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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an 02. 2022

그린 나이트*인생의 기회비용

《The Green Knight, 2021》스포일러 해석

제 후기가 항상 30% 정도만 적는데 이번 영화는 늦은 김에 70%까지만 담았어요. 조금 길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1. 자연과 인간의 대립일까?

크리스마스 게임

오프닝에서 동물이 사는 농장과 인간이 사는 집이 나온다. 불이 거세지자 농장 문이 열리고, 동물들이 프레임에서 벗어난다. 동물로 상징되는 자연과 인간이 사는 공간이 ‘불’로 인해 섞이는 과정은 인류가 자연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카메라는 잠자는 ‘가웨인(데브 파텔)‘이 ‘물’벼락을 맞고 일어난다. 영화는 자연과 인간을 대조시키며 진행된다. 가웨인이 ‘녹기사(랄프 이네슨)’의 목을 잘랐음에도 녹기사는 죽지 않는다. 나무는 가지가 치기 해도 여전히 나무로써 생을 이어가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 녹기사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불멸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에 인간인 가웨인은 1년 뒤에 참수당할 운명에 놓인다. 영원히 존재하는 자연과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가 《그린 나이트》의 주된 테마 중 하나다.


나무 외양의 녹기사가 ‘자연’을 표현한다면 가웨인이 그의 목을 벤 것은 인간의 산림파괴를 은유한 것만 같다. 자연과 인간의 참수 교환은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아더왕으로부터 엑스칼리버를 건네받다

그런데 녹기사가 처음 등장하던 장면에서 그는 서신을 건넸을 뿐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가웨인이 용감하게 나섰을 때도 말없이 도끼를 내려놓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목을 베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가웨인에 의해 참수당하고 나서야 녹기사는 비로소 입을 연다. 몸통이 바닥에 나뒹굴던 자신의 머리를 건져 올리자 눈을 뜨며 가웨인에게 약속을 주지 시키고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왜 녹기사는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입을 연 것일까? 단순히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당한 피해자의 심정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 사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하층민의 울분은 아닐까? ‘말하는 머리’라는 의미는 영화가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확언한다. 5장에서 또 다루도록 하고 영화를 분석해보자!



2. 모건 르 페이는 왜 원작과 달라졌을까?

녹기사를 소환하는 모건 르 페이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가웨인의 어머니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다. 아서왕 전설에서 모건 르 페이와 가웨인의 관계는 모자 혹은 이모 조카 관계이거나 생판 남이기도 한 다르게 전승되어왔다. 엔딩 크레디트에 ‘어머니’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아서 왕 (숀 해리스)’의 누이이자 가웨인의 어머니 겸 마녀로 녹기사를 궁정으로 불러냈다. 그 바람에 도리어 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어머니로써 아들에 진심인 것으로 묘사되기에 이율배반적이라 다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새옹지마로 우연히 가웨인이 휘말린 것인지, 혹은 망나니 아들이 철이 들기 원하는 어미의 마음인지 확언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가웨인의 여정에는 그녀가 여러 번 개입한다는 것을 암시되어 있다. 각색을 통해 녹색 허리띠를 처음 건네준 인물도 어머니로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의미심장하다. 그럼 주인공 가웨인은 어떤 인물일까? 






3. 모친의 도움으로 얻게 되는 무용담과 왕위 계승권

가웨인과 에델

주인공 가웨인은 왕의 조카이지만, 기사로서 내세울 무용담이 없다. 그렇다고 ‘고결한 레이디를 지키는 기사’ 다운 기사도를 보인 적도 없다. 애인인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과 사귀지만, 결혼까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중세에 기사 계급과 평민과의 왕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있긴 하다.


훗날 아들을 출산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키울 수 없게 된다.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는 어떻게 귀결될까?

가웨인이 어머니인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에게 처음 불려 갈 때 그는 놀다가 신발을 잃어버릴 정도이다. 신발이 없다는 뜻은 집 밖을 나갈 이유가 없고, 그는 아직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묘사한다. 이런 망나니 같은 행태에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그녀의 자매들과 함께 녹기사를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이때 교차편집으로 연회와 주술 장면을 번갈아 보여준다. 가웨인은 명예롭게 녹기사의 게임을 벌이게 되고, 1년 뒤 녹색 예배당에서 참수당하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로써 가웨인에게 드디어 영웅담이 생겼다, 인형극이 만들어졌고 초상화도 갖게 된다.


그런데 가웨인은 준비는커녕 1년 동안 빈둥빈둥 논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아서왕과 왕비는 주교가 축복을 내린 방패를, 에델은 사랑의 증표를, 모건 르 페이는 아들에게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녹색 허리띠’를 건네준다. 가웨인은 채비가 끝나자 여정을 떠난다.



4. 여정의 시작

영화는 ‘작은 친절, 성(聖) 위니프레드와의 만남, 막간, 획득물 교환, 녹색 예배당에서의 참수, 집으로의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작은 친절’에서 가웨인은 길을 알려준 아이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넨다. 잠시 후 숲 속에서 가웨인은 세 아이로 구성된 도적 떼에 포박당하고, 방패와 도끼, 허리띠, 말 들을 강탈당했다. 그가 베풀었던 대가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가웨인이 호수로 뛰어든 장면에서 붉은 색상이 인상적이다.

빈털터리가 된 가웨인은 빈 집의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유령의 ‘성(聖) 위니프레드’와 만난다. 그녀는 호수에 빠져있는 자신이 머리를 찾아 달라 부탁한다. 가웨인은 머리를 찾아주면 무엇을 줄 것이냐? 고 묻자 유령은 정색하며 ‘그런 걸 왜 묻느냐’고 따진다. 가웨인은 이미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웨인은 호수 밑바닥에서 그녀의 머리를 찾아 원래의 자리에 놓아두자 도적떼에 빼앗겼던 도끼가 그의 앞에 높여있다.


여우가 거인을 쫓아내자 화면이 180도 회전한다.

‘막간‘에 이르면 가웨인에게 동행이 생긴다. 여우가 그의 곁을 지킨다. 둘은 함께 걸으면서 거인들을 만나게 되고, 가웨인이 ’어깨에 태워달라‘고 하다가 거인이 손을 뻗어오자 여우가 울부짖어 거인을 멀리 쫓아낸다. 이때 카메라가 가웨인과 여우의 뒷모습을 따라가다가 이들을 앞지르더니 상하로 180도 회전해 뒤집힌 광경을 보여준다. 이 시퀀스가 마무리될 즈음 번쩍이는 섬광이 인다. 마치 플래시를 터뜨려 허공에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느껴진다.


360도 패닝 숏으로 시체가 된 가웨인을 보여준다.

자, 여기서 영화의 미학적 특성이 드러난다. 영화에서 가웨인의 머리는 여러 번 잘린다. 이것은 예지몽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가웨인의 초상화는 두 번 나온다. 첫 번째 초상화는 녹기사를 만나러 여정을 떠나기 직전에 그렸다.

두 번째 초상화는 성주의 부인이 그에게 직접 그려주겠다고 대사가 나올 때다. 이때의 초상화는 상하가 반전된 거꾸로 맺힌 상으로 등장한다. 마치 카메라의 옵스큐라 원리를 보여준다. 조금 설명하자면, 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나 방 한편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바깥에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이다.


삶의 특정한 순간을 그린 초상화

카멜롯이 멸망하고 그가 죽기 직전에도 초상화가 또 등장한다. 과연 이런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으로서의 영화(애니메이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하려고 애쓴다. 그래픽으로서의 영화는 다음과 같은 의도를 지닌다. 가웨인의 여정은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과 같고, 이것은 '기회비용'을 산출하는 것과 같다. 기회비용이란 우리가 최선책을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대안들 중 가장 큰 것의 가치를 말한다.


로워리 감독은 전작 <피터와 드래곤 (2016)>에서도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했었다. 이런 회화적 특성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므로 여정의 첫 번째 챕터인 <여정의 시작>은 영화 전체를 읽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5.거래의 두 가지 측면

막간

가웨인의 여정은 ‘주고받기’가 핵심임이 드러난다. 정당한 거래의 대가를 치러지지 않으면 화를 입고, 이미 자신이 도움을 받은 상황에서 거래를 제안한 것은 무례한 짓이다. 그리고 거래를 제안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제시해야 거래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여우가 가웨인을 거인에게서 지킨 것은 가웨인이 여우를 동굴에 들어오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거래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첫째, 서로 등가인 것을 교환하거나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호혜성(reciprocity)’은 당연히 중세시대에도 통용 가능한 개념이다. 영어인 reciprocity를 많은 경우 서로 은혜를 베푼다는 뜻의 호혜(互惠)로 번역하지만,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reciprocity는 똑같이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reciprocus에서 온 말로, 그저 주고받기(give and take) 정도의 의미다.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가 호혜에서 대칭성을 강조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혜택(benefit)이든 손해(harm)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이다.


동전 한 닢에 앙심을 품은 스캐빈져

영화로 돌아와서 녹기사가 1년 뒤 똑같은 대가를 요구한 일, 가웨인이 길을 안내해준 도둑 ‘스캐빈저(배리 키오건)’에게 동전 한 닢만 던져주고 몽땅 털린 일, 가웨인이 정령 성 윈프레드의 부탁을 들어주며 대가를 요구한 일, 버틸락(조엘 에저튼)이 사냥감을 선물로 주고 가웨인이 성에서 획득한 것을 달라고 한 일까지 ‘Give And Take’로 진행된다.


가웨인이 대가를 요구하자 당황한 성 위니프레드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녹기사, 스캐빈저, 버틸락 같은 남자 캐릭터는 거래를 제안하고, 가웨인을 위해 무언가 해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가웨인조차도 ‘성 위니프레드(에린 켈리먼)’에게 그녀의 머리를 가져다주는 대가로 무얼 줄 것이냐고 먼저 묻는다.


그러나 가웨인이 활약한 것은 정령 ‘성 윈프레드(에린 켈리먼)’의 목을 찾아준 것 외에는 전무하다. 나머지는 전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여우로 지켜보거나 마법의 허리띠까지 만들어준다. 여자 친구 에셀도 '방울'을 사랑의 징표로 주고, 버틸락 부인도 책과 녹색 허리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무상으로 건네준다. ‘스캐빈저(배리 키오건)‘에게 말과 소지품을 도둑질당할 때도 주인공을 제압한 것은 2인조 여성 도둑이며, 버틸락 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여성 상위로 그녀 주도하에 진행된다. 게다가 영화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거인족 여성들이 나온다. 종국에는 모건 르 페이는 아들을 왕위 후계자로 만들려는 여우의 몸을 빌려 아들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가웨인은 끝끝내 녹기사를 찾아간다.


여성에게 항상 도움만 받는 가웨인

둘째, 여성 캐릭터들은 ‘상호적(mutuality)’이다. 상호의 상(相) 자는 '서로'를 의미하는 글자로 나무(木)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目) 모양에서 나온 한자다. 호(互)도 뜻은 '서로'이지만, 그 모양은 밧줄이나 고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양에서 따 왔다고 한다. 두 가지를 합치면 상호라는 말은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의 의미가 된다. 호혜는 그 관계에서 오가는 이로움을 의미한다. 상호적인 관계라고 해서 다 호혜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거인조차도 여성이다.

남성은 호혜적이고 여성은 상호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살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거래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즉, 남성이 이룩한 위대한 모험 (더 나아가 역사적 위업)에 여성들의 숨은 공헌이 있었음을 똑똑히 밝힌다. 로워리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부각하며 기사담이 '남성만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다.


이러한 거래의 법칙이 영화 전체를 읽는 열쇠임이 다음 장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6. 획득물 교환

가웨인은 어떤 성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성주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안대로 눈을 가린 노파를 만난다. ‘세상은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라고 투덜대는 성주는 가웨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은 밖에 나가서 잡아 온 것을 줄 테니 가웨인이 이 성안에서 얻은 것을 달라고 한다. 주인공이 여정을 떠나야 설화, 모험, 무용담, 기사도를 얻을 수 있지, 집에서 얻는 안락과 평안을 누리고 있으면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가웨인이 원하는 밖의 모험담을 얻으려면 네가 안에서 누렸던 평화를 바치라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적인 거래이다. 극 중 아서왕은 원탁의 기사들을 이끌고 외적을 격퇴한 전공을 세웠는데, 조카이자 후계자인 가웨인은 집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놀고먹으며 허송세월을 보냈음을 한탄한다.


약속대로 성주는 다음날부터 사냥해온 짐승들을 가웨인에게 건넨다. 동시에 성주가 사냥을 나갔던 틈을 타서 부인이 가웨인을 유혹한다. 즉 성주는 아서왕에 비유할 수 있고, 성주의 부인은 가웨인과 정분을 나누던 여자친구 ‘에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주 부인과 에델을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1인 2역'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안대로 눈을 가린 노파는 누구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렇듯 ’ 획득물 교환’이 이뤄지는 성안의 인물들은 가웨인의 주변 인물들 그대로이다. 정통성을 입증할 영웅담을 원하는 아서왕이 획득물 교환을 원하는 성주, 영웅이 아니라 그냥 좋은 사람으로 만족할 수 없겠냐고 묻던 에델은 가웨인을 유혹하는 성주의 부인, 쾌락에 빠진 가웨인을 조용히 지켜보는 안대의 노파는 그의 어머니인 셈이다. 안대는 아들의 행동에 가타부타할 수 없는 어미의 심정인 동시에 후계를 인정받기 위해 위험한 여행을 보내야 하는 어미의 노심초사라 할 수 있다.


가웨인은 성을 떠나는 길에 성주를 만나 자신이 부인과 나눴던 정분을 돌려준다. 그러나 부인에게 얻었던 녹색 허리띠는 돌려주지 않는다. 성주가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 말처럼 성주의 부인이 도적떼에게 빼앗긴 녹색 허리띠를 갖고 있었다. 이 허리띠의 존재를 몰랐던 성주는 입을 맞추는 대가로 가웨인에게 ‘(그와 동행했던) 여우’를 돌려준다.


여우를 쫓아내는 가웨인

녹색 예배당을 향하려는 찰나에 여우는 가웨인을 막아서며, ‘녹기사와의 약속은 자비도 없고, 행복한 미래도 없으니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읍소한다. 가웨인은 잠시 고민하더니만 이내 도끼를 휘둘러 여우를 쫓아낸다. 이로써 여우의 정체는 이 대사와 행적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7.‘생사(生死)’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색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장면

전통적으로 욕망은 철학(신학 포함)에서 중요하지 다뤄지지 않는다.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했다. 첫 번째 말은 ‘욕망’이고 두 번째 말은 ‘의지’이다. 마부가 마차 위에서 고삐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을 ‘이성’으로 봤다. ‘올바름(正道)’을 지향하는 이성이 의지를 부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야 말로 이상적 영혼의 표상이다. ‘이성주의’의 확립으로 욕망은 언제나 열위에 해당했다. 신플라톤주의에 기초로 하여 기독교와 신약성경을 정립한 사도 바울로 역시 이 같은 입장을 취했다.


스피노자는 영혼에 관한 플라톤의 비유를 다음과 같이 재해석했다. 우리의 영혼은 이성과 감정과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혼의 본질은 이성이 아닌 욕망이라고 단언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욕망이 늘 영혼의 중심에 있고, 이성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영혼의 브레인이며, 감정은 욕망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를 나타내는 눈금일 뿐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욕망중에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며, 이런 ‘자기 보존의 욕망’을 ‘코나투스’라고 명명했다. 이 ‘코나투스’는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까? 가웨인은 녹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는 동안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는 녹색 허리띠를 푸는 식으로 그려진다.


붉은색은 욕망의 색이다.

그렇다면 녹색은 어떤 의미인가? 버틸락 부인이 “초록은 생명의 색이지만 동시에 부패의 색이다, 죽으면 풀이 발자국을 덮듯 붉은 태양이 녹색 풀들을 퍼뜨리듯 녹색은 빨간 열정이 죽고 나서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이렇듯 녹색은 ‘생(生)’과 ‘사(死)’의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녹색 허리띠의 안감은 붉은색이다. 두 가지 색깔은 어머니의 양가적 감정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예배당에서 녹기사와 가웨인은 어떻게 될까?


8. 집으로의 여정

원작에서는 가웨인이 깨달음을 얻고, (실은 성주 버틸락 경이었던) 녹기사가 가웨인을 놓아준다. 가웨인이 녹색 허리띠를 계속 차고 집으로 돌아가서 훌륭한 기사로 거듭난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 <가웨인 경과 녹기사>의 테마를 아래와 같이 전복시킨다.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에서 잠든 녹기사를 기다린다. 녹기사가 잠에서 깨어나 가웨인의 목을 노리자 가웨인은 “잠깐! 미안하다"외치며 줄행랑을 친다.


그는 어머니와 에델의 환대를 받고 훗날 왕위에 오른다. 에델을 버리고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며 딸을 얻는다. 에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은 전사해버리는 비극을 겪는다. 종국에는 패전으로 말미암아 성이 함락되고 왕비와 공주, 어머니마저 떠나고 홀로 남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녹색 허리띠가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저 살고 싶어서 성주에게 녹색 허리띠를 숨겼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의 징표를 받고 자신의 아들마저 출산한 옛 연인을 배반했다는 것을, 또 녹기사의 목을 쳐서 영웅이 된 주제에 그 거래를 그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있지만 덧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생명의 녹색이 아닌 부패의 녹색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웨인은 허리춤의 녹색 허리띠를 풀고 적군에 의해 참수당한다.


이러한 ‘집으로의 여정’은 참수 직전 가웨인이 본 예언이었다. 가웨인은 자신의 녹색 허리띠를 벗어던진다. 이를 본 녹기사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뒤 "off with your head"라며 내뱉는다. 굉장히 중의적인 마지막 대사는 “네 머리를 가지고 떠나라" 또는 "이제 머리부터 치겠다"라는, 서로 반대되는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9.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면?

왕위 계승자로서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가웨인의 여정

애초에 이 약속(거래)은 가웨인을 왕좌에 어울리는 인물로 성장시키기 위한 가웨인 어머니와 아서왕의 연극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마녀들과 함께 녹기사를 소환했고 아서왕은 가웨인에게 친히 엑스칼리버를 빌려줬다. ‘한낱 게임이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둘은 가웨인이 이 사건으로 영웅담을 얻고 스스로 성장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웨인은 녹기사를 참수한 이후로도 1년간 방탕한 생활을 이어나갔고, 아서왕과 어머니는 진정한 기사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여정을 함께 꾸몄을 가능성이 높다. 아서왕의 현신인 성주와의 대화에서 ‘그냥 가서 참수만 당하면 영웅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글쎄' 라며 녹기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 머물 것이 아니라 여정을 통해 후계자로서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것임을 은근히 내비친다.

가웨인이 성에 도착하여 기절한 다음날, 두 개의 손이 가웨인의 빰을 어루만져주는데 하나는 어머니의 손, 또 다른 손길은 성주의 손이었다. 외삼촌과 어머니가 함께 가웨인을 후계자로 양성했다는 암시이다.


영화에서 가웨인의 얼굴을 닦아주는 아서왕의 장면과 녹기사가 가웨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을 통해 무언가를 말한다. 원작에서 녹기사의 정체는 성주였던 반면에 영화에서는 아서왕이 성주이자 녹색의 기사라고 말이다.


또, 왕의 누나이자 가웨인의 어머니인 르 페이 역시 녹기사를 소환하고 아서왕과 함께 모험을 계획하고 여우가 되어 따라다니고, 노파가 되어 지켜본다. 이들은 가웨인이 여정 중에 맺는 거래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녹색 허리띠를 버림으로써 모든 거래를 종료하길 바랐다. 녹기사도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가웨인은 무사히 집으로 귀환할 것이다.


10. 영혼 삼분설과 카르마(윤회)

만약 녹기사가 가웨인의 목을 쳤다면, 이 여정은 ‘희로애락’에 대한 거대한 우화다. 녹기사가 제안한 서로의 목을 치자는 거래는 영웅적인 삶을 완성하는 피날레이다.


여행을 떠날 때부터 노란 망토를 차고 있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이성, 감정, 욕구로 나눴다. 감독 역시 영혼 삼분설을 따랐다. 욕망의 붉은색은 살아있음을, 소멸의 녹색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노란색은 인간이 살아오면서 느끼는 감정의 색이다. 여기서는 가웨인이 느끼는 근심, 스트레스, 불안으로 표출된다. 이를 힌두교적으로는 번뇌와 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추측한 연유는 '첫 장면'과 '쿠키영상' 이 서로 조응하기 때문이다.


[첫 장면] 가웨인이 아더왕의 뒤를 이어 왕관을 쓴다.
[쿠키 영상] 왕위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연속성'을 뜻한다.


윤회란 중생이 번뇌와 업 때문에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멈추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뜻한다. 즉 나 자신이 사망한 뒤 영혼이 되었다가 새로운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나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친 뒤 다시 영혼이 되어 또 태어나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의 흐름은 일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몇 겁, 또는 몇억 겁 세월에 걸쳐 계속된다. 녹기사가 그를 살려주었는지 죽였는지 알 수 없지만, 가웨인이 녹색 허리띠를 푼 것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끊은 것이다. 이것이 영화는 여러 번 가웨인이 목이 잘리는 환상을 보여준 까닭이다.


180도 패닝샷, 360도 리버스 샷, 옵스큐라 카메라 등으로 가웨인의 삶의 대안들을 보여준다. 당연하게 그가 어떤 삶을 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목을 내어줌으로써 이 순환의 고리를 푼다는 것은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경지로 이르는 것과 매우 닮아있다. 해탈이 '속박을 끊어낸다'는 의미이므로 영화는 '코나투스(녹색 허리띠)'를 버리는 행위로 묘사된다.


코나투스를 버리다.

영화에서 녹색 허리띠를 푸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적군에게 함락되어 목이 잘리거나 녹기사에게 목을 내미는 두 경우의 차이는 ‘의지’에 있다. 자의에 의해 죽음을 택하느냐 타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느냐 일뿐이다. 가웨인은 평생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최후에 적극적인 자기 의견을 피력한 셈이다. 그래서 <그린 나이트>는 성장드라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이성의 인도에 따라 행동하는 적극적인 자주성이라 정의 내렸고, 가웨인의 결단은 스피노자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를 뒤집어보자! 가웨인이 잘못된 선택을 하여 그가 보았던 <집으로의 여정>처럼 쇠퇴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렇듯 영화는 '선택' 즉 '기회비용'을 다뤘다. 끝으로 거래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자!


뒤편에 초상화가 보이시는가?

거래의 '호혜성'이 의미하는 바 역시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닮아있다. 생명이 윤회를 거듭하는 한 여태까지 쌓은 공덕과 업보가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공덕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면 어머니가 녹기사를 소환하는 장면은 태어났으면 죽음이 반드시 찾아오는 인간의 숙명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탄생이 종말이 소환한 셈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때로는 성공하여 이익을 얻고, 어떤 때는 실패해서 손해를 본다. 이러한 손익계산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타인에게 이익이 된) 공덕이 되었다가 (타인에게 손실을 안긴) 업보도 되었다가 하면서 나중에 정산되어 되돌아온다. 특히 삶과 죽음이라는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죽음'이 영원한 '집, 안식처'라는 무서운 명제를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 (5.0/5.0)


Good : 성장담인 동시에 쇠퇴담인 풍부한 이야기.

Caution : 중의적 표현이 많아 해석이 여러 갈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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