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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l 11. 2021

《랑종(ร่างทรง,2021)》일광의 프리퀄

노 스포일러 해석

《랑종(ร่างทรง)》은 태국어로 '영매', '무당'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이 원안과 제작을 맡고, 태국 호러를 세계에 알린 《셔터》와 태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공포 코미디 영화 《피막》을 연출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일찌감치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나홍진 감독은 “랑종에 비하면 곡성은 코미디”라고 발언해 큰 화제가 됐다. 



1. 애니미즘 성격의 범신론

태국의 한 방송사에서 자국에서 유명세를 떨친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을 취재한다. 대를 이어 바얀신을 모시고 있다는 님은 동식물, 자연현상, 논과 밭, 잡동사니 등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암을 제외하고 원인 모를 병은 모두 고칠 수 있다"라고 자신하는 그녀를 마치 신처럼 받드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의 전반부는 ’님‘으로 대변되는 무당 집안의 숙명과 샤머니즘의 기본적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다룬다태국은 애미니즘적인 자연 숭배 사상뿐 아니라 국왕이 죽고 난 후에 신으로 모실 만큼 범신론적 사회다. 이는 돌아가신 황제를 수호신으로 모셨던 고대 로마의 다신교 사회와 매우 흡사하다. 나홍진 감독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상상으로 창조해낸 바얀 신은 이런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다. 


반종 감독은 촬영에 앞서서 태국의 샤머니즘이 남아있는 이산 지역을 2년여 가량 취재하고, 30여 명이 넘는 무당을 직접 만나는 것은 물론, 태국의 무속신앙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생생한 이야기를 구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2. 무당과 신내림에 대한 페이크 다큐로 시작해서 오컬트로 마무리한다.

영화 《랑종》을 보면 기시감이 떠오른다. 영화는 세 작품의 구조와 기법을 가져왔다. 첫째, 구조는 불멸의 고전《엑소시스트》에서 가져왔다. 느리지만 차곡차곡 서스펜스를 쌓아가다가 미스터리의 본질을 감춰두었다가 영화 중반 무렵부터 조금씩 터트리는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랑종》은 음산하고, 찜찜하고 찐득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둘째, 블레어 위치》의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택함으로써 한계가 분명 해지는 동시에 장점도 극대화된다. 다큐멘터리 특성상 손에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이뤄졌기에 생동감과 현장감을 십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수위가 높은 장면들이 적외선 야간 촬영 방식으로 필터링을 거치기 때문에 예상보다 거부감이 덜하다. 그런데 핸드헬드 기법이 잦아, 흔들리는 화면 탓에 보고 있으면 어지럽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영상을 계속 찍고 있는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빠져있다. 또 아쉽게도 몇몇 장면에서 조악한 완성도가 더러 노출된다. 

    

셋째, 주제 면에서는 악마 파이몬을 숭배하는 가족의 집착이 훗날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룬 《유전》과 닮았다. 《랑종》도 무당 집안에 태어나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님’의 집안사람들을 다룬다. 바얀 신을 믿지 않아 랑종이 되기를 거부한 언니 '노이', '노이'의 딸 '밍(나릴야 군몽콘켓)', '님'과 '노이'의 큰오빠 '마닛' 중에 누구에게 신내림이 내려올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우연성에서 불길한 기운을 모으고 모아 빙의 증상과 퇴마의식이 펼쳐지는 후반부 1시간에 온갖 금기를 깨며 우리의 도덕률을 파괴한다. 이 부분을 3장에서 고찰해보자! 




3.《곡성》의 프리퀄이자 일광의 기원담!

막상 관람하면 《랑종》과 《곡성》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랑종》의 주인공과 《곡성》의 일광(황정민)의 과거로 결부 지어서 관람하면 굉장히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본래 나홍진은 《곡성》의 후속작이자 프리퀄로서 곡성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무속인 일광의 전사(前事)를 찍을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원래 한국에서 만들려고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국가 다른 문화권 캐릭터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반종 피산다나쿤을 만나게 되었다. 원안을 전달하자 반종은 한국의 샤머니즘과 태국의 샤머니즘 간 공통점에 놀라면서도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공포영화를 제작해보겠단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영화로 돌아와서 후반 1시간 동안 신을 믿지 않은 것에, 자연의 섭리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운명을 거스리는 것에,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일벌백계하는 염세적인 세계관이 지배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랑종》은 나홍진의 원안에서 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의 원죄론이 영화를 지배한다. 《랑종》은 《곡성》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신은 악으로부터 인간을 구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신학에서 '신정론'이라는 이 모순을 나홍진은 수시로 출몰하는 ‘악(惡)’과 이를 방관하는 ‘선(善)’으로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두 작품의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그래서 《곡성》에서 출발한 한국형 오컬트들 <사바하>나 <제8일의 밤>이 겉으로 무속신앙과 불교를 내세우지만, 본질은 개신교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를 선악개념으로 이분화하려는 시도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2.9/5.0)     

 

Good : 무서워 X 찝찝해 X 끔찍해

Caution : 수명을 다한 파운드푸티지 장르


금기를 다루는 수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나홍진 프로듀서는 "제가 진짜 제가 저만 살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저는 진짜 감독님께 수위를 좀 낮춰보자고 제안했다. 아마 제가 계속 낮추자고 했으면 아마 상영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감독님한테 제가 좀 낮추자고 말하고 나면, 감독님 나중에 또 이야기하시고 또 하시고 계속 그랬다. 그래도 이게 처음보다 표현수가 잠잠해진 거다. 제가 설득해서 이 정도 나온 거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이렇게 청소년 관람불가를 당당히 얻을 수 있게 된 거다"라고 말해 모두를 웃겼다.     


이에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수위에 관련해서는 나 감독님과 저와 많은 언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의 생각은 절대로 이런 잔혹함이나 선정적인 장면을 팔아서 영화를 흥행하겠다는 게 아니다. 영화에 필요 없는 선정적인 장면은 절대 넣지 않았고 수위 또한 영화에 맞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기하게도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였고, 나홍진 감독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 하였다. 그리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랑종》이 '곡성'에서 영감을 받았냐고 한다면 맞다고 답하겠지만 일부러 화면을 《곡성》처럼 꾸민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나홍진 감독 역시 《랑종》이 《곡성》과 흡사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자신과 반종 감독이 거리를 둬야 하는 작품은 '곡성'이었다고 언급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밍 역할의 배우를 뽑는 데 있어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운을 뗀 후 “나홍진 프로듀서와 논의를 할 때도 ‘절대 유명한 배우는 안 된다, 실제와 최대한 가까운 배우여야 한다’고 의견을 맞췄기 때문에 많은 오디션을 거쳤다”며 “수많은 오디션을 거치면서 나릴야 군몽콘켓 배우가 딱 도드라졌고 딱 이 배우밖에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또 그는 “이 배우여야 했고 나이가 어리지만 실력 있는, 미래가 창창한 배우라 생각했다”며 “저희는 가이드라인만 갖고 촬영을 했고 대사나 이런 건 배우들이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했다. 후반부에 배우가 10kg가량 몸무게를 뺐다. 힘들게 촬영을 했는데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건강하고 예쁘게 잘 지내고 있다”라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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