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지끈거린다. 정리가 되지 않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J의 공백도 그중 하나였다. 얼마 전 그녀는 사표를 내었고 결국 퇴사를 하였다. 이후 채용공고를 내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 망설여졌다. 같은 실수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신중해져 한다는 강박이 발목을 붙잡아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의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려 기억의 매듭 하나하나를 붙잡아 보았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의 근본적 문제는 말이었다. 나와 J를 관통했던 수많은 단어들은 말라있었고 죽은 것들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부정하며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말이 통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것들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먹고 자라 버린 나는 알게 되었다. 체념하고 포기해야 답을 얻을 정도로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해결점이 안보이니 다시 두통이 심해졌다. 가끔 이럴 때 담배라도 피우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공익광고의 대사처럼 나는 노담이었다.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믹스커피 한잔을 들고 사무실 밖을 나왔다. 믹스커피의 텁텁한 뒷맛이 혀를 감싸는 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불편하고 찝찝함이 지금 같은 때 묘하게 도움이 되었다.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코로 공기를 한껏 마시려 당겨보았다. 지끈거림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나는 반복적으로 이내 시간을 흘려보냈다.
문을 열고 풀리지 않는 숙제를 붙잡으러 갈 찰나 휴대폰의 진동이 나를 붙잡았다. 다은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 우리는 회사는 같지만 매장이 다르다. 그래서 근무 중 그리 연락하고 소통할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내 위치에서 나오는 말이 타매장에 간섭이나 훈수를 두는 것 같아 웬만하면 출근하여서 연락을 하는 일이 드물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지레 걱정과 호기심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준이 오빠 갑작스럽게 전화해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라는 거 아는데 말할 데가 없네. 나 아무래도 사표 내야 할 것 같아. 너무 힘들다.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어떤 말을 해야 할 지하는 망설임에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사표의 이야기가 나온 것에 대해서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다. 아마도 하는 그것이 맞을 것이다. 사내연애 문제. 하지만 짐작만으로 다가가기에 문제의 풍선을 터뜨릴 수도 있기에 모른 척 말을 내뱉었다.
"다은아 매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일단 오늘 마치고 일 있어? 만나서 이야기하고 절대 섣부르게 사표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지 마 알았지."
"문제는 나지 내가 그 망할 놈의 사내연애의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자나. 사람들이 나를 색안경 끼고 보자나. 오늘도 아... 아니야 오빠. 오늘 마치고 연락할게. 미안해 괜히 신경 쓰게 해서."
다은이의 사내연애가 터진 것은 8개월 전이었다. 화제의 이야기였다. 그녀보다 7살이 많은 상사였고 나도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자연스럽게 왜라는 물음표가 사람들에게 생겼다. 그리고 각기 다른 마침표로 정답을 내었고 그렇게 뿌려진 씨앗에 결실은 다은이를 힘들게 하였다.
사실 사표 이야기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사내연애를 응원하기도 하였지만 대다수의 매장 사람들은 부정적이었다.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실수들이 둘이 연애해서 그렇다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져있어서라고 꼬투리를 잡았다. 다은이는 그것이 싫어 더 조심하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지쳐 그만두고 싶다고 나에게 토로를 했었었다. 그때 난 그녀에게 지금 포기하는 건 네가 문제라는 걸 인정하고 지는 거라고 견뎌내라고 했었었다.
다시 다은이 입에서 사표 이야기가 나왔다면 한계치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다시 참아내라고 버텨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견뎌내고 있는 상처들이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같은 말을 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버리고 나가는 것도 아쉬움이 든다. 열심히 하였고 사내연애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비난의 손길을 하지 않았을 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내게는 느껴지지만 당사자들은 다를 수 있다. 고민이 된다. 말의 무게라는 것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신중해진다.
일이 힘들 때보다 사람이 힘들 때가 고통스럽고 싫다. 머릿속에서 J도 다은이도 뒤죽박죽 되어 어지럽다. 발걸음이 흔들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주저앉고 싶다. 하루가 쉽사리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