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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Feb 17. 2022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TOP 15

Akira Kurosawa Films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작을 하나 또는 둘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로사와는 적어도 여덟 개나 아홉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구로사와 아키라는 존 포드와 함께 현대 액션-어드벤처 장르가 정립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는 '좋은 영화란 재밌어야 되고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할리우드의 감독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어 그에게 깊이 감명받았음을 항상 언급했던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를 만들면서 구로사와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오마주를 캐릭터나 오프닝, 엔딩 등에서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외에도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의 전철 장면은 구로사와의 《천국과 지옥》의 기차 시퀀스를 참고했다고 하며,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에서 《거미집의 성》의 한 장면을 따라 했고,  레이더스에서는 인디아나 존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고 뒷모습만 보이는 장면을 《요짐보》에서, 《쉰들러 리스트》의 컬러 부분은 《천국과 지옥》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오마하 해변의 전투신은 《란》의 전투신에서 본떴음은 공공연한 이야기. 아울러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전투신 중에 활을 당기는 장면을 《7인의 사무라이》에서 활을 당기는 장면에서 따왔다고 하며,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에서도 여러 장면들이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인용되어 온 것들이다. 더욱이 최근으로 오면 조스 웨던이 어벤저스를 감독할 때 《7인의 사무라이》를 당연히 참고했다고 한다.


할리우드뿐 아니라 일본 언론으로부터 '일본 영화의 천황'이라는 별명을 붙었으며, 전세계의 후배감독들로부터는 ‘영화의 스승’이라 불리기도 했던 영화계의 진정한 거인이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자신의 작품인 <처녀의 샘>을 일컬어 "그의 영화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며 겸손을 표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의 영화 속 모든 프레임 하나하나가 뛰어난 회화 작품이나 다름없다."라고 극찬했으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구로사와가 전 세계의 영화감독들에게 미친 심원한 영향은 그 누구의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조지 루카스 감독은 "그는 자신의 영화에 항상 같은 질문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없을까?'"라는 거장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모든 것은 영화계 거장들마저 '스승'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바쳐진 헌사다.


그의 휴머니즘은 언제나 허무주의로 가득 차 있으면서 희망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않는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던 밤, 형인 구로사와 헤이고는 열네 살의 어린 동생을 데리고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을 이루는 참사의 현장을 직접 보게 했는데, 여기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조선인을 약탈자로 모는 일본의 광기를 직시함은 물론, 형으로부터 "무서운 것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니까 무서운 거야. 똑바로 보면 무서운 것 따위는 하나도 없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것이 구로사와 아키라가 평생 답을 찾기 위해 영화제작에 몰두했던 이유가 됐다.





#15 : 데루수 우잘라 (Dersu Uzala, 1975)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1970년대의 구로사와는 박스오피스에서 더 이상 승승장구하지 못했다. 20세기 폭스 영화사와의 불화로 할리우드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고 <도데스카덴>의 재정적 실패로 인한 자살미수로 구로사와의 경력이 끝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소련의 모스필름에서 투자의향을 비춘다.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체예프 대위의 전기영화의 감독을 맡게 되면서 그는 다시금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02년 시베리아의 측량을 맡은 군인 아르세니에프가 길안내를 맡긴 원주민 사냥꾼 데루수 우질라와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문명인 아르세니에프에게는 숲은 인간의 시선으로 측량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숲에서 평생 지낸 데루스 우질라를 통해 문명인이 잃어버린 대자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질라는 요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대초원의 얼음과 눈과 씨름하는 모습을 통해 쿠로사와가 장대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14 : 주정뱅이 천사 (Drunken Angel, 1948)

구로사와는 전설적인 배우 미후네 토시로와 시무라 타카시를 얻게 된다. 제작사 역시 그의 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주었다. 사나다 박사(시무라 타카시)는 패전 이후 방황하는 조국의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결핵으로 죽을 운명에 처한 청년 마츠나가(미후네 토시로)의 목숨을 구하는 데 집착한다. 이 갱스터 드라마 영화는, 전후 일본 사회의 방향에 대한 구로사와 자신의 우려를 담았다. 패전 이후 도쿄의 노동계급을 관찰한 디테일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한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접근 방식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사나다와 마츠나가 사이의 불협화음을 통해 영화는 인생의 고통에 대한 쉬운 해결책을 찾는 것을 경고한다. 구로사와는 두 사람이 각각 술과 복수에 집착하는 이유에 공감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삶의 복잡성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 스스로 깨우치도록 돕는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결말로 마무리된다. 특별한 영화에 어울리는 완벽한 대미를 장식한다. 




#13 : 붉은 수염 (赤ひげ, 1965)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산 조르지오 상, 국제 가톨릭 영화사무국상

<붉은 수염>은 구로사와 특유의 인문주의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야마모토 슈고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19세기 일본의 작은 마을에 사는 성가신 의사 붉은 수염 '니이데 쿄조(미후네 토시로)'가 새로운 수련의 '야스모토(카야마 유조)' 사이의 개인적, 직업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따른다. 


붉은 수염은 빈민가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며 야스모토가 원치 않게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영화는 에피소드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편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서민들을 도우면서 겪는 여러 도전들을 추적한다. 다른 한편으로 야스모토가 붉은 수염의 숭고한 대의에 동화되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영화는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구로사와의 치밀한 프레임과 시적인 리듬은 우리를 진심 어린 드라마에 몰입시킨다. 또 미후네 도시로는 진중한 연기로 몰입을 돕는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마지막 협업이 되었다.




#12 :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惡い奴ほどよく眠る, 1960)

<7인의 사무라이>와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의 연이은 성공으로 자신만의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구로사와 같은 완벽주의자에게 작품에 대한 완전한 창작권을 확보한 것이다. 


전후 도쿄를 무대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느슨하게 각색했다. 영화의 제목과 미학은 필름 누아르의 냉소적인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구로사와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프닝 웨딩 장면부터 주요 인물끼리 내재된 갈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복수를 꾀할 뿐 아니라 대규모 정경유착을 정조준한다. 





#11 : 카게무샤 (影武者·1980)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고난의 70년대에 그는 할리우드와 소련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와 조지 루카스 덕분에 오랜만에 시대극(지다이극)으로 복귀했다. 16세기 중엽 전국시대 말기 영주 다케다 신겐이 죽음을 앞두고 그와 외모가 닮은 무식한 범죄자 '카케'를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로 세운다. 


영화는 책임감과 명예의 무게를 짊어진 한 남자의 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한 그는 충의와 의리를 지키는 자신을 재발견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타자가 되어가는 한 인물의 변화 과정은 시각적으로 화려하다. 풍림화산 깃발처럼 잔잔한 숲처럼 가족과 백성에게는 인자하고, 전쟁터에서는 산과 같이 의연했다. 영화 속에서 카게는 곧 신겐이고, 신겐은 곧 가게다. 금강경에'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나니 만약 모든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패왕별희>가 선뜻 떠오른다. 연기를 하다가 그만 극 중 인물과 자신을 혼동하는 것도 그렇고, 극 중 인물의 삶을 사느라 질곡의 역사의 희생양이 되는 것도 그렇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환상과 현실에 대한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구로사와의 휴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왜 사람들은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없을까?"을 던진다. 영화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라고 자문자답한다.




#10 :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郎, 1962)

<요짐보>의 정신적 후속편인 <츠바키 산주로>는 단순한 속편으로 기획되지 않았고, 독립적인 이야기를 목표로 제작됐다. 주인공 '츠바키 산주로(미후네 토시로)'는 부패한 관료에 맞서 싸우는 9명의 젊은이를 우연히 돕게 된다. 혈기 왕성한 사무라이들은 전투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기에 산주로는 적을 무력이 아닌 지혜로 상대하는 법을 일러준다. 구로사와는 후속작에서 산주로의 지적 능력을 계속 강조한다. 동시에 멘토와 멘티 관계를 통해 구로사와 특유의 상대적 진리를 다루고 있다. 


영리한 산주로는 여유롭게 고난을 헤처 나가며 사무라이들을 이끈다. 정의를 실천하지만 모든 것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의로 이어져있다고 해서 모두가 친구가 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종류의 복잡성이 스토리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또한 와이드 스크린의 장점을 극대화한 화면구성을 통해 시원시원한 활극을 표방한다.


단연코 백미는 롱 테이크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마지막 결투장면으로, 전광석화처럼 단칼에 승부를 종결짓는다. 강렬한 효과음과 더불어 피가 분수처럼 분출되는 연출을 통해 이를 강하게 각인시킨다. 이 충격적인 연출은 이른바 '찬바라 영화'라 불리는 장르의 시작이었다. 또 전작을 보지 않아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속편이기도 하다.




#9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隠し砦の三悪人, 1958)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의 몇몇 캐릭터와 설정을, 존경해 마지않는 거장의 작품에서 따 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스타워즈>보다 더 이야기가 짜임새 있어서 더 재밌다. <스타워즈>에서 장면전환 기법으로 즐겨 사용했던 '와이프 효과(다음 컷이 이전 컷을 가로로 밀어내며 장면이 바뀌는 방식)' 역시 차용됐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특징 중 하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그러나 그는 오락영화를 재밌게 만들 수 있었고,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이 대표적이다. 구로사와의 목표는 무엇보다 흥분과 스릴을 전달하는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 쌍의 교활한 농부가 장군 로쿠로타(미후네 토시로)와 유키 공주(우에하라 미사)를 호위하라는 명령을 받는 과정을 추적한다. 보상으로 황금을 얻을 탐욕에 휩싸인 두 농부는 이들의 정체를 모르고 위험천만한 영지를 벗어나야 한다. 재치와 무력, 배신과 구원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다. 


구로사와는 관객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접근하기 쉽고 연기자들의 숨은 재능을 적극 활용한다. 미후네는 구로사와의 필모그래치에서 기억에 남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사실상 1인 2역에 가까운 이질적인 정체성을 오가는 저글링 하듯 로쿠로타를 연기한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농민 주인공 마타시치(후지와라 카마타리)와 타헤이(치아키 미노루)의 티키타카다. 쉴 틈 없이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생생한 캐릭터를 긴장된 세트피스에 풀어놓음으로써 흥분을 자극한다.




#8 : 들개 (野良犬, 1949)

초창기 그의 관심사는 전후 일본 사회의 탐험과 논평이었다. 리얼리즘 형사물을 통해 그의 허무와 패배의 정서를 만날 수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에서 펼쳐지는, 화면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느낌의 음악을 사용하는 대위법 효과는 그의 서명이다. 이런 사회학적 관점은 현해탄을 건너 K-스릴러에 수출됐다.




  

#7 : 거미의 성 (蜘蛛巣城, 1957)

흔히들 다수의 셰익스피어 영화 중 가장 실감 나게 옮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맥베스』를 일본 중세시대로 옮기며 대사 한 줄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배신, 갈망하는 야심, 피할 수 없는 복수라는 중심 주제가 모두 진열되어 있다.  와시즈 장군(미후네 토시로)은 최고 통치자가 되려는 아내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위험한 길을 택한다. 


구로사와는 극도로 양식화된 분위기의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초자연적 요소를 완벽하게 활용한다. 주요 배경이 되는 섬뜩한 미로 같은 숲은 감상자에게 불안을 안겨준다. '숲'과 '성(촬영이 이루어진 후지산 고지에 성을 지을 때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미해병대 병사들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주변을 안개에 싸이게 하여 불길함과 주술의 세계 속으로 끌고 간다. 동시에 일본 전통 연극 '노'의 요소, 일본 전통적인 미술양식, 역사적 사실주의, 선악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녹아있다. 


<7인의 사무라이>, <란>과 같은 정서적 깊이가 다소 부족하다. 원인으로 노의 영향을 받은 형식적 문체가 자주 거론된다. '노'의 과장된 동작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본의 전통극이다. 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가면이다. 다양한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노 가면의 종류는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노 가면은 연기자에게 일련의 신체 언어와 자세를 불러일으킨다. 배우들은 노 스타일로 연기하는데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기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로사와는 감정적 긴축과 상관없이 이미지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미후네 특유의 과장된 연기와 함께, 빗발 같은 화살세례를 받는 장렬한 죽음의 장면은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상징 중 하나로 남아있다. (양궁부 학생들이 도움을 줬다고 한다.)




          

#6 : 요짐보 (用心棒, 1961)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조지 스티븐슨의 <셰인, 1952>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얻어 사무라이 활극을 일대혁신시켰다. 보디가드라는 의미의 요짐보가 나타나 마을을 양분하고 있는 양대 야쿠자 구미를 이간질시켜 공멸시킨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 1964>을 무단표절해서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둔갑시킨다.


전편 <요짐보>와 속편 <츠바키 산주로>의 액션연출에서 구로사와 특유의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만날 수 있다. 대치하는 인물들이 원을 그리며 빙 둘러싸는 형국인 원형구도가 '정(靜)'의 미학과 공간감을 대표한다면, 달리는 인물과 나란히 카메라도 질주하는 수평 트래킹 기법은 '동(動)'의 미학과 평면성을 대표한다.




#5 : 라쇼몽 (羅生門, 1950)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이탈리아 평론가상, 아카데미 명예상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의 상업적 재앙 이후 스튜디오 대표들은 구로사와에게 연출 제의를 철회해 버렸다. 사실상 해고 통보를 접한 구로사와는 그날 집으로 돌아왔지만 평소처럼 기차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우울한 구로사와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의기양양하게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구로사와는 《라쇼몽》이 출품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다음 해에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된다. 


구로사와는 항상 유기적인 세계를 창조해 내는데 재능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언덕, 수북한 풀밭, 광활한 하늘은 항상 그의 손에서 너무나 광활하고 멋져 보였다. 11세기를 배경으로 주인공 '키코리(시무라 타카시)'와 '타비(치아키 미노루)'가 낡은 절간 안에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하고, 밖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비의 존재는 소름 끼치는 범죄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네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진리의 본질과 인간 본성의 복잡성에 대한 명상이다. 법정에서 살인사건을 용의자마다 각각 서로 조금씩 다르게 진술하면서 진실, 기억, 지각의 본질, 그 안에 숨겨진 교활한 조작에 의문을 제기한다. 출연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릭터 버전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여 <라쇼몽>은 비에 흠뻑 젖은 일행의 오프닝 시퀀스에 부응한다.


캐릭터마다 진술을 바꾸고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구조는 실로 독창적이고 자주 모방된다. 어떤 서술자도 신뢰할 수 없는 '라쇼몽 효과'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대체했다.'라쇼몽 효과'는 현재는 하나의 영화공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지를 증명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관점으로 이야기하기로 선택한 영화는 영원히 <라쇼몽>과 비교되는 것이다. 많은 모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쇼몽>은 과거 사건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사용하여 화자의 개성을 반영하는 방식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시나리오를 쓴 구로사와와 하시모토 시노부는 이 내러티브 구조를 사용하여 영화의 많은 모방자들이 결코 탐구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주관성과 인류의 거짓말과 관련된 더 큰 아이디어를 추구한다. 




#4 : 이키루 (生きる, 1952)

베를린 영화제 베를린 상원 특별상

이 땅의 많은 최루성 신파영화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배웠다. 신파극처럼 들리지만, 구로사와의 복잡하고 뛰어난 구성은 인간의 실존을 심오하게 보여준다. 와타나베 칸지(시무라 타카시)는 사회 복지사로, 급작스레 말기 암 진단을 받는 바람에 자신의 삶을 재고하고 실존적 의미를 찾고자 헤아릴 수 없는 두려움에 직면하여 계속 나아간다. 구로사와는 극적인 강렬함을 감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배우에게 구체적인 디렉션을 내렸다. 


전반의 자아 찾기 부분과 후반의 블랙코미디가 만나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관료제의 폐해를 통렬히 조롱한다. 의무와 책임이 우선시 되면서 인생의 모든 사소한 뉘앙스가 이러한 의무와 책임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을 발판 삼아 무엇이 만족스러운 삶을 정의하는지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고찰한다. 구로사와는 존재의 잔인한 측면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현실감을 유지한다. 인생의 모든 아픔에 대한 인식은 이야기 속에 소소한 행복과 가슴 찡한 순간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어준다. 


죽는 것은 두렵지만 살기에는 너무 비참한 주인공의 영적 여정은 구로사와만이 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하고 영혼을 짓누르는 동시에 감동을 준다. 시무라 타카시는 자신의 커리어에 걸맞은 연기를 펼친다. 이 남자의 유령 같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평생의 고뇌가 전달된다. 이 작품으로 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휴머니스트 감독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다. 




#3 : 란 (活, 1985)

아카데미 의상상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26억 엔 흥행 신기록을 세웠던 <카케무샤>를 정작 본인은 <란>을 위한 서막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우아하게 채색된 <란>은 전작보다 좀 더 서사적이고, 장대하고, 비극적일 뿐이다. 구로사와는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센코쿠 시대로 옮겨와 이치몬지 히데토라(나카다이 타츠야)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히데토라는 세 아들에게 영지를 물려주지만, 그들의 잔인한 부패, 치명적인 속임수, 간악한 배신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눈이 멀게 된다. 내러티브는 언제나 구로사와 특유의 허무주의적 휴머니즘은 패배와 공허로 꽉 채웠었다. 캐릭터의 동기와 주제의 폭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회화적인 비주얼, 야심 찬 세트피스, 타케미츠 토루의 놀라운 음악이 압도적이다. 


구로사와의 필생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10년 동안 영화의 모든 장면을 스토리보드로 그려 넣었다. 이 이미지들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구로사와는 촬영이 시작했을 때 거의 눈이 멀었다. 그의 오랜 촬영감독인 나카이 아사카즈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무라키 요시로가 그가 그린 스토리보드와 함께 장면의 구도를 잡는데 도움을 줬다.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의 숨 막히는 스케일은 구로사와의 웅장한 미학에 대한 증거다.




#2 : 천국과 지옥 (天国と地獄, 1963)

박찬욱이 뽑은 영화 베스트 10

 (현대스릴러보다도) 선악을 동전의 양면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구로사와가 만든 흑백의 누아르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천국과 지옥>를 보고 있으면 흑백 스크린이 먹물처럼 흘러넘쳐 관객의 폐 속으로 검게 스며들 것만 같다. 요코호마 신발회사의 최고 경영자 곤도 킨고(미후네 토시로)는 아들이 납치되자 급히 사업자금을 빼내 범인에게 건네주려고 한다. 그러나 납치된 아이는 아들의 친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곤도는 불가능한 윤리적 구속에 갇힌다. 동시에 구로사와의 카메라는 우리를 요코하마 주변으로 안내하며 상류 사회와 빈민가 일대를 일목요목하게 샅샅이 보여준다. 후반으로 갈수록 경제성장이 낳은 빈부격차에 대한 확고한 사회적 논평을 더하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을 심어놨다.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유괴는 물론 나쁜 범죄다. 그러나 아이를 해칠 생각이 전혀 없다면 모두에게 피해가 안 가는 괜찮은 범죄라고 생각하는 놈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로 만들어 볼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구로자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을 보고는 포기했다. 유괴영화는 이제 아무도 못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를 능가하는 영화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와 다른 영화는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봉준호 또한 <살인의 추억>을 만들 때 참고한 작품들이 이와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 영국코믹스 <프롬 헬>,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이라고 설명했다.




                   

#1 :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어벤저스>, <저스티스 리그> 등 협업 영화(팀업 무비)들은 반드시 본 작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내러티브는 가난한 농촌 마을을 위협하는 산적 떼를 막기 위해 사무라이를 고용한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구로사와와 그의 오랜 시나리오 작가인 하시모토 시노부와 오구니 히데오는 많은 감정적 모멘텀과 철학을 전달한다. 캐릭터의 세부사항이 풍부하여 관객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구로사와의 손에서 풍경과 날씨 자체도 캐릭터가 된다. 비, 바람, 구름, 햇빛을 구로사와 이전과 이후로 영화의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또 (후세영화인들을 위해) 장대한 전투장면의 역동성과 현장감을 얻고 싶다면 카메라 여러 대로 한꺼번에 촬영하는 멀티 카메라 기법을 사용하라고 슬쩍 귀띔해줬다. 이렇게 현대 블록버스터 관습을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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