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하늘에 묻는다 (Forbidden Dream, 2018)》 후기·리뷰_위인의 욕망을 그리다.
멜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의 간다>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를 연출하면서 거시적인 역사적 비극보단 미시적인 개인이 겪는 시대적 비극에 중점을 뒀었다. <천문>도 마찬가지다. ‘안여(安與, 임금의 가마) 사건’을 통해 하루아침에 궁 밖으로 내쳐지는 장영실과 이에 대한 세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뤘다. 실록에 기록되어있으나 장영실과 세종대왕의 관계과 행적이 모호해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빈칸을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신분을 뛰어넘는 브로맨스’로 채우고 있다. 이처럼 ‘관계’를 다룰 때 허진호 특유의 절제된 화법이 빛을 발한다. 그간 태평성대로만 알려졌지, 위태로운 세종 시기는 덜 다뤄졌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두 남자가 의기투합한다는 설정이다. 관객이 두 사람의 일화와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역사적 맥과 맞닿는 구성이다.
많은 것이 생략되어있고, 그 시절의 분위기로만 설명한다. 누군가에게는 진중한 사극 톤이라고 환호할 테고, 반대편에서는 지루하다고 아우성칠 것이다. 그렇지만, 한석규가 분한 세종대왕이 <뿌리 깊은 나무>보다 더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최민식이 맡은 장영실은 실록에 등장하는 것이 채 20번이 안될 만큼 행적이 묘연한지라 어떻게 연기 해석을 가할 구석이 많지 않아 보였다. 둘의 관계를 신분을 초월한 브로맨스로 한정짓은 탓에, 장영실을 단순히 '세종바라기'로 역할을 한정한 한계가 여실해 보였다. 한석규와 최민식의 캐미에도 불구하고, [천문: 하늘에 묻는다]은 ‘그래서 뭐??’라는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른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팩션(Faction)이다. '숨겨진 이야기'라 전면에 내세우기엔 그다지 새로운 상상력일 게 없다. 아마 제작진은 장영실이 만든 안여, 자격루,간의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학자들도 모른다는 변명을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132분 동안 인물 관계와 심리 묘사로만 끌고 가는 것은 무리수다. 허진호가 연출을 못 했다는 게 아니다.
과학자를 다루면서 과학적 가설 하나 제시하지 못하니까 임원희, 김원해, 윤제문의 코미디와 세종대왕의 업적 찬양, 분노 유발 대신들의 탁상공론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이를 종합해봤을 때 허진호가 ‘위인의 욕망’에 관심이 있지만, 역사적 의의와 과학적 원리에는 흥미가 없다는 결론에 내릴 수밖에 없다.
★★☆ (2.4/5.0)
Good : 한석규의 압도적인 연기!
Caution : 뻔한 상상력의 팩션(Faction)
●한석규와 최민식은 드라마 서울의 달과 넘버 3, 그리고 1999년 작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했다.
●한석규는 2011년에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마찬가지로 세종대왕 배역을 담당했으며 뿌리 깊은 나무 이후 7년 만에 다시 세종대왕 배역을 맡았다.
●허진호 감독과 한석규가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로 21년 만에 함께 작업하는 영화다.
정남손 역의 김태우는 영화 관상(영화)에서 세종의 아들 문종을, 영의정 역의 신구는 드라마 왕과 비에서 세종의 형 양녕대군을 연기한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인 <천문>은 고대 중국 초나라의 노래인 초사(楚辭)의 한 편으로, 우주가 어떻게 탄생하고 천체가 구성되었는지 궁금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우주론적 질문이 담긴 시이다.
●펭수가 자이언트 펭TV에서 이 영화 오디션을 보는 내용을 찍었다. 펭수 오디션을 보다 영화 내용을 멋대로 바꿔버리는 즉흥 연기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