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_여행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여행의 이유> 中, 김영하 산문
그 해 여름휴가는 느닷없고, 갑작스러우며, 예측불허였으나 그래서 가장 완벽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의 사수이자 팀장이었던(팀원은 나 한 명) K 선배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는 늘 휴가 계획을 가장 먼저 짰고, 나는 그와 나머지 프리랜서 직원들의 휴가 일정과 겹치지 않은 때로 휴가 일정을 맞춰야 했다. 그 해 여름휴가도 그렇게 갑자기 주어졌다. 시간표를 보니 당장 다음 주에 휴가를 떠나야 했다.
근사한 곳으로의 여행은 이미 그른 시간. 집에나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정말 뜬금없이.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학생, 백수 때는 돈이 없어서,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시간이 없어서 배우다만 소리였다. 갑자기 판소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갈망에 몸이 들끓었다.
네이버에 '서편제 전수관'이라고 치니 '서편제 보성소리전수관'이 떴다. 홈페이지 같은 건 없었다. 전화를 해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소리를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화를 받으신 회장님은 이런 전화가 처음이신 듯했다. 잠시 생각을 하시다가 이내 와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다. 강습 비용이며, 숙식비는 얼마나 드리기로 했는지 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들에 대해선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처마 밑에 제비가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장님은 여자 혼자 전수관 빈 방에서 자는 게 영 내키지 않으셨는지 나를 한 할머니 회원분 집에 머물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초등학생 어린 손자가 사는 집이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는 방에 누워만 계셔서 한 번도 뵙지 못했다. 할머니의 아들이자 아이의 아빠는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고, 가끔 아이를 보러 오는 듯했다. 아이의 엄마는 집을 나갔다고 들었다.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어린 소년은 9살 내지 10살쯤 되었던 것 같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하얀 얼굴의 맑은 아이였다. 아이는 소리를 꽤 잘해서 내가 소리 공부 시간에 잘 못 따라가는 것 같으면 봐두었다가 다정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전수관에서 소리 강습이 끝나고 할 일 없는 시간에 그 아이와 주변에 있던 큰 운동장을 거닐기도 하고,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보기도 했다. 도서관이 처음이라는 아이는 책에는 영 흥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커피숍에서 먹는 빙수는 정말 좋아했다.
그 집에 며칠을 머물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3-4일은 되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맛깔 좋은 전라도 밥상으로 지친 몸을 회복하고, 맑고 순수한 아이의 절대적인 관심을 받으며 내 마음도 부드럽고 몽글몽글해졌다. 그러나 언제나 이야기의 끝은 오고야 마는 법. 다음 집에서의 숙박도 모두 끝이 나고, 마침내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을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대신 문구점에 들러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사주었다. 정말로 끝.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 아이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속이 상한 할머니가 아이를 나무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게 소리도 못 내고 서러운 듯, 서글픈 듯 우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아이가 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단원분들과 안녕을 하며 어정쩡한 걸음으로 전수관을 나섰다.
그 아이는 지금쯤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소리를 공부하고 있을까? 이름도 잊어버린 그 아이의 얼굴과 해맑은 웃음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꼭 안아주었으면 좋았을까. 만질 수 없는 기억만 더듬거려 본다. 나는 판소리를 배우러 떠난 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왔던 것일까.
가끔 기억과 공상 속에서 처마 밑 제비가 살고 있던 그 집을 떠올린다. 산들 산들 바람이 부는 처마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던 그 시간 속을 거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