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동북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중국 북방지역의 설화 '목란시(木蘭詩)'를 제작하기로 한다. 내용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에 나가는 남장 여인의 구국 영웅신화다. 금녀 지대인 병영에서 펼쳐지는 효녀 뮬란이 ‘여자’라는 정체가 탄로 날까 노심초사하는 데서 이 설화는 꽤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여성이 전장에서 승승장구 활약하며 나라를 구한다는 측면에서 가부장 제도가 반드시 ‘여성주의(페미니즘)’와 양립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는 ‘잔 다르크의 중국 버전‘으로 접근했다. 만약 주인공의 성(性)을 전환한다 해도 애니메이션은 전형적인 전쟁 영웅담이기 때문이다. 음악부터가 웅장하고 비장하지 않은가?
왜 전쟁 영웅담이라고 하냐면?<뮬란>은 디즈니답지 않게 진지하고 잔인하다. 악역 산유는 잔인무도하며 훈족이 지나간 전쟁터는 모조리 폐허가 되었다. 초반 훈족이 만리장성을 침입했을 떼죽음을 무릅쓰고 봉화를 밝히는 병졸이 등장하는 오프닝은 호러 영화 뺨칠 정도로 무섭다.
이런 보편타당한 영웅 서사가 주는 친숙함은 흥행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 클리셰를 여성 전쟁영웅을 내세우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모한다. 뮬란은 디즈니 프린세스 중에 가장 강인하고 진취적이며, 무공 실력 역시 남자 못지않다. 디즈니가 이렇게 자주적인 여성 주인공을 지금까지 생산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바람직한 여성주의를 선보인다.
대다수의 제작진은 단순 무식하게 여성 주인공을 부각하기 위해 주변 남성 캐릭터들을 희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뮬란>에 나오는 전우들은 모두 유능한 전사이고 다들 생동감이 살아있다. 상대역인 '리샹'은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지 않지만, 훈련 장면이나 아버지가 전사했음에도 대의를 택해 나라를 구하려는 충절을 부각하는 방법을 통해 뮬란과의 균형추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배려했다.
2. 뜯어보면 전형적인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언뜻 보기에는 수묵화와 채색화를 연상시키는 동양적인 화풍은 디즈니의 다른 애니메이션과 이 영화를 구별 짓는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무대로 했다고 해서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화법을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야기에 유머를 주는 감초 ‘무슈’가 등장하고, 뮬란의 아리아를 비롯한 뮤지컬 장면이 서사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원작 설화는 중국 남북조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디즈니는 당나라에 맞추었다면 '실제 뮬란과 가까운 시대'라고 설명했다. 화약은 송나라에 나왔으므로 디즈니는 고증에 별 신경을 안 썼다.
악역 산유는 흉노족의 군주 칭호인 선우에서 따왔다. 그는 훈족을 이끄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흉노가 훈족의 기원일 수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서양인에게 친숙한 훈족으로 나온다. 그런데 <뮬란 2>에서 북위로 나왔다면 선비족이 세운 나라다. 결국 <겨울 왕국>처럼 가상의 나라이므로 디즈니가 자유롭게 창작한 것 같다.
3. 실사영화와의 차이점
디즈니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뮬란의 본명인 ‘화목란(花木蘭)’으로 중국 개봉 제목을 정했다. 뻣뻣한 표정연기를 갖고 있지만, 무용에 능하고 무술 동작을 잘 구사하는 유역비를 캐스팅했다.
●애니메이션 남자 주인공 리샹은 미투 정서를 반영해서 텅 장군(견자단)과 천홍위(요손 안)로 나뉘었다.
견자단이 장군, 이연걸이 황제, 유연족을 이끄는 보리 칸(제이슨 스콧 리), 산유의 매인 '하야부사'에서 착안한 마녀 시아니앙에는 공리가 각각 캐스팅됐다. 9월 17일에 개봉 예정인 영화 <뮬란>의 후기는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