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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09. 2019

결혼이야기 해석 <결혼의 풍경 U.S Ver.>

결혼이야기(Marriage Story 2019) 리뷰

잉마르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Scenes From A Marriage, 1973)>을 오마쥬 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혼은 고도의 사회학적 행위다.‘라고 막스 베버는 정의 내렸다. 결혼은 가족과 사회, 국가로부터 ’ 부부‘관계라는 공인받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가족과 사회, 국가로부터 출산과 육아를 차별받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가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는 성역할이 해체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은 아직까지 없다. 남성은 청년실업과 집값 부담에 노출되어있고, 여자들은 자신보다 우월한 남성의 능력을 바라고 있다. 이런 제도와 성역할의 불일치는 수많은 남녀 갈등과 이혼율 증가, 결혼율 감소라는 사회현상을 양산한다.


여기서 노아 바움백은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에 주목한다. 마치 잉마르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Scenes From A Marriage,1973)>을 연상 게하는 결혼의 파멸을 그릴 연극무대를 세운다. 초반부에는 남녀가 카메라 숏에 함께 잡히지만, 점차 벽과 기둥을 분기점으로 남자 따로, 여자 따로 각각 잡힌다. 결혼이라는 법적 서약이 해체되는 과정을 그린다.





■관계지향적인 여성

영화는 우선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에게 집중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그녀는 파일럿 촬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차차 정리해나간다. 그리고, 변호사(노라 던)와 상담 장면이 펼쳐진다. 캄캄한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의 독백처럼 두서없이 감정적인 자기 서사를 발설한다. 니콜은 자신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스스로 발견한다. 관계지향적인 성향이 강한 여성이 대화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여성적이다.


임신에 대한 부담이 있는 여성 입장에서 남자보다 연애 상대를 심사숙고해서 고른다. 상대가 믿을만한 대상이라고 확신이 들 때까지 쉽게 결정을 못하지만, 상대방을 신뢰한 이후부터는 ‘남편’이라는 강력한 자기장에 휩싸여 모든 걸 상대방에게 맞춰준다. 희생이 사랑이라고 믿는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속박이 깨지자 여자답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된다. 니콜은 당연하게 ‘일’을 선택한다.



니콜이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손장난(?)을 펼치는 장면처럼 여성은 일단 어렵게 고민해 선택한 상대와 이별하고 나면 상대적 허탈감이 빨리 찾아온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갈망하는 여성적인 본능에 따라 점차 안정을 찾는다. (영화 후반부에) 새로운 남성과 사귀고 있다.





■혼자 끙끙 앓는 남자

연극 연출가 찰리(애덤 드라이버) 입장에서 결혼에 골인한 이후로 그는 가정에 충실한 남편과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내가 갑작스럽게 LA에 정착하겠다는 선언에 당황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덜 관계지향적이라 초창기엔 별로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니콜이 남편의 장점을 발표하기를 꺼린 데 반해 찰리는 거침없이 부부상담에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이유다. 니콜은 아직 마음이 채 정리되지 않았던 반면에 남성은 이혼하려는 이유나 문제점 등은 조용히 (심리적인)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거의 잊고 지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극단 직원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니콜과 찰리의 반응이 다른 이유다. 니콜이 친구나 친정 식구,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며 점차 이혼에 대한 입장이 구체화되는 반면에 찰리는 이혼 문제를 단순히 부인이 힘들어하기 위해 친정 LA에 가서 풀기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찰리는 법적 투쟁보다는 부부간 상담 등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기 원한다. 그러나 남성이 결혼이 주는 구속력이 약해질수록 외도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 사실을 니콜은 남편의 이메일을 해킹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혼소송이 시작된다.





■ 왠지 밉지 않은 니콜과 찰리!

노아 바움백은 주인공 부부를 연극계 인물로 설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풍자하겠다는 의도와 둘째는 이혼 법정 등 결혼 풍경 전반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를 펼칠 의도다. 예를 들면, 찰리가 니콜이 준비한 이혼 서류를 발견하는 장면은 마치 스크루볼 코미디 같다. 이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니콜과 찰리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게 된다.


감독이 주인공 부부를 최대한 보호하려는 이유는 그는 ‘니콜’과 ‘찰리’라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결혼, 이혼,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려는 의도다. 그래서 영화 형식에서 적극적으로 형이상학을 다뤘던 잉마르 베리만을 참고한 것이다.





■ 진정한 적은 ‘변호사’

이 영화의 악역은 이혼 전문 변호사역을 맡은 ‘로다 던’이다. 불신을 조장하는 그녀는 가족드라마를 단숨에 법정극으로 이끈다. LA법원의 미팅 룸에서 니콜과 찰리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마주 앉아 대치한다. 베테랑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서로 팽팽한 협상을 펼치다 말고 갑자기 인간적으로 점심은 먹고 하자고 제안한다. 더 높은 수임료를 챙기기 위해 폭로전을 일삼던 변호사들에게는 비즈니스이지만, 당사자인 니콜과 찰리의 사정은 다르다.




아내 측과 남편 측으로 나뉘진 양 진영이 부부 대 변호사로 바뀌는 장면은 묘하다. 니콜이 상기된 표정과 얼빠진 찰리가 메뉴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횡설수설하자 적이었던 니콜이 남편을 대신해 메뉴를 정해주는 아이러니가 그렇다.



후에 이혼소송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을 때 서로에 대한 폭로전이 격화될 때 니콜이 먼저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찰리의 집에 방문한다. 이때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처럼 답답한 방 안에서 싸우는 두 배우의 얼굴을 1.66:1의 화면비로 클로즈업한다. 두 개의 인격을 대치하던 베리만의 아이디어를 참고한 대목이다. 입장 정리가 끝난 여자와 이제야 수면 밑에 숨겨뒀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자의 대립에 그대로 적용했다. 찰리가 무릎을 끊고 니콜이 토닥토닥 달래주는 장면으로 그 심리를 확실히 포착한다.






■ 결혼이 새롭게 지어주는 이름,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

지인들과 함께 축하하는 니콜!!
홀로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찰리!


LA 출신 중산층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니콜과 오하이오에서 뉴욕으로 자수성가한 찰리는 출신성분부터가 다르다. 이를 철학자 바디우는 ‘타자와의 비대칭적 차이’이라고 명명한다. 그렇지만, 겉보기엔 대조적인 두 사람은 ‘예술가’라는 교집합을 갖고 있다. 니콜이 후에 ‘연출’을 겸임하는 대목에서 두 사람의 공통분모가 여전히 성립함을 증명한다. 두 사람의 미래가 생각보다 밝고 원만할 것을 예견한다. 자! 여기서 결혼의 본질을 알아보며 끝마치겠다.




부자 간의 불협화음! 

앞서 설명했듯이 ’타자와의 비대칭적 차이‘가 불가피하다. 우리는 부모와도 다르고, 형제자매와도 다르고, 자식과는 더더욱 다르다. 핼러윈 장면처럼 찰리가 아들 헨리와 종종 불협화음을 이루는 대목에서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남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이처럼 사랑은 혈연, 지연, 학연, 심지어는 민족이라는 관계마저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둘은 둘로서 마주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디우는 “사랑은, 둘이 있다는 후後사건적인 조건 아래 이루어지는, 세계의 경험 또는 상황의 경험”이라고 정의 내린다. 다시 말해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둘만이 주인공으로 대두되는 경험이 바로 ‘둘이 있다는 후後사건적인 조건’이다. 이런 순간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비대칭적 차이를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도 ’ 끈덕지게 견뎌 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LA에 이사 오는 문제가 영화에서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 둘 ‘이 ’ 하나‘로 환원하려는 유혹을 견디어 낼 때에만 오히려 성립되는 게 아닐까? 결혼은 끊임없이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아빠는 아빠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사위는 사위답게, 며느리는 며느리답게를 강요한다. 일체성 즉 하나를 강요하는 행위가 도리어 일심동체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남녀 갈등의 핵심이다.



★★★★ (4.0/5.0)


● 노아 바움백의 자전적인 경험과 주변 여자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각본을 썼다.

그중에는 배우였다가 감독이 된 그레타 거윅의 이야기도 포함되었다.


● 베리만의 <화니와 알렉산더 (1982)>의 몇몇 장면도 오마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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