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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적 사고는 어떻게 '나'를 속박하는가

‘나’에 대한 ‘나의 생각’에 관하여

by 향인
사과씨 : 다른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안 그러고 싶은데.. 근데 어릴 때 엄마 아빠도 날 귀찮아했어요. 내가 드세고 나댄다고 안 좋아했어요. 애교 많은 동생만 예뻐하고. 학교 선생님도 절 별로 안 예뻐하고. 친구들도 은근히 노는데 안 껴주고. 한마디로 전 어딜 가도 찬밥 신세예요

상담자 :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사과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따스한 관심도 주지 않았군요. 그럴 때마다 마치 찬밥처럼 아무 눈길 닿지 않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다고 느껴졌겠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사과씨를 자꾸 서운하게 대하는데.. 그렇다면 사과씨는 본인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상담에 온 내담자들의 호소문제는 제각각 다양하지만, 그들이 가진 상처는 대게 비슷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상처가 사람,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늘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지, 정작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싶다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신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해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내담자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열 명 중 여덟아홉 명은 잠시 주춤한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서러운 얘기들을 쏟아내는 동안에는 내내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있지만, 이 질문을 받는 동시에 갑자기 자기 자신에게로 초점이 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잘 모르기 때문에 멈칫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은지는 곧잘 말하면서도, 정작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잘 안 떠오르는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 즉 자기 개념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동적 사고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고가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인지 치료에서는 먼저 내담자의 자동적 사고를 밝혀내는 것이 주요 치료 기법 중 하나이다.


자동적 사고로 일어나는 ‘나’에 대한 생각은 보통 의식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막연한 느낌에 가깝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상하다’라고 말하는 내담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어떤 점이 이상한 것 같은지 물으면 대게 대답을 잘 못한다. 그냥 막연하게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래된 자기 개념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가지고 그때 일어나는 생각들을 면밀히 관찰해 작업해야 한다.


자동적 사고로 일어나는 자기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라면, 이것이 더 깊은 내면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어떤 핵심 신념으로 이어지는지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치료에서는 우울증 등의 정서 장애를 일으키는 부정적 핵심 신념을 역기능적 신념이라고 부른다.


역기능적 핵심 신념의 특징은 이것이 당위적 명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당위에 묶인 핵심 심념은 절대성, 완벽주의, 완고함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 절대성, 완벽주의에 무의식과 의식이 사로잡혀 있는 한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을 떠나서 살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치유를 원한다면 반드시 내가 갖고 있는 삶 속의 당위 명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역기능적 핵심 신념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기능적 핵심 신념은 자동적 사고보다 더 깊은 무의식 내밀한 곳에 있기 때문에 바로 알아낼 수가 없고 자동적 사고를 통해 유추해낼 수 있다. 자동적 사고는 관찰하려는 노력을 가지고 조금만 훈련하면 금세 알아낼 수 있다. 훈련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1)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그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적는다. 2) 그때 떠오른 감정, 생각을 함께 적는다. 3) 자동적 사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는다. 합리적 반응은 자동적 사고에 담겨있는 오류를 발견하고 보다 합리적인 대안적 사고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4) 실제로 내가 한 행동, 결과에 대해 기록한다.


예를 들어 보자. 사과씨는 새로 이직한 직장에서 옆자리에 앉는 포도씨가 아침에 출근했을 때 본체만체 인사도 안 하고 자기 일만 해서 기분이 나빴다. 나쁜 기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일까 생각해보니 화도 좀 나고, 왠지 서글픈 마음도 든다. 그때 든 생각은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무시하나’, ‘역시 난 여기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적응 못하는 건가’이다. 사과씨가 실제로 한 행동은 똑같이 인사 안 하고 생까는 거였다. 나름의 소심한 복수랄까. 하지만 전혀 속 시원하지 않았다. 상담 샘이 이럴 때 생각해보라고 숙제를 내주었으니 한 번 생각해본다. 대안적인 행동이 뭐가 있을까. ‘흠. 다시 생각해보니 포도씨는 날 무시해서가 아니라 출근하자마자 바빠서 정신없었을 수도 있고, 원래 성격이 그렇게 먼저 인사하는 타입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인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인사하는 게 좋으니까’
자동적 사고와 감정에 '내가 확신하는 정도, 감정의 강도' 수준을 생각해 1-100까지 점수를 매겨서 기록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일주일만 적어도 뭔가 공통된 패턴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패턴 안에는 나의 핵심 신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과씨가 가진 핵심 신념 중에 하나는 ‘모든 사람은 나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는 핵심 신념을 의식화해서 수면 위로 떠올려 실체를 보고 나면 ‘이 비합리적인 명제가 정말 내가 가진 생각이 맞나. 이건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인데. 내가 왜 그랬지?’ 싶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Illustrated by 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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