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의 계절

꽃 피우는 겨울을 기다리며

by 향인

사랑초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 늦가을에 남편과 함께 양재 화훼시장에 갔었다. 그즈음 자주 나무를 키워보고 싶다고 말하던 그였다. 어딘가에 나무를 심어 자신만의 나무를 갖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소박한 소망이 마음에 들어서. 언젠가 그 소원을 꼭 이뤄줘야지 기약 없는 다짐을 하며. 대신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는 작은 나무가 있을지 찾아보기로 했다.


어떤 늠름한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들떠 기분 좋게 화훼시장으로 향했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것처럼 알록달록 어여쁜 꽃들과 멋진 묘목들을 잔뜩 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겠구나 기대하면서. 그런데 웬걸. 쉬는 날이었다. 둘 다 치밀함 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이리 공연한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야외 한 구석에 문을 열고 자그마한 화초들을 파는 곳이 보였다. 사장님에게 겨울에 키울만한 것 중 뭐 좋은 게 있을까요 여쭤보니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올라온 화분을 하나 추천하신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는데 집으로 데려가 며칠 지나면 꽃봉오리에서 꽃이 필 거라고 하신다.


그렇게 우연히 우리 집에 온 사랑초는 그 해 겨울 내 이름처럼 아주 예쁘고 사랑스럽게 꽃을 피웠다. 오전에 해가 들 때 시간 별로 조금씩 벌어지며 피는 모습이 꼭 바람에 살랑거리는 플레어스커트 또는 스크류바 아이스크림 모양 같았다. 오후에 해가 지면 다시 꽃을 돌돌 말아 다무는 모양이 신통방통 했다. 추운 겨울에 이리도 고운 분홍빛 꽃을 피워내다니 너무 기특한 녀석이다.


겨울 동안 꽃을 피우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보잘것없는 마른 풀이 되는데, 그 밑에 구근이 달려있어 잘 말려 보관한 뒤 다음 해 겨울에 심으면 다시 또 꽃을 피울 거라고 했다.


그렇게 올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가을이 왔을 무렵 남편은 잘 말려둔 구근을 꺼내서 화분에 심었다. 며칠 지나니 새싹이 하나 올라오고, 또 며칠이 지나니 여럿이 무리 지어 올라온다. 보면 볼수록 생명력이 강하다.

사랑초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본래 추위에 약한 사람이다. 사주 오행상으로 금(金)이라 그런가. 사계절 중 유독 겨울을 못 견뎌하는 편이었다. 추워서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다니느라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도 싫고,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들도 안돼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겨울이 싫은 이유는 마음이 허전해서였던 것 같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헛헛했던 시절에 맞은 겨울은 늘 쓸쓸했다.


겨울이 외롭게 느껴지지 않은 건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하던 시절의 겨울 이후부터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와 처음 만나던 때도 이맘때쯤이었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던 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던 그와 나는 그 시절 참 열심히 연애했다. 한 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지내다 주말에 다시 만날 때 느끼는 온기로 그다음 한 주를 잘 버텨냈다. 함께 할 동반자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계절의 온도가 달라진다.


동반의 즐거움이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은 아닐 것이다. 벚꽃이 만발한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초가 피는 겨울을 기다리는 것이 계절을 보내는 또 다른 자그마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니 계절을 거슬러 홀로 핀다고, 대세를 거슬러 사느라 외롭다고 혼자 애달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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