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크 (Mank, 2020), 창작의 위기에 관해

영화 맹크 리뷰

by TERU

<맹크>는 <시민 케인>의 각본가 허먼 J. 맹키위츠(별명 맹크)가 자신의 경력을 되돌아보는 전기영화다. 주인공 맹크가 바라본 할리우드 황금기와 미국 사회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숨 막히는 할리우드 시스템 아래 자신의 예술혼을 지키려고 발버둥 친 예술가를 추적한다. 그러므로 당대의 맥락이나 실존인물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다. 카메라는 일관되게 30년대 미국(혹은 할리우드)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되묻는다.


1.3-4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

당시 시대적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겠다. 방송국이 배우를 기획사에서 ‘공수’ 해 오는 시스템이 일반화되기 전에 지상파에서 직접 공채 탤런트를 뽑아 이들을 주로 드라마에 기용했었다. 이 방식은 할리우드 스타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배우, 작가, 감독들은 영화사에 소속되어 있어 타사 작품에 출연할 수 없다. 또한 당시 5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처럼 극장과 투자·배급하는 ‘수직계열화’로 영화시장을 장악했다. 3-40년대 영화인들은 자신 마음대로 영화를 찍기란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배급 시스템이 영화사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흥행 역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시민 케인>의 주인공 찰스 케인이 당대 언론계의 큰손이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허스트 그룹 쪽에서는 총수의 사생활을 다룬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도록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영화사와 극장에 협박을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개봉에 성공하지만, 언론에서 쏟아지는 악평에 흥행에서 부진했다.


<맹크>가 추억하는 3-4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는 지금과 매우 유사하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에 수직계열화로 인해 경직된 제작환경이라면, 지금은 코로나 사태에 IP(지적재산권)을 이용한 속편 제작에 매몰되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 블록버스터가 씨가 말라버린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올해도 정상적이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을 제외하면 슈퍼히어로 속편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핀처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 작품은 ‘창작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해 영화는 여름 텐트폴 영화 아니면 겨울 시상식 영화로만 나뉘고 있다면서 할리우드에서의 영화 개봉이 두 시즌 중 하나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버려진다는 사실이 한탄스럽다고 전했다.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예술장르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트리밍 시대가 도래하면서 작가들이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한 작가들이 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데이비드 핀처 본인부터가 넷플릭스와 4년 계약을 체결했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 역시 HBO MAX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2. <시민 케인>은 왜 위대한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시민 케인>의 프리퀄’이라는 사실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3-40년대를 완벽히 복원한다. 에릭 메서슈미트 촬영감독은 3-40년대 분위기로 우리를 몰입시키겠다는 다짐한다. 비록 35mm 필름이나 클래식한 화면비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컬러 그레이딩을 통해 당시 질감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음악감독 트렌트 레즈너나 애티커스 로스는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것과도 다른 3-40년대 웅장한 오케스트라 스코어로 가득 채운다. 게리 올드만과 아만다 사이프리드 역시 당시의 과장된 연기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민 케인>이 탄생하기까지 그 장막의 뒤를 살핀다. 영화 제작과정을 돌아보며 자연스레 할리우드 시스템, 대공황 이후의 정치상황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게 한다. 이 부분은 3장에서 다루도록 하고 일단 <시민 케인>에 집중하겠다.


여러 영화 개론서에서 흔히 언급되는 〈시민 케인〉의 위대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술적인 면에서 ‘딥 포커스’ 촬영이다. 딥포커스는 카메라에서 가까운 지점부터 먼 곳까지 모두 초점이 맞도록 하는 촬영 테크닉을 일컫는다. 이때 화면은 근경과 중경, 원경을 채우는 각각의 정보들로 가득 찬 다층적인 공간이 되고, 관객은 이들 모두, 혹은 그중 원하는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대표적으로 어린 케인과 케인의 부모, 후견인 대처가 한 화면에 담기는 고향집 장면일 것이다.


둘째, 〈시민 케인〉은 플래시백, 플롯 중첩과 미스터리적 전개를 도입해서 단조로운 편집에서 영화를 해방시켰다. 예를 간단히 들면, 찰스 케인이 사망하자 뉴스에서 그의 부고를 보도한다. 그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다룬다. 그러고 나서 5명의 화자들이 각자의 인물평을 밝힌다. 주인공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가 차례대로 진술된다. 이런 다층적인 접근이 캐릭터와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다시 <맹크>로 돌아와서 시나리오 집필과정을 수시로 오가는 플래시백으로 통해 30년대와 40년대를 비교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 케인>을 알면 알수록 숨은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품은 경험의 산물이다. 맹크는 자신의 삶을 <시민 케인>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의 플롯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출처를 상세히 밝힌다.

3. 타협과 소신의 갈림길에서

이 영화는 <시민 케인>의 각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대의 풍경에 시선을 맞춘다. 영화에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1934년에 열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다. 당시 TV도 없던 시절에 영화는 유일한 영상매체였다. 우리나라 독재시절에 영화는 뉴스의 역할을 대신했었지 않은가? 당연히 정치가 입장에서 선거에 유리하도록 홍보용으로 활용하고 싶다. 스튜디오나 언론도 권력의 비호를 얻을 수 있음으로 이 거래가 남는 장사다. 이 카르텔의 희생양은 당연하게도 창작자다. 주인공 맹크 역시 스튜디오와 대립한다. 영화인들은 권력에 영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제작을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시민 케인> 역시 타협과 소신의 실랑이 끝에 겨우 완성되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핀처는 감정이 끼어들 틈을 차단한다. 천재 감독 오손 웰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작자에게 수여되는 어빙 G 솔버그 기념상의 모델이 되는 MGM대표 어빙 솔버그나 황색언론을 대표하는 신문왕 윌리엄 허스트는 주인공과 직접적으로 대립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카데미 감독상 2회수상자인 그의 동생 ‘조셉 L. 맹키위츠’도 <이브의 모든 것, 1960>를 통해 헐리우드 시스템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맹크>는 한마디로 예술가가 물러서지 않아야 할 지점이 어디인가를 고민한다. 이를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대외적으로 언론재벌 허스트의 정부로 알려져 있던 여배우 마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을 흥미롭게 재해석한다. 그녀는 좋은 역할을 맡고 싶으나 할리우드는 녹록치 않다. 주인공은 낙심한 그녀를 격려해주는 대목은 감독 자신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극장산업에 큰 타격이 온 지금 과연 창작자들은 어떻게 작가정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감독은 그런 고민을 돌아가신 아버지 故 잭 핀처의 시나리오 <맹크>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2003년부터 꾸준히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가득하다는 이유로 제작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덧붙여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 외에 대공황 이후의 정치상황에 집중한 연유도 간단하다. 당시 나치 독일과 일제 등 파시즘의 득세,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의 등장, 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등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크를 비롯한 당시의 예술가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마차>, <오즈의 마법사>, <위대한 독재자> 같은 걸작을 줄줄이 양산했다.


2020년은 어떤가? 코로나 사태도 심각하지만, 그 하부구조에는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다. 즉, 신자유주의가 남긴 세계화가 극심한 양극화와 실업을 낳았다. 이 불만이 트럼프가 역대 최다 득표수를 획득한 원인이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내세웠다. 이런 혼란함에서 영화예술은 어디로 가야할지 핀처는 시네필에게 자신의 고민을 고백한다. 그것이 <맹크>이다.

★★★★ (4.2/5.0)


Good : 과거에 빗대 할리우드의 오늘을 반성하다.

Caution : 오손 웰스, 허스트, 맹키위츠 형제를 모른다면!


●데이빗 핀처는 누구도 영화 <맹크 (MANK·2020)>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면서 헐리우드는 소위 맥도날드식의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팔기 위한 해피밀 세트(Happy Meal)같다며, 성수기를 노리는 ‘텐트폴 무비(tentpole movie)’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시민 케인> 제작 당시, 지독히도 미숙했던 오손 웰즈의 옆엔 촬영 천재 그렉 톨랜드가 있었다고 말하며, '오슨 웰즈는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미숙했을 것'이라고 전한다. 거기에 더해 '나이 스물 다섯은 자신이 뭔가를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을 때'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그러는 한편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이 웰즈에게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그에게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촬영 당시 한 씬 촬영을 100번 이상 가져서 게리 올드만이 '데이비드, 난 이 장면을 XX 100번째 찍고 있다구요.(David, I’ve done this scene a hundred fucking times.)'라며 화냈다고 한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비슷하게 200번 정도 촬영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랑의 블랙홀 같았다고 말할 정도다.


●도대체 영화랑 정치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대공황이후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했었다. 주인공 맹크와 할리우드 영화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매카시즘이 몰아칠 때 많은 영화인들이 헐리우드를 떠났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 현재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정치경제적 사상 혹은 대안이 무엇인지 석학들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