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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Jan 26. 2023

손으로 쓰는 글_가방

하루 20분 손글쓰기

언젠가부터 '가방'이라는 단어를 보면 <Bag Lady>라는 제목의 노래가 떠오른다. Erykah Badu라는 R&B 뮤지션인데, 대학 때 만난 친구가 어느 날 무겁게 짊어진 내 백팩을 보더니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알려주었다. Bag Lady가 뭔고 하니, 미국 사회에서 쇼핑백에 짐을 잔뜩 집어넣고 다니는 여성 노숙자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구글에 Bag Lady를 검색해 보면 갖가지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노래를 들어보니, 가삿말이 귀에 꽂힌다.


"Bag lady, 그러다 등 다치겠어. 그렇게 가방을 끌고 다니다가 말이야. 아무도 너에게 말 안 해줬나 본데. 네가 꼭 쥐고 있어야 할 건 너뿐이야."


후렴구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언젠가 그 가방들이 네 앞을 가로막을 거야. 그러니까 짐은 가볍게 싸."


캬. 멋들어진 메타포였다. 친구는 늘 처진 어깨에 무겁게 가방을 짊어진 내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때 친구가 가방을 왜 그렇게 무겁게 메고 다니냐고 물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업보야"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당시 내가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던 것들은, 대부분 내가 미처 내려놓지 못한 미련, 욕심이었던 것 같다. 집을 나설 때 가방을 싸곤 하는데, 그럴 때 '이 책은 오늘 읽고 싶을 거야. 노트북을 놓고 가면 난감한 일이 생길 거야' 등의 이유로 가방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한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무겁기만 한 가방을 메고 있으니, 어깨는 늘 딱딱하고, 쉽게 피로해질 수밖에. 친구가 Bag Lady 노래를 알려준 뒤 나는 가방을 가볍게 싸기 시작했다. 가방을 꾸역꾸역 채워 넣으려는 욕심을 의식적으로 내려놓으며, 나의 삶도 보다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그로부터 벌써 5-6년이 지났나 보다. 백팩 대신 숄더백을 들고 다니는 요즘, 가방은 예전보다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가끔씩 미어터지는 가방을 보고 왜 또 그랬을까 싶을 때가 있다. 가방을 싸는 건 뭔가를 채우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인 것 같다. 내일은 오늘보다 light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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