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후기
4.15 총선의 해, 선거를 풍자하는 코미디영화가 나왔다. <정직한 후보>는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 (2014)>의 판권을 구입해 제작했으며, 제목도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브라질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지만,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1997)>를 그대로 베꼈다. 원작격인<라이어 라이어>에서 미국인들에게 변호사가 거짓말쟁이라고 인식되는 반면, 브라질인과 한국인에게 정치인의 이미지가 거짓말쟁이인 듯하다. 브라질 원작과 차이는 여성 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또, 제작사 <수필름·홍필름>은 표절을 의식한 듯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이식했다. 예를 들면,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연줄(조기축구회·해병대·성씨 종친회)을 다뤘고, 사학재단, 원정출산 의혹과 아들의 이중국적 논란이 등장하고,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모든 종교를 끌어안고자 세례명을 말하고 묵주를 차며, 타 후보자 이슈를 유튜브로 폭로하는 등 로컬라이징이 많이 이뤄졌다.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치인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주상숙 캐릭터는 약점이 참 많다. 할머니(나문희)는 사학재단을 세웠고, 남편과는 금술 좋은 부부를 연기하며 중년 여성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남편부터 바꿔드릴까? 라고 너스레 떤다. 동시에 당 대표와 작당 모의하고, 상대 후보와도 서슴없이 뒷거래한다. 이런 약점들이 주상숙이 정치인, 손녀, 아내, 어머니, 며느리라는 역할과 결부될 때 생활 밀착형 코미디가 발휘된다. 누구나 체감하는 한국적인 상황을 비틀고 있다. 그러나 중반부에 이런 캐릭터에 과도한 설정이 도리어 독이 되어 되돌아온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로 국내 뮤지컬계에 창작공연제작 붐을 일으킨 장유정 감독은 <김종욱 찾기 (2010)>, <브라더<2017>에 이어 3번째 영화 연출을 맡았다. 일단 장유정 감독은 이번엔 속도에 집착하는 우를 범한다.
최근 컷 편집이 빨라졌다고 해도 화면전환만 빠르고, 정보만 툭 던지거나 설명조로 대사를 써놓고 퉁 친다. 연출은 어떤 점에서는 교향곡을 편곡하는 것과 같다. 편집은 악기를 배열하듯 캐릭터를 배치하고, 악장별로 완급조절 하듯이 시퀀스마다 리듬감을 조절해야한다.
<정직한 후보>는 사례집처럼 집필된 소설<82년생 김지영>처럼 국내 정치인에 대한 논란들을 죄다 모아서 주상숙(라미란)에게 몰아줬고, 이로 말미암아 중반부터는 여러 가지 갈등을 푸느라 정신없어졌다. 아무리 컷 편집을 빨리 해봤자 이야기진행이 꽉 막혔는데 영화가 속도를 낼 수 있을까? 몇몇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하다가 만 듯 어중간하게 소모되고, 선거운동이나 정치 관련 풍자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허겁지겁 마무리된다.
그래도 장유정 감독이 직접 낸 아이디어들은 좋았고, 무대연출가답게 나문희, 라미란, 윤경호, 김우열 등 배우들이 맘껏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반대로 배우들에게 너무 의지했다는 비판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아쉬운 건 우리나라가 왜 스탠드업 코미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를 먼저 고민해봐야 했다고 본다. 정치, 성, 종교 같이 불편한 것들을 꼬집으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그 문제점을 정확히 짚을 수 있어야한다.
<정직한 후보>는 보여줄 용기는 있었지만, 그 통찰력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 (1.9/5.0)
Good : 극 초반의 생활밀착형 개그!
Caution : 소재를 풀지못해 교통체증처럼 꽉 막힌다.
■우리가 언뜻 영미권이 자유롭다고 여기지만, 외모비하, 약자 소수자를 조롱하는 순간 그 사람은 바로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다. 괜히 정치적 올바름이 영미권부터 발흥했는지를 떠올려보면 간단히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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