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재회한 황정민·이정재의 캐스팅과 한국-태국-일본 3국을 넘나드는 해외 로케이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영화가 60년대 할리우드나 80년대 홍콩 영화처럼 해외를 무대로 사건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로케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해본다.
줄거리는 딸을 구하는 청부살인업자 인남(황정민)이 형제의 복수를 위해 나선 ‘인간백정’ 레이(이정재)의 추격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게 전부다. 15세 관람가임에도 수위는 상당하며, 쾌감보다 긴장(혹은 잔혹함)에 더 초점을 줬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분석해보자!
1.오늘날 액션 영화가 슈퍼히어로에게 밀리는 까닭은?
총기를 저렇게 잡고 사격하면 안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 트렌드에 충실했다. 현대 액션영화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띈다. 먼저 <본 슈프리머시 (2004)>는 스토리를 최소화하고, 편집과 촬영의 도움을 받은 타격감으로 이야기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 하나와, <트랜스포머 (2007)>가 (각본은 신경 안 쓰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의 물량공세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오늘날 액션 스릴러들 <테이큰>, <맨 온 파이어>, <아저씨>, <익스트랙션> 등에서 뚜렷히 발견된다.
거꾸로보면 이것이 오늘날 액션 영화가 슈퍼히어로 영화에 밀리는 원인이다.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의 각성에 초점을 줬을 뿐 액션 그 자체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다. <다크 나이트>가 액션의 비중이 높았던 영화일까를 고려해본다면 최근 액션 영화들이 캐릭터에 신경을 덜 쓰고 오로지 액션 물량공세에 집중하는 경향은 가면갈수록 캐릭터에 신경 쓰는 슈퍼히어로 장르와 정반대의 노선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홍원찬 감독은 이런 액션 영화의 경향을 수용했다.
요약하자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스토리를 최소화하는 대신에 액션 물량공세에 힘을 줬다. 클리셰에 많이 기대서 스토리텔링을 절약하고, 오롯이 볼거리에 집중할 수 있다. 다만, 홍원찬 감독은 액션을 하는 당위성에 신경을 덜 썼다. 그리고 편집이 너무 띄움 띄움 생략되어 있다. 관객들을 위한 정보가 뜨문뜨문 건너 띄워져있어서 내용 파악이 힘들거나 서사가 쭉쭉 뻗어나가지 못했다.
이 빈 틈은 배우들이 메울 수밖에 없다. 인남 역을 맡은 황정민은 대사량이 많았던 <공작>이 너무 힘들어서 대사가 적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사 없이 오로지 표정으로 표현해내야 해서 더 어려웠다고 한다. 액션은 잘 소화했는데 인남은 그냥 황정민으로 보였다. 인남을 중심으로 인물관계를 짜서 그런지 더 부각되었다. 그리고 레이 역의 이정재는 <관상>의 수양대군과 <암살>의 엄석진이 저절로 떠올랐다. 캐릭터의 전사(백 스토리)가 너무 없어서 배우로서도 어떻게 표현할지 난감했을 것 같다.
이를 의식한 감독은 90년대 할리우드가 즐겨 쓰던 의외의 카드를 꺼낸다. 유이 역을 맡은 박정민이 그러하다. 임팩트를 고려해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2. 기름기를 쫙 뺀 하드보일드 누아르!
<추격자>, <황해>, <작전>, <내가 살인범이다>를 각색하고 <오피스>로 장편 감독 데뷔한 홍원찬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액션 누아르에 도전했다.영화 초반에 누아르로 나아가다가 중반 액션의 비중을 점차 높여가다가 종반부에 누아르 특유의 씁쓸한 풍미를 진하게 내뿜는다. 여기서 홍경표 촬영감독이 앵글과 색감이 단조로운 서사의 약점을 가려준다. 초반에는 회색이였다가 점점 검게 변하다가, 태국에서는 붉은 빛을 띄며 인물의 감정을 대신 전달한다.
그리고 90% 이상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한국 배경이 족쇄가 되었던 <우는 남자>의 전철을 밞지 않았다. 이건문 무술감독은 느린 촬영장면과 고속촬영한 장면을 섞는 스톱모션 기법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또 광각으로 가까이서 액션 합을 따라가며 타격감을 고스란히 보존하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앞으로의 한국 액션 영화들이 가야 할 길을 예언한다.두 남자가 벌이는 사투를 보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