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그들은 잉여가 아니었다. -1부

by 김군

글을 쓰기에 앞서 지극히 나의 시선에서 영화를 바라보았기에 감정과 감상이 나와 다를 수 있다.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이라 생각기를 바란다.

제약의 시대에서 잉여 인간으로 살아가다.


우리는 코로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삶에서 덕지덕지 붙어진 제약의 딱지에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제한된다. 그래서 우리는 잉여인간들이 되어간다. 잉여(剩餘). '남아도는'이라는 뜻의 한자어이다. 남는다는 것이 현시대에서 판단되는 의미는 열심히 살지 않는 것으로 재단된다. 그러기에 잉여라는 단어가 썩 좋지 않은 것이고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팬더믹에 강제적으로 우리는 잉여가 되었다. 남아도는 시간들과 에너지들이 소비의 시대에서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극단적인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속에 우리는 잡초처럼 버티고 환경에 적응해나갔다. 잉여의 삶에 이질감보다는 이젠 그 속에서 여유와 힐링을 얻었다. 자기를 되돌아보기도 하며 츠려 이 지긋지긋한 제약의 시대의 종말에서 엔진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 제약의 시대 앞에 잉여인간이 되어갔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분명 잉여였는데...


잉여라는 단어가 제목에 있기에 현재에 코드와 상당히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변에서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선뜻 펼쳐보지 못한 것은 일종의 좋다 좋다 하는 작품의 꺼려지는 나만의 관성의 법칙에 주저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결국 개봉 후 많은 시간이 지나 보았지만 역시 자의는 아니었다.



영화의 시작은 재기 발랄하다. 20대의 패기가 넘치는 주인공들이 최소한의 돈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한다. 그들은 호스텔에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숙식을 제공받고 더불어 대박 신인가수를 발견해 뮤직비디오를 찍어 성공하는 것이 여정의 목표로 삼았다 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하도 허무맹랑하고 무모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묘하게 집중하게 되었다.


영화과에 재학 중인 작중에 인물들은 잉여인간이었다. 단조롭고 쳇바퀴 속에서 남아도는 열정이라는 에너지는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퇴를 하고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계획한다.



파리에서 이들의 무모한 유럽 횡단은 시작된다. 나침반 하나 들고 무작정 고를 하는 이들이 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아 고생길이 훤하다. 저히 준비한 여행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멘털붕괴가 되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이들은 나침반 하나라니 골 때린다. 심지어 지도를 살 돈으로 치킨을 사서 먹는 대책 없음은 기가 막혀 박수까지 나왔다.


영화의 시간이 지나감에 나는 이들의 넘치는 열정 잉여력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찐이다고 생각이 들었다. 종이 한 장을 들고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이키의 불가능은 없다는 말이 생각이 들었다.


꼰대라서 불편한 시선을 가지다.


여러 사람들을 도움을 받은 주인공들은 파리에서 마까지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에 주축이었던 4명을 제외한 이들이 중도하차한다. 다수의 영화를 본 이들 이 장면을 보고 포기한 모습들이 자신의 모습과 같다며 공감을 하였다. 하차한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주인공들보다 나이도 많았고 사회생활의 경험이 있었기에 생각들이 많아 보였다. 이들에게 이 여행이라는 도전으로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우리는 좋든 싫든 셈을 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얻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 그것을 절실히 알기에 중도하차가 많은 공감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다큐영화에서 제일 현실적이었던 부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로마에서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쓰레기장에서 노숙으로 보낸다. 수십 통의 메일들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이들에게 숙소 홍보 영상을 의뢰하는 곳은 없었다. 이 무무함의 끝을 느끼려는 찰나에 극적으로 메일 한통이 온다. 기적적으로 들어온 의뢰에 이 여행의 시간은 연장된다.


너무 극적이었기에 나는 불편함이 들었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고 잡을 수 있다지만 우리는 그것을 놓치기 일수이다.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꼰대가 되어가서 그런지 베베 꼬여진 시선이 기적을 곱게 보지 못하였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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