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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Aug 24. 2021

팜 스프링스, 되찾은 생의 의지

Palm Springs (2020)

《팜 스프링스》는 타임 루프에 갇힌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친구의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 리조트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파티장 구석에서 ‘아쿠파라(Akupara)’를 마시는 ‘나일스(앤디 샌버그)’는 100만 째 반복되는 결혼식에 지쳐있다. 그 못지않게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에게 작업을 건다. 그녀와의 데이트를 즐기는 와중에 나일스는 정체불명의 남자 ‘로이(J. K. 시먼스)’로부터 화살을 받고, 어디론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세라 역시 충격적인 아침을 받게 된다.



1.권태기를 이기려는 커플의 자세

앤디 시아라의 시나리오는 과감하다. 대놓고 타임루프 로맨스의 컨벤션을 어긴다. 보통 주인공 한명만 타임루프를 인식하게 되는데, 《팜 스프링스》는 두 주인공, 즉 세라가 나일스의 타임루프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팜 스프링스>의 철학적 기반은 ‘끝없이 반복한다’는 의미를 지닌 윤회사상이다. 영화는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듯 똑같은 하루가 멈추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이러한 타임루프의 흐름을 일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몇 겁 또는 몇 억 겁 세월에 걸쳐 계속된다. 영화는 이런 윤회로 인한 번뇌와 업을 끊어가는 해탈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이 불교철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을 끌어오고 다중우주(멀티버스)을 모형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 일련의 타임루프 로맨스는 대략 주인공은 기억이 영속되는 반면에 상대방은 매일 기억이 리셋된다. 두 사람의 행복한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애틋함이 이 장르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팜 스프링스》에는 커플이 타임루프를 인지하고 있으며, 둘 다 기억을 이어간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면서 보통의 로맨스영화답지 않게 ‘장기연애’에 초점을 둔다. 세라와 나일스가 타임루프를 벗어나려는 시도들은 마치 ‘타임루프’라는 권태기를 이기는 커플의 자세처럼 들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 갇힌 그들은 체념과 부정의 단계를 뛰어넘어 유일한 동지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특히 세라가 타임루프를 인식하며 겪는 혼돈과 거부, 그리고 탈출은 그런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2. 삶의 의미를 유쾌하게 되찾아주다.

맥스 바바코우 감독은 로맨스에 집중하지 않는다. 정작 감독이 주목한 것은 세상을 비관하고, 무한한 하루를 그저 ‘낭비했던’ 두 사람의 태도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여러 일탈을 해보고 삶과 주변인을 다시 고찰하도록 만든다. 당연히 이런 고민들을 통해 두 주인공이 무기력함을 이겨내고 생의 의지를 회복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미스터리’다. 영화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서로에게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하나둘 공개한다. 마치 아내에게 몰래 숨겨놨던 비상금을 털리는 기분이랄까 암튼 그런 변칙적인 리듬감이 흥미롭다. 이러한 시련과 고통이 쌓이고쌓여서 두 사람에게 이 타임루프에서 탈출해야겠다는 동기로 작용한 덕택에 두 장르가 이물감 없이 맞물려있다.


문제는 코미디가 국내관객에게 먹힐 공산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즉, 미국식 화장실 코미디로 저급하게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SNL출신 앤디 샌버그와 시트콤 출연경력이 있는 크리스틴 밀리오티의 개인기에 많이 의지한다. 또, 주인공들이 찌질한 캐릭터라 비호감을 살 수 있다.



★★★☆ (3.4/5.0)


Good : 강력한 퍼포먼스, 확실한 방향, 상큼한 독창성

Caution : 국내정서와 거리가 먼 화장실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로는 흔치않은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메타크리딕 점수 83%를 기록했다.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코미디 상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는 각본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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