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car Best Picture Winners
흔히 "오스카상"(Oscar Awards)으로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이다. TV와 관련된 에미(Emmy), 음악 부분의 그래미(Grammy), 극예술과 관련된 토니(Tony)와 묶어서 미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EGOT 중 하나이다.
MGM의 설립자 루이 버트 메이어(Louis Burt Mayer)가 설립한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줄여서 AMPAS)의 회원들이 그 해의 영화들 중에서 투표, 선정하여 시상하는 상이다. 자격은 그 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개최지인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영화면 된다.
일본영화는 수상만 따져도 27회 (특별상 포함)나 되지만, 한국영화는 <기생충>외에는 노미네이트조차 된 적이 없다.
이동진을 비롯한 많은 평론가들이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는다. 왜일까?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산정하면 44억 달러에 해당하며(2011년 기준),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영화사적 의의는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활용해 최고 수준의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현대인이 보기에 반페미니즘과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분명 있다. 원래 마거릿 미첼이 1936년에 쓴 원작소설 자체가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한 남부 문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주제를 갖고 있으므로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원작소설이 지니고 있는 시대적 한계라 해야 옳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 영화 이후로 모든 전쟁영화는 전쟁에 반대하는 反戰(반전) 메시지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의도적으로 부수는 데에 있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분명하고, 권선징악으로 흐르는 장르적 구도를 파괴한다. 적군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묘사하며, 전쟁은 끊임없는 공포와의 싸움이며, 전쟁을 치르게 된 원인조차 불분명하게 그렸다. 그 기법은 '전쟁(War)' 장르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오스카는 때때로 알프레드 히치콕, 스탠리 큐브릭, 오손 웰스 등 거장들을 푸대접한다. 마틴 스콜세지와 더불어 뉴 할리우드 시대를 대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도 한때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컬러 퍼플(1985)> 때 진즉에 오스카상을 받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스필버그가 상을 받으며 “내 인생의 가장 긴 갈증 끝에 마시는 최고의 물”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저명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M. 크로가, ‘쉰들러 리스트’는 가짜라고 폭로하고, 지난 96년에는 쉰들러의 미망인 에밀리가 자서전과 기자회견을 통해 “쉰들러는 영화가 만들어낸 가짜 영웅“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스필버그가 만든 이 영화의 가치는 영원불멸하다.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히려 스필버그는 토마스 케닐리의 원작에 담긴 실존적 공포와 비애감에 집중한다. 특히 집단수용소장 아몬 괴트(랠프 파인즈)에 의해 언제든 처형될 위험에 처해있음을 수시로 강조한다. 이와는 반대로 나치 고위층의 화려한 생활과 절대적인 권력에 대한 묘사를 중간중간 섞는다. 이런 강렬한 대조가 핵심이다.
성직자들의 소아성애 문제를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을 다루고 있다. 엄청난 외압이 이 사건을 묻으려 했으나, 영화는 생존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며 묵념한다. 과연 한국에서 "생존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나아가 K-언론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곰곰이 고민하게 한다.
유달리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반드시 다루는 테마가 있다. 바로 ’노예제와 인종차별’이다. 그러나 [문라이트]는 살벌한 랩 가사가 담고 있는 빈민가 정서와 구슬픈 R&B 음악에 담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한(恨), 형식에서 자유로운 재즈음악같이 분절된 시간대를 통해 현재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현실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선 왕가위 감독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문라이트]에서 다루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다층적 캐릭터 연구는 이후 영화계에 큰 유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소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고 구별된 3막 구성, 달빛이 상징하는 ‘본성’은 기독교의 직선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인도철학의 업처럼 순환론적 세계관처럼도 읽힌다.
현대 시네마들이 저마다 속도전에 휘말리며 잊고 있었던 긴 호흡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졌다. 그 관조적인 리듬감으로 아카데미 회원들이 그동안 외면해 왔던 게토의 삶을 면밀히 관찰했다.
말론 브란도를 스타로 끌어올린 역작이다. 부둣가 노조에 의해 은폐된 부패와 부조리를 목격하게 되고, 법정에서 증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뇌한다. 배신자인가, 희생자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심리적 딜레마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용서'라는 것은 인간이 가장 하기 힘든 행위이다. 폭력의 여파, 서부 개척신화를 벗겨내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명상을 제공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웨스턴의 아이콘적인 인물이 자기반성을 고해한다. 노쇠한 총잡이는 아무리 선한 의지로 총을 잡았다고 해도 원죄를 씻을 길이 없었다. 스스로 악인을 자처하며 더 거대한 악(惡)을 해치우며 선(善)을 구하려 한다.
심리학자나 사학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작품 속의 '폭력에 대한 반성과 악순환'은 단지 스크린 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템)는 만나는 사람마다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쉬거는 한 가게 주인에게 동전 던지기를 제안하자 “동전으로 (내 운명을) 결정할 순 없어요. 당신이 결정해야죠”라고 답하자 쉬거는“동전도 나와 생각이 같을 걸”라며 무원칙하고 무질서하게 튀어나오는 우연과 확률의 화신처럼 언제 어디로든 들이닥친다.
하지만 쉬거도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자 아이들에게 억지로 돈을 지불하고 길을 떠난다. 독립적인 쉬거조차도 사회에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등장인물들 모스(조시 브롤린)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념"과 "확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믿음'이 되고 추후도 의심하지 말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고 하나의 가치관, 습관을 형성한다. 하지만, 믿음이 발생하는 이유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를 깨닫는다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지니므로, 충돌도 없을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래서 영화는 세상이 믿음으로 움직이고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말하고 있다. 제목의 "노인"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의 진리에 다가선 자를 의미한다면,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대로 흘러가는 세상이라면 합리적 기대가 예측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음조차도 확률을 넘지 못한다. 누구나 선택을 할 때 고심 끝에 내린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여도 결국엔 확률의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다. 영화에 등장한 교통사고처럼 인생에서도 '우연'이라는 변수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의 무심함과 개인의 무력감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매우 담담한 시선으로 씁쓸하게 그리고 있다.
우디 앨런의 독특한 로맨스 영화인 <애니 홀>은 내러티브 구조와 시각적 스타일 양 쪽에서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며 앨비와 애니의 러브 스토리를 지적이며 냉소적으로 표현한다. <애니 홀>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관객의 기대를 기분 좋게 배반한다. 우디 앨런은 리얼리티를 깨뜨리는 것으로 유머를 창출한다. 대사와 자막으로 이중의 서사를 동시에 전달하며 관객의 극적 몰입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할리우드 관습을 거부한 연출은 비이성적이며 변덕스러운 연애를 통해 사랑의 본질적인 한 다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그 세속성을 통해 인간과 삶, 사랑에 대한 긍정에 다다르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비극과 희극의 중간 지점을 포착한다. 잭 레먼은 회사중역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주는 회사원 C.C. 백스터 역을 맡았다. 셜리 맥클레인은 다정한 성격의 엘리베이터 걸 쿠벨릭역을 맡아 벡스터의 고민을 상담해 준다.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결정을 잇달아 내려지는 가운데 을(乙)인 두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빌리 와일더는 중용(中庸)의 미덕을 발휘한다. 착취당하는 직장인의 세계를 풍자하되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되, 사랑의 판타지를 강조하거나 감정적 강렬함에 치우치지 않는다. 회사 시스템에 착취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새삼 돌이켜 보게 만든다.
1940년대 중후반은 2차 대전 이후의 전후 상황을 그린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이 많았다. 패전국가의 참상을 그린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1948)], 구로사와 아키라의 [주정뱅이 천사(1948)] 등이 대표적이다. 멜로드라마의 대가인 윌리엄 와일러 역시 승전국가의 어두운 면을 과감히 들춘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은 ‘참전 용사들의 보통 사회 적응기’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계층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식이 특별하다. 요즘 전쟁영화 같으면 PTSD증세로 퉁치겠지만, 부유층(마치)과 중산층(러셀)과 노동계층(앤드류스)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사회에 편입되는지를 다각도로 그렸다. 각자 씁쓸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지만 아메리칸드림을 긍정하는 모습에서 승전국의 여유가 느껴진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하게 되는 해럴드 러셀은 배우가 아니라 진짜로 전쟁 때문에 손을 잃은 군인이다. 이런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활용해 영화가 굉장히 진솔하게 다가온다. 이 진정성이 있는 호소에 감명받은 스튜디오 제작사들은 조금 더 성숙한 시각을 담은 영화에 투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R 등급 영화, 안티히어로나 자경단을 소재로 한 영화가 넘쳐나는 요즘, 마약 밀수 루트를 막으려는 경찰을 다룬 영화는 심심하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강점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리얼리즘에 대한 헌신이다. 도보 추격전, 바 급습, 심야 잠복 등 모든 장면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진다. 프렌치 커넥션의 세계에서 용의자를 미행하는 것은 총격전을 벌이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무려 14개 부분에 후보(6관왕)에 오른 명작은 관객에게 무대 뒤에 벌어진 암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베테랑 배우 마고 채닝(배티 데이비스)이 배우 지망생 이브 해링턴(앤 벡스터)이 음흉한 흉계를 꾸미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작품상 경쟁작이었던 <선셋대로>와 마찬가지로 <이브의 모든 것>은 셀럽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나르시시즘을 탐구하며 명대사들로 가득 차 있다.
1962년 켄 케이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고전적인 약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시에 [쇼생크 탈출(1994)]처럼 고인 물 같던 집단에 한 개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레취드 간호사(루이스 플레처)로 상징되는 강력한 시스템에 맞서는 이방인 랜들 P. 맥머피(잭 니콜슨)이라는 안티 히어로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대변한다. 영화는 맥머피가 병원시스템에 저항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가 안정을 빌미로 고분고분한 인간을 교육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묻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여성이 사회적 억압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엑소시스트(1973)>, <죠스(1975)>, <겟 아웃(2017)>이 작품상을 받지 못했지만, <양들의 침묵>은 과소평가받기 쉬운 호러 장르의 오랜 숙원을 풀어줬다. 물론 스릴러 형식에 가깝다고 여길지 모르나,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의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 즉 심리적 공포와 전율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았고, 한니발 ‘카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와 지하감옥에서 유리 하나 사이에 두고서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특히, 가죽이 벗겨진 주검, 식인 등 엽기적인 묘사도 당연히 등장한다.
이렇듯 <양들의 침묵>은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1934)>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5)>와 함께 주요 5개 부문을 모두 수상한 문화적 시금석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하층민끼리 왜 치고받는 것일까? 과열된 교육, 영끌 투자, 무지성 투표, 부동산 투기 등을 조장하는 언론에 의해 기득권의 입장에 맞게 대중들의 사고를 리셋한다. 서민들끼리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저출산은 당연하다. 독박육아 같은 양육부담이야 그렇다 쳐도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97%가 낙오자가 되는 시스템 속에서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꼴을 어느 부모가 보고 싶겠는가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사례는 비주류 영화가 할리우드에 진입하는 등용문을 상징한다.
멜로드라마는 어느 장르를 가리지 않고 꼭 등장한다. 좀 과장하자면 [카사블랑카]는 멜로 장르에 대한 기본개념을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절박함 위에 ‘카사블랑카’라는 이국적인 장소에서 매력적인 남녀주인공 릭(험프리 보가트)과 일사(잉그리드 버그만)는 카페에서 애절한 노래 ‘As Time Goes By’를 들으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같은 멋진 대사를 속삭인다.
약 8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클리셰(상투적인 것)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 위태로운 낭만을 위대 하다고 칭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범죄영화를 만들었지만, 33살의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는 이 장르를 전혀 다른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다수의 모방자들이 베꼈지만, 그 누구도 이 작품에 비견할 복제품조차 만들지 못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33년간 보유했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을 뿐 아니라, 범죄물, 드라마, 시대극을 넘나드는 영화사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말론 브랜도의 메서드 연기, 마리오 푸조의 훌륭한 시나리오, 고든 윌리스의 혁신적인 촬영은 현재의 영화학교에서 교과서적인 위치에 점하고 있다.
특히 ‘교차편집의 대명사’로 언급되는데, 쉽게 말해 ‘성(聖)’과 ‘속(俗)’을 대조시킨다. 예를 들면 결혼식 장면과 어두운 거래를 이어 붙인다거나 세례식과 청부살인을 대비시킴으로 긴장과 역설을 이끌어낸다. 이런 방식으로 이민자의 정서와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밑바닥을 <대부>만큼 잘 드러낸 작품도 없다.
80년대 이전에 제작된 터라 FBI의 대대적인 소탕이 이뤄지지 않은 마피아의 입김 때문에 범죄미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 영화제작할 때 마피아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70mm 와이드 스크린 화면에 펼쳐지는 광활한 영상미는 많은 후배감독들에게 영감을 줬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의 인생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1916년 아랍을 배경으로 영국 정보국 장교 로렌스의 활약상을 다룬다.
일단 촬영감독 프레디 영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모리스 자르가 작곡하고, 런던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스코어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전기영화이지만, T.E. 로렌스(피터 오툴)를 단순히 영웅서사로 소모시키지 않고 다층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복합적인 영웅 캐릭터를 축조했다.
한편,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1977)>의 사막행성 타투인을 배경으로 한 것과, 이 영화에 출연한 알렉 기네스에게 오비완 캐노비역을 맡겼다. 웨스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서 고글을 쓰고 헬멧 없이 바이크를 타는 로렌스의 모습에 오마주를 바쳤고, 리들리 스콧은 <프로메테우스(2012)>의 안드로이드 데이빗(마이클 패스팬더)을 구상할 때 T.E. 로렌스에게서 착안했다고 직접 밝혔다.
과연 <대부 2>가 <대부 1>보다 우월한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현대 영화산업은 갈수록 TV드라마처럼 연속성을 중시하는 방향인데도 불구하고, [대부 2]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작품상을 받은 속편영화다.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2007)>가 작품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한 건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대부 2>는 모든 ‘속편의 아버지’다. 성스러운 세례식을 암살과 교차편집하며 서스펜스를 높였던 <대부>의 시퀀스 편집 기법을 영화 전체의 구성원리로 확대했다. 과거와 현재를 서로 교차하고 병치함으로써 비토(로버트 드 니로)와 마이클(알 파치노) 코를레오네 부자를 대조한다. 실제로는 마이클과 현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더 강조하면서 그렇게 <대부2>는 <대부>의 부자(父子) 드라마로부터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를 은유하는 신화로 승화시킨다.
교차편집은 이제는 영상언어의 기초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전편이 암시하고 예고한 모든 것을 속편이 보여준다는 공식은 시리즈물을 만드는 제작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철칙이며, 이전시점을 다루는 프리퀄과 이후시점을 다루는 시퀄의 개념도 여기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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