게 알고 있기에 뻗어져 나간 가지가 끝도 없어진다. 오늘의 목적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스케치를 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사는 집 곧 계약 만료인데 이사 갈까 해. 너도 알다시피 내 생활에 최적인 장소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싼 월세잖아. 그래서 이번에 전세로 갈려고 대출하려고 나한테 상담 받음 길이 보일 것 같아서."


선생님에게 숙제를 제출한 아이처럼 불안하게 세연의 입을 바라보았고 역시나 잔소리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너 얼마나 모았어. 그래도 너도 사회생활 한지 연차 좀 되었잖아. 그리고 내가 그때 지금 집 구할 때 월세 비싸니 조금 더 알아보고 전세로 갈 수 있음 대출받아라 했잖아.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더니 으이고. "


자연스레 문제의 답이 준비 안된 나였기에 우물쭈물 나의 현실을 이야기하였다.


"음 내가 반성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전세로 가려면 80~90% 정도 대출해야 돼서 잘못했습니다. 인제 겸허히 새겨듣고 새사람으로 변모하여 말 잘 듣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세연님."


세연이의 불호령 같은 잔소리가 쏟아졌고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소나기가 끝이 나고 지친 사람은 그녀였다. 더 이상의 잔소리를 포기한 그녀는 문제의 해답을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대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 및 서류 그리고 전세 계약에서 필요한 팁 등을 열심히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일타강사를 정확하게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잔소리의 시간은 금방 잊어버졌고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으이고 웃음이 나오냐. 나이가 몇 개인데. 너 누나 아니면 어쩔뻔했냐. 준아 철 좀 들자."


"네 누나. 세연아 나 이번에 이사 갈 때 너네 집 근처로 갈까. 이번에 전세로 가서 차곡차곡 모아서 내년에는 결혼할 거다."


"아고 누구 등골 빼먹으려고 절대 안 된다. 그리고 결혼은 혼자 하나. 참 꿈도 크다. 니같이 철없는 남자 누가 데리고 간다고 그냥 돈이나 헛쓰지 말고 모아라 제발 인간아."


방심은 금물은 말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말을 장난처럼 내뱉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 꽤나 오랫동안 스멀스멀거렸던 단어였다. 윤서와도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었던 적이 있다. 관계의 완벽이 결혼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마음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끝이 난 자리에서 후회의 발걸음으로 맴돌고 있다.


"나 연애할 건데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냥 더 아프기에 내가 너무 작아졌네. 너는 요즘 개랑 만나고 있는 거지?"


툭 나온 말에 앗차 싶었다. 사실 세연이가 만났던 연하의 남자 친구와 두 번째 이별통보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다은이에게 들었고 조심하라는 충고도 받았었다. 근데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안전선을 건드린 것 같다.


"나 이번에 헤어지자 다시 이야기했어. 인제 진짜 헤어질 거야."


그녀 입으로 나와 고된 사실이 불편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왠지 타인의 것이라 해도 시나 힘들다. 내가 아는 세연이가 헤어짐을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아파하였지 나는 안다. 그것들이 그녀의 눈에서 아직 감춰지지 않고 보여서 슬펐다.


나와 세연이 인연은 모지리의 모임의 시작보다 오래되었다. 5년 전 친구의 연인을 소개해 주는 자리가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시절 내가 기억에는 세연이의 인상은 참 생기 있고 아름다웠고 빛나 보였었다. 이후 몇 차례 이런 저란 자리에서 한두 번 마주쳤다. 하지만 친구와 이별로 나와의 관계의 끈도 끊겼다.


내가 다시 세연이를 본 것은 우연히도 한 영화 모임 오프라인 정모에서였다. 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눈길이 순간 머물렀다. 하지한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를 모른척했다. 친구의 잘못이었다. 식어버린 사랑은 헤어질 이유를 찾았고 친구는 그 돌파구는 다른 이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치졸하게 관계를 망가리는 모습이 불쾌하고 혐오스러웠다.


다시 본 세연이는 그늘지고 지쳐 보였다. 나는 그녀의 변해 버린 모습과 마음의 부채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였다. 우리 사이의 불편한 거리감을 줄인 건 의외의 세이가 먼저였다. 랜만이네요 말에 나는 주저하다 우물 쭈물하다 대답하지 못했다. 필름이 끊겨 기억을 못 했지만 그녀는 내가 술잔을 몇 차례 비우고 내뱉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과 눈물이었다고 한다.


세연이는 그날 꽤나 놀랐었다고 한다. 나의 술주정도 그렇고 미안하다는 말을 아픔을 준 가해자가 아닌 사람이 내뱉다는 것이 의아하고 놀라웠다고 한다. 그 뒤로 우리의 벽은 무너졌고 와 그녀는 가까워졌다.


세연이에게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비중이 크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이혼. 그것이 그녀에게 관계에 대한 집착의 시초가 되었다. 자신이 처음 마주한 현실에서 여느 가정과 다를 거다. 내가 매개체가 되면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거라 확신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은 무력감만 남겼고 그것들이 그녀를 사정없이 생채기 내었다.


겪어진 시간은 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게 삶을 좌지우지하게 한다. 세연이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그녀를 감쌌고 이것들이 관계에 대한 초조함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결핍을 사랑의 시작점에서 이용하였고 또 그것을 핑계로 이별을 하였다.


나의 몹쓸 친구와의 이별 후 세연이는 삶이 많이 지쳤었다고 한다. 원치 않은 길을 가는 것 같고 나도 별다를 게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 그녀는 자신을 내려놓았었다. 술과 외로움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렇게 세연이의 생기는 빛이 바래지며 그늘져버렸었다.


세연이의 연애가 다시 시작된 것은 1년 전이었다. 그녀가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것도 놀라웠고 대상이 7살 어린 연하라는 것은 더 큰 놀라움이었다. 그동안 관계의 안전을 추구했고 관계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세연이에게 맞지 않는 인연이었다. 나의 이런 의문에 그녀는 그냥 한 번쯤 선택지에서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여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것이 생각보다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아서 위로가 되었고 다시 시작해 볼 용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시작이 적어도 그녀가 생각했던 끝이라는 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힘겹게 내뱉고 있었다.


"준아 나 아직 개 좋아한다 막 같이 있음 편하고 좋아. 근데 너도 느끼지 않니.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주름 사이로 기회라는 게 사라지는 거. 좋아하는 거랑 중요하는 거랑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온 것 같아."


"나한테는 그렇더라고 좋아하는 거보다 중요한 게 손에 있어야 돼. 그래서 나는 헤어져야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빨리 앞을 바라봐야 돼. 근데 가슴이 조금 더딘가 봐 머리를 못 따라가서 아프다."


나는 세연이의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윤서와 나의 마지막도 그랬었기에 공감이 되었다. 자기가 바라보고 꿈꾸는 미래에 나는 없다고 했었다. 좋아하는 마음의 찌꺼기가 남아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중요하고 이별이 후회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결국 윤서의 말이 맞았다. 나만 후회하고 지나간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연이와 나는 말없이 몇 차례 술잔을 비우며 침묵의 시간이 유지했다. 그 뒤 내가 먼저 모지리 모임 이야기를 꺼내다. 우리는 지금의 슬픔을 잊어버리려 더 크게 떠들고 웃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었고 조금은 마음이 한 눈을 팔 때쯤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또다시 윤서가 생각났다. 나는 지금 좋아하는 것도 중요한 것도 제대로 지고 있지도 놓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버려야 하는 것이 정답인걸 알지만 여물지 못한 마음이 발목을 붙잡는다.


집에 도착하니 술기운이 온몸에 퍼져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눈을 감으며 내일은 뒷걸음이 아닌 한발 앞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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