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빠진 로맨스

현실적인 로맨스 이야기

by 김군

영화라는 것에 대한 감상은 맞고 틀리고 가 없다. 수많은 정답지들이 그들만의 답을 만든다.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그러기에 감상을 비교하고 틀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도 여전히 느끼는 외로움


한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달력의 남은 장수가 얼마 남지 않음에 오는 공허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출발선 앞에서 의욕적이던 나였는데 제자리를 맴돌기만 한 것 같은 기분은 씁쓸하다. 이것저것 정산을 하고 나니 남은 것이 없는 지갑을 바라보며 한 숨이 찾아온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이 하나 둘 희석되어 소멸되어가는 것들이 외롭다는 외마디를 내뱉게 만든다. 나이가 등에 있어 마음의 께는 점점 얇아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옆자리의 부재가 아닐까라는 푸념을 한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야지 하며 생각하다 보니 어김없이 연말이다.



텅 빈 방안의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것이 싫어 나는 휘날리는 바람에 근심을 던져버리고 영화관을 달려갔다. 사람의 온기와 소리가 차 있는 곳에서 내 외로움은 잠식된다. 그 순간만큼 진짜 행복하다. 올해도 여전히 외로움은 크지만 말이다.


서른 그리고 연애 지침


서른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중반이 되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여러 것들이 변하였다. 직장이라는 것을 가지고 적당한 직급의 위치에 올라가고 크지 않지만 선택적으로 삶에 방향을 결정하면 살 수 있어졌다. 런 삶이 소소하지만 나름 주는 즐거움은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관계의 폭은 좁아졌다는 씁쓸함도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온다.


의미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친분 유지를 하는 것이 지친다. 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노동의 고충을 회사 밖에서까지 이어가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도 이에 한몫한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싶지 않다. 연애 또한 이런 영향을 받다고 생각한다.



서른 중반에 연포자(연애 포기자)가 된 나에게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롭고 공감되었다. 사실 살면서 일로 상처 받는 것은 적당한 내성이 생겨 버틸 만 하지만 사랑으로 받는 생채기는 잘 아물지가 않는다. 애 빠진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도 이런 상황은 비슷했다.


지랄 맞은 상사의 고충, 구천만 원의 빚보다는 이들을 근본적으로 아프게 하는 건 사랑이었다. 한 섹스파트너로 여기는 관계의 상대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이 현실이고 그 상처에 흔적들에 지쳐있고 무기력하게 있다.


이들이 데이팅 앱으로 만나 연애가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설정이 신선했고 꽤나 공감이 갔다. 이 지긋지긋한 감정노동의 늪에서 괴로 하면서 이성의 따뜻한 입술과 품은 그립다.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참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아프기는 싫고 뜨겁고 싶은 그런 마음. 서른을 넘어 버린 내게 연애란 것이 그랬다.


대화가 그립다.


좁아진 인간관계에서 슬픔을 주는 것은 대화할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항상 마음의 일부만 비춰 보여주기에 입을 닫는 게 더 편하게 된다. 지만 어쩔 수 없이 내뱉어지는 정제된 말들서 나 자신이 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혼란스럽다. 연애를 할 때도 이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첫 만남에서 데이팅 앱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소개다. 직박구리와 막자 영으로 만난 둘은 서로 적당히 감추며 관계 맺는다. 이들의 시작은 섹스부터였다. 손잡고 눈 맞추고 껴안고 기타 잡다구리 한 단계를 생략한다. 섹스는 장 솔직한 대화이다. 거짓 없이 좋고 싫음이 본능적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수하다. 예전 이런 시작이 비상식적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세월에 파도를 겪으며 배워간 삶 속에서 바라보니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고 싶어도 가면 속에 나를 감춰야 한다는 것이 참 서글프다. 근데 이들 허물없이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편해 보이고 부러워 보였다.

극 중 자영이 우리와 술자리에서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친구도 가족에게도 진솔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고 말한 장면이 있다. 근데 우리는 그저 들어준다. 그래서 끌림을 느낀다.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결핍되어있다.

순수한 몸의 대화만이 가식이 없어진다는 것이 애잔하다. 대화를 하고 싶다. 재잘재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속 저들처럼 말하고 싶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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