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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Feb 05. 2024

돌에게

손으로 쓰는 글

추사 김정희 고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소한 일로 남편과 심하게 다툰 후 어렵게 풀고 기분전환을 위해 아이와 셋이서 주말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며칠 정말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한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간 이유를, 남편이 그러자고 한 이유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평상시 집은 따뜻함과 안온함이 머무는 곳이지만, 부부가, 가족이 다투고 난 뒤의 집에는 상처의 흔적이 기억으로 남는다. 다시 원래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만한 시간과 정서적 환기가 필요하다. 한나절 나들이는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해서 떠난 여행지인 추사 김정희 고택은 고즈넉하고,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유형문화재인 고택이라지만 지금도 사람이 살기에 너무 좋겠다 싶을 만큼 잘 지어진 한옥 같았다. 이런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하루 종일 누워서 혹은 앉아서 책 읽고 멍하니 창문을 열어놓고 쉬고 싶다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이내 둘 다 요원한 일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는지 헛웃음만 흘렀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안채
한나절 책 읽고 한나절 명상하고 싶을만큼 고즈넉한 곳

아이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리저리 제 뜻대로 가겠다고 엄마, 아빠 손을 수차례 뿌리치며 노느라 바빴다. 마당에 깔린 자갈을 발로 차며 걸어도 보고, 손으로 집어 앞에다 뿌려보기도 하고, 누워있는 마른 잔디와 낙엽을 밟으며 쫓아다니기도 하고. 한참 머물다 고택을 나오니 너른 잔디가 고즈넉하게 펼쳐지고, 걷다 보니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영조의 사위) 김한신의 묘도 보인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또 다른 고택 담벼락이 보인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집은 없고, 주춧돌로 보이는 오래된 돌들만 쭉 놓여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화순옹주 열녀문으로 담벼락은 나중에 지어졌고, 주춧돌이 놓여있는 곳은 묘막(무덤 가까이에 지은, 묘지기가 사는 작은 집)터였다.


화순옹주는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과 결혼했는데, 그가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단식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 영조는 자신의 만류에도 기어이 세상을 떠난 딸에게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훗날 정조가 그 뜻을 기려 내렸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처음 보는 커다란 돌무더기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내 손을 잡고 돌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았다. 아이와 돌을 만져보며 "와 딱딱하고 차갑네" "어랏. 이 돌은 저 돌보다 좀 따뜻하네" 말을 하다 보니, 문득 돌을 어루만지고 돌의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인디언 문화에 관한 책의 영향이었다. 자연 모든 것의 소리를 듣는다는 인디언들처럼 나도 가만히 멈춰서 돌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졌다. 생전 처음 하는 짓인데 아이와 함께 하니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아이와 돌을 어루만지며 "우리 돌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했더니 아이가 흔쾌히 "응"이라고 답한다. 잠시 침묵 속에 있다 말했다. "돌이 여기 아주 오래 있었데. 지금은 바람이 불고 차가워져서 좀 춥데. 가끔 외로울 때도 있데. 근데 괜찮데. OO이랑 만나서 반갑데." 돌이 전해준 이야기인지, 내 내면의 소리인지 모를 말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나왔다. 진심으로 듣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침묵 속에서 상대방을 기다리며 내 마음에 전해지는 그 무엇을, 어쩌면 존재 그 자체를 듣는 것. 듣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시시비비 하고, 불평하고, 비난했던 내게 '듣기'를 가르쳐준 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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