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많이 먹지 않았어."
"난 당신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살찌지 않았어."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술술 나올 줄 몰랐다. 남편도 연애 초엔 제법 반응을 해주더니 결혼한 뒤로는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놀리며 농으로 받아친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두 번째 데이트 때 식당에 갔는데, 순식간에 앞에 놓인 접시를 싹싹 다 비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그릇을 다 비우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친정 식구들은 엄마부터 아빠, 남동생까지 모두 입이 짧았다. 나는 뭐든 늘 잘 먹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반면 남편은 내가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수저를 탁 내려놓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나는 내가 배가 부르면 수저를 탁 내려놓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먹지 않는단 사실을 남편이 말해줘서 알았다. 그땐 그랬다. 결혼 전에 시부모님께 처음 인사드리러 가던 날도 남편이 시부모님께 연신 설명을 했다.
"얘는 배가 부르면 수저를 딱 내려놓더라고요."
시어머님이 내가 맛이 없어서 음식을 안 먹는 걸로 오해하실까 봐 그런 것이다. 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좋으시고, 마음도 넉넉한 전라도 분이셔서 그날도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해놓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일종의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나의 친정집은 식사 시간이 언제나 초스피드였다. 다들 입도 짧고 말도 없이 먹기 때문에 정말 몇 분이면 후루룩 먹고 끝난다. 반면 시댁은 식탁에 앉아 계속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정말 배가 많이 불렀다. 나도 배가 부른데 연세가 꽤 있으신 두 어르신이 음식을 잘 드시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는 시댁에 가서 밥을 먹으면 내가 가장 오래, 많이 먹는 것 같다. 이유를 분석해 보았는데, 일단 어머님 음식은 간이 짜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슴슴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간도 슴슴한 데다 맛도 좋으니 많이 들어가는 거다. 반면 시부모님은 그때에 비해 조금만 드신다. 당 조절도 하셔야 하는 데다, 소화력도 예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신 탓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결혼 전에 배가 부르면 수저를 내려놓던 얌전한 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덕분에 점점 슬그머니 야금야금 살이 찌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 이후로는 말할 것도 없고.
남편은 더 이상 맞장구 쳐주지 않지만, 남편을 만난 이후로 살이 찐 주된 원인은 바로 '면' 중의 면, 파스타 때문이다! 요리 센스가 좋은 그는 특히 파스타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 뭐 먹지?' 물으면 '파스타?'라고 말하는 그가 늘 참 신기한데, 또 막상 해주면 맛이 있으니 잘 먹게 된다. 게다가 그는 늘 3인분으로 요리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입맛도 풍채도 점점 닮아가고 있다.
알레올리오, 봉골레, 토마토파스타, 대파 파스타, 야채새우 파스타, 레몬틸리아텔레 등 그동안 여러 가지를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아기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손쉽게 할 수 있는 토마토 파스타와 알레올리오 같은 것만 줄기차게 해 먹었다.
나는 그가 한 모든 파스타가 맛있지만, 요즘 들어 '까르보나라' 생각이 너무 간절했다. 크림 들어간 하얀 한국식 파스타 말고, 정통 이태리 가정식 까르보나라는 꼬소하게 짭짤하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서 포만감이 특히 많이 드는 음식이다.
까르보나라를 하려면 관찰레(염장한 돼지 볼살) 또는 판체타(염장한 돼지 뱃살)가 필요한데, 그걸 사려면 코스트코까지 가야 하는 데다 가격도 예전보다 많이 올라서 괜히 부담스러워 한동안 손이 안 갔었다.
그러다 어제 모처럼 코스트코에 간 김에 판체타를 사들고 와 남편의 맛있는 까르보나라를 기대했는데! 아이가 남편과 공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만들게 되었다. 인심 좋게 생기신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만드는 가정식 까르보나라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면서 만들었는데, 가정식답게 정확한 계량이 없다. 허허.
그냥 내가 된장국 끓일 때 대강 짐작으로 하듯, 그렇게 만들면 되겠지 하며 요리했다. 마지막에 삐끗했지만, 다행히 먹을만하게 맛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 왈
"오늘 아침은 뭔 줄 알아?"
"뭔데?"
"까르보나~라!!!"
그렇게 어제저녁, 오늘 아침 두 끼 연속 까르보나라를 해치웠다. 체중계에 올라가니 단 두 끼만에 1kg이 쪘다.
- 재료 : 관찰레 혹은 판체타, 파마산 치즈 간 것, 스파게티니 면, 올리브기름, 소금, 후추, 달걀노른자 3-4개
- 레시피
1. 스파게티니 면 삶기. 1리터당 10g의 소금을 넣어 삶아준다. 꽤 많은 양이지만 그래야 맛있다!
2. 면을 삶는 동안 판체타 덩어리에서 적당하게 먹을 만큼 고기를 잘라 올리브기름에 넣고 튀기듯이 굽는다.
3. 판체타가 구워지는 동안 소스를 준비한다. 계란 노른자 2-3개(알이 작은 계란은 3개가 적당)를 풀고, 거기에 파마산 치즈 가루 적당량(대략 4-5큰술), 후추 충분히 뿌린 후 섞어준다.
4. 판체타를 빠삭하게 굽고, 기름이 너무 많이 나오면 키친타월로 조금 닦아낸다(**이때 주의할 점 : 너무 많이 닦아내면 파스타면에 기름 코팅이 제대로 안 된다)
5. 판체타가 구워져 있는 프라이팬에 삶아 놓은 스파게티니 면을 넣고 기름을 코팅한다는 느낌으로 둘둘 저어준다.
6. 만들어놓은 소스를 붓고 섞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프라이팬이 너무 뜨거울 때 넣으면 계란 노른자가 스크램블에그처럼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어느 정도 식힌 다음에 넣고 둘러줘야 한다. 또 너무 식으면 맛없다. 몇 번 해보면 감이 오는데, 처음엔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금방 감을 찾게 될 것이다!
7. 접시에 옮기고 기호에 맞게 파마산이나 페코리노 치즈, 후추 솔솔 뿌려서 장식하면 끝!
* 궁금하신 분들을 위하여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알려주는 정통 이태리 까르보나라 만들기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