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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꿈을 꿨다

심리 상담의 효과

by 향인
나는 숲 속의 야영장 같은 곳에 있었다.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헤매고 있는데, 눈앞에 조교 같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에게 화장실이 어딨는지 물었다. 빨간색 각진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그는 무서운 인상과 달리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나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가서 마침내 화장실을 찾았는데, 거기엔 세 개의 변기가 있었다. 그런데 제길. 화장실 창문이 너무 크게 뚫려 있다. 창문 너머에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여기서 일을 보다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보게 되겠는데?' 나는 결국 볼일을 보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한 지 두서너 달쯤 되었을 때 꾸었던 꿈이다. 꿈이 인상적이어서 다음 상담 시간에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꿈을 꾼 것 같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내담자들이 초반에 종종 상담에 관한 메타포를 담은 꿈을 꾼다고 한다.


이 꿈 이후로도 교육 분석을 받는 몇 년 동안 나는 화장실 꿈을 가끔씩 꾸었다. 신기한 것은 상담이 진행되고 나의 내면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갈수록 꿈의 내용도 점차 변해갔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위의 꿈처럼 누가 볼까 봐 창피하고 두려워 일을 보지 못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러다 변기가 너무 더러워서 도무지 일을 볼 수 없는 꿈도 꾸었다. 그다음에는 우리 집 화장실에서 일을 보려는데 너무 급한 나머지 변기가 아니라 바닥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누군가 볼까 봐 두려워 일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반대로 조절에 실패해 부적절한 곳에 실수를 하거나. 내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의식이라는 수면 위로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라는 메타포는 어쩌면 그동안 내가 주워 삼키고 살아왔던 그 많은 말들과 억눌린 마음을 빗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난받거나 창피당할까 두려워 세상 밖으로 내놓지 못했던, 밖으로 내놓았다가 부적절하게 흘러넘쳐 큰 실수를 범하게 될까 불안해서, 이름 한 번 불러주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들. 그 다양한 살아있는 감정들이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우리 집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꿈을 꾸었다.


하얗고 깔끔하게 새로 꾸며진 화장실을 보며 꿈속에서도 설레었다. 그 꿈을 꾸었던 날의 상쾌한 아침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심리 상담을 받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일 것이다.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 에너지를 들일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


십 대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늘 달고 살았던 변비와 소화불량이 싹 사라진 게 덤이라면, 나 자신과 불화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이 편안한 마음이란 누가 나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없고, 오직 나만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또 한 번 생기면 누구도 빼앗아갈수 없는 강력한 삶의 무기기에 더욱 귀하고 감사하다.


심리치료의 효과성은 점점 많은 경험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뇌신경과학이 발달하면서 심리 치료를 통해 뇌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실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드러나고 있다.




꿈에 나타난 빨간색 각 있는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영락없이 해병대 교관처럼 생긴 그는 나의 상담 선생님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실제는 그가 아니라 그녀지만. 화장실을 찾아 길을 헤매는 내게 방향을 알려주고 열쇠까지 건네주었으니 내가 믿고 의지할 수밖에. 부리부리한 인상 때문에 첫 이미지가 약간 무서웠던 선생님을 엄격하지만 친절한 해병대 교관으로 꿈에서 탈바꿈시킨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재밌다. 어쩌면 꿈속의 교관은 늘 내 안에서 나의 말과 행동을 감시 감독해왔던 초자아의 모습을 일부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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